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했다. 드라마 <미생>의 그 과장이 맞나 싶다. 진중하고 점잖을 것만 같던 그가 딱 붙는 쫄티에 광택 나는 금목걸이 차림으로 섰다.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50)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체험해 보는 느낌이었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겪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운을 뗐다. 그는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 제작 월광·사나이픽처스)에서 부산의 해안 마을 ‘기장’의 보안관을 자처하는 형사 대호로 분했다. 대호는 작은 동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근육질 아저씨의 전형이다. 과잉 수사로 형사직을 관둔 후 고깃집을 운영하는 그이지만, 동네 수호에 여념이 없다. 급기야는 서울에서 온 사업가 종진(조진웅)을 마약사범으로 의심하고, 홀로 수사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이 없다.

이성민은 “그런 점이 매력있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점. 영화에서는 형사의 직감이라고 하지만, 처음은 수컷 대 수컷으로의 질투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호는 동네에서 가장 긴 꼬리를 가진 공작이었는데, 종진이라는 새로운 공작이 나타난거다. 그러는 와중에 의심스러운 점이 나타나니까 그 조각을 맞추려 했던 것이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 하는 대호의 모습이 매력적이게 다가왔다”라고 맡은 배역을 설명했다. 이성민은 유도선수 출신에다 수상 레저까지 즐기는 대호란 옷을 소화하기 위해 체육관과 액션 스쿨을 오가며 몸을 만들었고, 수상보트를 운전하는 장면을 위해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기본은 정말 유쾌한 캐릭터다. 탄탄한 몸을 가진 아저씨 느낌을 내려고 운동을 많이 했다”라며 캐릭터연구에 쏟은 노력을 드러냈다.

영화는 ‘로컬 수사극’이란 말을 내걸었듯 풍경이며 말투까지 부산 특유의 분위기가 넘친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어촌 마을의 색채를 고스란히 담아 작품 전반에 지역 정서를 흘리고, 주조연 배우 대다수를 경상도 출신으로 꾸려 자연스러운 사투리의 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사실 정말 신경 많이 쓰였다. 하나 하나 진짜 부산 사람처럼 사투리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나. ‘일단 하자’라는 마음으로 연기한 다음 감독한테 지시를 받았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방법이 ‘이상한 것은 와서 말해달라’하는 식으로다. 영화 <친구>처럼 ‘니가 가라 하와이’ 이런 건 절대 부산 말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진짜 부산 말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각진 느낌이 아녔다”라고 촬영 뒷 이야기를 전했다.

상대역으로 등장한 배우 조진웅과의 호흡도 안 들어볼 수 없다. 조진웅은 살갑고 재치 넘치는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사업가 종진 역을 연기했다. 종진은 대호와 축구도, 목욕도, 주먹다짐까지 함께 해가며 같은 ‘수컷’의 모습으로 극 중심에 서 있다. 이성민과 조진웅은 드라마 <열혈장사꾼>과 영화 <군도> 그리고 한 차례 광고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벌써 네 번째 만남이다. 이성민은 첫 만남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열혈장사꾼> 촬영 때 조진웅을 처음 봤다. 보통은 아니라 생각했다. <군도> 찍고 광고 때 만났을 때 진웅이가 ‘형 우리 잘 가고 있는 거지?’라고 하는데 뭉클하더라. 서로의 관계도 그리고 나 자신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어 “영화 속에서 진웅이와 운동장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다. 당시 촬영하면서 진웅이가 그 캐릭터를 그 지점까지 끌고 온게 대견하고 감탄스러웠다.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힘이 대단한 배우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성민은 대표적인 ‘명품조연’이었다. 연극 배우로 출발해 다수의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다 tvN <미생>의 오상식 역으로 주연으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스스로 책임감이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내가 할 것을 하고, 기다리자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달라진 점을 집었다. 투철해진 책임감은 포부까지 이어졌다. “이전까지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해 왔다. 앞으로는 좀 더 극적인 캐릭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영화의 색깔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고 콘트라스트(대비)가 큰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영화는 <군도:민란의 시대>의 조감독이었던 김형주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배우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김종수, 조우진, 임현성, 배정남 등이 합세했다. 지난 3일 개봉해 극장가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