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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폰 수리 달인’ 새터민 출신 서강잡스를 만나다

서강대학교가 올려다 보이는 서울 마포구 신수동. 경쟁하듯 건물들이 올라가는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단층 점포에 ‘서강잡스’가 있다.

‘서강잡스’는 사업체의 상호이자 사장 김학민 씨(31)의 별명. 이름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 김 씨는 신촌 일대는 물론 서울 지역 대학생들에게 유명한 ‘아이폰 수리의 전설’이다.

주변 사람들의 고장난 아이폰을 뚝딱뚝딱, 신통방통 잘도 고쳐주다보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 소문이 입에 입을 타면서 그를 찾는 발길로 서강대 기숙사 로비가 시장판이 됐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 반, 이럴 바엔 사업 한번 해보자는 생각 반에 수리점을 차리면서 상호 역시 ‘서강잡스’로 정했다.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 서강잡스 매장에서 아이폰을 수리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 서강잡스 매장에서 아이폰을 수리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상호를 정하고 보니 모든게 운명이다 싶었다.

김 씨는 2011년 한국에 온 새터민이다.

새터민 교육을 위해 국정원이 운영하는 하나원 TV를 통해 스티브 잡스를 처음 만났다. 당연히 하나원에서 나온 뒤 처음 산 것도 아이폰이었다.

“스틸 재질의 심플한 디자인과 손에 착 감기는 느낌…. 어린 시절, 북한에서 전자제품을 다룰때 막연하게나마 꿈꿔오던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피를 타고 났는지, 함경북도 온성에 살던 어릴때부터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다. 8살때 집에 있던 스피커폰을 열어 본 것이 시작. 처음 본 물건도 분해했다가 조립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집안 모든 전자제품의 분해조립을 끝냈을 즈음, 아버지의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공구가 없었죠. 줄을 갈아 소형 드라이버를 직접 만들었어요. 뒷판을 열자 정교한 부품이 빼곡히 들어있는데… 진짜 신세계가 펼쳐지더군요.”

꼬마 수리공에 대한 소문이 나자 이웃에서 시계, 녹음기, TV 등 온갖 전자제품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식으로 고치다가, 북한에 많이 퍼져 있는 일본산 기술서적들을 보면서 전자회로 원리 등을 스스로 익혔다. 실력은 날로 커갔다.

하지만 1997년 당시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애초 평양에서 추방됐던 그의 집은 살기가 더욱 힘들었다. 중국에 돈 벌러간 어머니는 소식이 끊기고, 16살때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취미였던 전자제품 수리는 이제 밥벌이가 됐다. 물건을 고쳐주고 주는대로 받았다. 괜찮은 날도 있었지만, 수리만 해주고 오는 적도 많았다.

“TV로 중국이나 남한 드라마를 보는게 삶의 낙인 시절이었어요. 먹을 것 안먹고 1~2년 돈을 모아 TV를 샀는데, 고장이 나면 그 집의 행복도 망가지는 거죠. 이런 집에 돈이 없다고 TV를 고쳐주지 않을 수 있나요?”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이런 선행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자제품을 수리해주다 보니 당연히 그도 중국 지상파 방송이나, DVD, USB를 통해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발각돼 감옥에 가게 됐다. 처음 두번은 단순 시청죄로 나왔지만 세번째는 유포죄였다. 인생이 거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도 받지않고 전제제품을 고쳐 주었던 이웃들이 나섰다. 보위부에 좋게 이야기를 해주고, 뇌물도 몰래 넣어준 덕에 기적처럼 풀려났다.

풀려나오자마자 탈북을 결심했고, 얼어 붙은 두만강을 건너 태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목숨을 걸고 온 한국이었지만 생각과는 달랐다. 모든 게 낯설고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동안 방황을 하다 기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업학교에 들어갔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이런 말하면 좀 그렇지만, 솔직히 너무 쉽더라구요. 이런 것을 배우러 굳이 다녀야되나 생각하니 점점 더 마음이 안잡히고….”

그때 받은 선물이 스티브 잡스의 전기였다. 북한에서부터 알던 친구에게서였다.

“오빠가 좋아하는 IT분야에서 유명한 분이니, 책 잘 읽고 잡스 같은 인물이 되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했다. 책을 두 번 정독하면서 진정한 잡스의 팬이 됐다.

탈북의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던 공부를 결심한 것도 그때, 결국 201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공부에 전념하던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일에서 비롯됐다. 물론 돌아보면 필연 같은 우연이다.

어느날 미용실에 갔다가 아끼던 아이폰4의 액정이 깨졌다. 수리점에 알아보자 25만원을 달라고 했다. 돈이 없어 몇달을 그대로 쓰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7만원이면 부품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품을 주문해 고치자 이번에는 지켜보던 룸메이트가 난리가 났다.

“형, 이거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라며 깜짝 놀라는데, 저는 그게 더 놀랍던데요. 그 친구가 소문을 내면서 일이 커졌죠.”

처음엔 주변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서강대 대나무숲’(익명게시판)에 ‘서강대에 유명한 잡스님이 있다는데, 연락처 좀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서강잡스’의 탄생이었다.

물론 처음엔 거창한 작업실을 마련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유명세가 커지면서 주변에 피해가 갔다. 기숙사 로비는 물론 강의실로도 그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안되겠다 싶어서 마련한 것이 지금의 ‘서강잡스’다.

“물론 돈을 벌기도 하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왔다가 깨끗하게 고쳐진 폰을 받아들고 활짝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그런 마인드 덕인지는 사업은 날로 번창한다. 조만간 직원도 2명을 뽑고, 좀 더 큰 상가로 이전할 계획도 있다. 동시에 휴학중인 학업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도 했다.

“여기저기서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도 많이 들어왔죠. 그런데 모두 거절했어요. 아직은 취미처럼 하는게 좋아요. 하지만 이 분야에는 아직 확장될 부분이 정말 많아요. 언젠가는 그분야에서 더 큰 꿈을 꾸고 있겠죠. 제가 목숨을 걸고 꿈을 찾아 온 사람 아닙니까.”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 서강잡스 매장에서 아이폰을 수리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아이폰 수리 업체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인근 서강잡스 매장에서 아이폰을 수리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다른 브랜드는 못고치나. 안고치나?

서강잡스는 애플 전문이다. 다른 브랜드는 취급하지 않는다. 김학민 씨는 “국내 브랜드는 AS체계가 잘돼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딱 한번 삼성노트북을 수리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빌린 것인데 화면 액정이 망가졌다며 울먹이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알바를 해서 학비 뿐 아니라 세식구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처지였다. 여학생을 일단 보내놓고, 부품 문제로 삼성AS센터에 제품을 갖고 가서 수리해 왔다. 여학생에게는 돈 안들이고 수리했다며 들려 보냈다. 나중에 여학생이 음료수를 사들고 왔다.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서. 그가 자신의 업에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