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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역사에 남을 3개의 사과라는 말이 회자될 때,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한 뉴튼의 머리 위에 떨어진 사과, 그 외에 혁명을 뜻하는 윌리엄 텔의 사과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사과 등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화가 폴 세잔의 사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화가가 그렸던 정물화 속의 사과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싶었거든요. 세잔이 사과를 포함해, 자신이 여러 차례 연습하고 고민해가면서 완성하려고 했던 정물화를 보여드립니다. 그림 속 사과에 역사에 남을 의미가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잔이 현대 미술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이런 작업을 통해 남기게 되었는지는 잠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후기 인상파 전시회에 방문했던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세잔이 그린 정물화에 감동한 후 ‘화면에는 사과 각각의 관계와 색깔, 그리고 부피가 존재한다. 계속해서 볼수록 사과는 더 붉거나, 푸르거나, 무겁게 보인다. 사과의 색깔이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1870년대 세잔의 작품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사과는 세잔이 가장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된다. 후기로 갈수록 세잔은 형태의 순수한 본질을 묘사하려는 의도를 보이는데, 이 그림의 사과와 오렌지 속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모습이 그의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잔 ‘사과와 오렌지’

세잔 ‘사과와 오렌지’

그림 속에 사과와 접시, 오렌지 등은 전통적인 정물화 표현법과는 많이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척도법, 그리고 사물의 입체감을 주기 위한 명암법 등이 나타나는 전통 정물화가 아니라 세잔의 사과는 균질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게 묘사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쉽게 말해 세잔의 사과는 잘 그린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때문에 예술 애호가나, 전문가들이 설명해놓은 것을 보면, 내가 뭔가 놓친 것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죠. 이 그림에 대한 평가를 이해하려면 그래서 조금 다른 방법으로 다시 그림을 관찰해야 합니다.

우선 그림을 찬찬히 봅니다. 사과와 오렌지가 보이고, 그 과일들은 하나는 하얀색깔 그리고 하나는 여러 색깔이 포함된 두 개의 식탁보 위에 그릇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물병도 하나 보이네요. 식탁보는 식탁에 정확하게 펴져 있기 보다는 뭉쳐있고, 불규칙한데, 언뜻보면 테이블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이 불안합니다. 그리고 앞쪽의 사과는 몰라도 뒤쪽 그릇 안에 있는 사과는 그냥 색깔만 칠해놓은 것 같죠. 또 하얀 식탁보의 색도 잘 보면 하얗다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화면 속의 과일과 사물들은 대각선의 구도를 따라 서로 다른 각도로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과일들은 무질서하게 놓여져 있는 것 같지만, 찬찬히 관찰할수록 대각선 구도 아래 서로 관계들이 정확히 조화를 이루도록 계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그려진 사물들은 여러 각도에서 보이는 것을 모두 다르게 그린 것인데, 세잔은 이 다양한 각도의 관찰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화면 전체의 균형을 이루는 동시에, 다양한 시점에서 화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세잔의 미술이 가진 특징을 좀 단순하게 표현하면,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표현과 다른 방법, 그리고 자기만의 시각, 그러면서도 본질적인 것, 과학적인 것의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르세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모더니즘 시대 전환기를 살아갔던 많은 작가들의 노력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설명은 자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각자의 개성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표현하려는 시도를 했었죠. 현대 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오랜 시간 서양 예술은 항상 정해놓은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재현하고 교육시키며, 지키는 데 더 많이 집중했었습니다. 모방과 창조가 우리 시대처럼 당연히 창조에 방점이 찍히고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었죠. 과거에는 모방 속에서 오히려 전통적인 가치의 재해석이 가능하다고 믿어왔었습니다. 그것의 벽을 넘어가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의 시도와 시대 정신의 변화가 있던 것이구요.

일단 세잔은 우리 인간의 눈이 카메라 렌즈나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서 정돈되고 균등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폴 세잔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런 변화를 위한 성과가 뒤에 오는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 이기 때문입니다. 수백년 간 내려온 원근법에 기초한 공간 묘사,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과장해서 현실감을 보이려뎐 기존 방식을 떠나 세잔은 자기 만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말이죠.

일단 세잔은 우리 인간의 눈이 카메라 렌즈나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서 정돈되고 균등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두 개의 눈으로 어떨때는 다양한 초점으로 그리고 금새 각도를 바꿔서 대상을 관찰하고, 여러 각도의 모습을 합쳐 인식합니다. 우리 눈은 또한 색깔을 그림에서처럼 정해진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색이 가진 변화를 잡아내고, 여러 색깔들이 혼재해 있음에도 종합해서 수용하게 되죠. 세잔은 우리 눈이 관찰하는 것과 가장 비슷한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 작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눈의 관찰을 넘어서서 대상의 움직이지 않는 본질을 찾아내기 위해 실험해왔습니다. 그에게 원근법과 기타 다양한 기존 미술 표현 방식은 지난 일이 되었고, 사물은 입체적으로 관찰되면서 단순화 되고, 기하학적이 되어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작가들이 입체파를 열도록 길을 마련합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색깔에 대한 감각은 정해진 틀이 아니라 자연을 직접 관찰하도록 만들면서 20 세기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색깔에 대한 감각에 기초가 되죠

오르세 앞에 있는 이 그림은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위에 있는 단순한 과일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 그림을 통해서 보는 것은 수백년간 당연히 그렇다고 여겼던 것들을 변화시키고, 자기가 관찰하는 방향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려는 노력입니다. 3대 사과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도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세잔의 연습은 그래서 예술가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 그것이 미술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