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 속 불륜의 형태는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게 변해왔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면서 불륜의 모습은 급변했다. 얌전한 가정주부가 눈길 한번 주고 사교춤 한번 춘 것일 뿐인데 집에서 쫓겨날 뻔했던 것에서 시작해 착한 남편과 결혼했으면서도 다른 남편 하나 더 갖겠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 불륜 영화의 개척자는 역시 1956년작인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이다. 정비석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한 대학교수 부인 선영(김정림)이 춤 때문에 벌이는 일탈을 그린다. 대학교수의 부인이 사교댄스에 빠져들어 젊은 대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대학교수도 여제자와 부적절한 관계에 놓이는 줄거리는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지식인의 부인인 주부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은 분위기였다.

1960년작인 김기영 감독의 ‘하녀’도 시대를 앞서는 파격적인 불륜을 다뤄 충격을 줬다. 방직공장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작곡가(김진규)가 가정부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가 그녀에게 협박을 받는다. 결국 가정은 파국에 이르고 남편과 하녀는 쥐약을 먹고 함께 자살을 한다. 1968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남주인공이 총각행세를 해서 처녀를 임신시킨다. 8년 후 여자는 아이를 남주인공에게 보내고 아이와 눈물 어린 이별을 한다.

이렇게 1970년대까지 여성은 늘 피해자였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바람을 피웠는데 남자들은 떳떳하고 여성들은 이상 성격자나 손가락질받는 분위기였다. 드라마에서 불륜은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다. 그 선봉에 선 이는 역시 김수현 작가다. 1978년작 ‘후회합니다’에서 여주인공은 여고 동창에게 남편을 뺏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경제적으로 부흥이 일어났던 1980년대부터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자기 목소리가 커지자 주체적인 캐릭터로 변한다. 먹고살 만하니까 성욕까지도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복부인’에서 여주인공들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게 되자 남자들과 어울려 향락에 취하게 된다. 에로영화계의 걸작인 1982년작 ‘애마부인’에서 권태로운 유한부인 애마(안소영)는 남편이 감옥에 가자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와 뜨거운 밤을 보낸다. ‘강변부인’의 여주인공은 남편이 자신에게 소홀해서, ‘빨간앵두’의 부유한 여주인공은 남편의 성불구에 괴로워하다 욕정을 못이겨 바람을 피운다.

김수현 작가는 1988년 우리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불륜 드라마 ‘모래성’을 선보였다. 남편의 불륜에 홀로서기를 택하는 40대 후반의 방황과 자립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많은 주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부터 불륜이 고급스럽게 포장된다. 황신혜·유동근 주연의 드라마 ‘애인’과 최진실·이경영 주연의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불륜에 빠진 남녀들은 정신적으로는 간통을 저지르는 수준까지 갔으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고급스럽게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눈다. 1998년 이재용 감독의 ‘정사’에서 여주인공 서현(이미숙)은 동생의 약혼자와 애절한 사랑에 빠진다. 경악할 일이지만 고급스럽게 포장돼 흥행에 성공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불륜에 있어서 금기는 없어졌다. 여자가 피해자 수준을 넘어서 가해자가 된다. 2001년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여주인공 연희(엄정화)는 결혼 후에도 옛날 남자친구에게 방을 얻어줘 남자 첩살이를 시킨다. 2007년작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서는 두 부부가 파트너를 바꿔 사랑에 빠진다. 2008년작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는 넘치는 사랑 때문에 복혼을 해 어린 남편 하나를 더 얻는다.

불륜 소재 작품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