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게임업계, 이번에는 다르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이른바 ‘게임중독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게임업계가 모처럼 단합된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협회는 협회대로, 업계는 업계대로 파편화돼 정부의 각종 규제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특히 누리꾼들의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투쟁 불사”를 선언하는 등 그동안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며 억눌려 왔던 울분을 한번에 쏟아내고 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이하 K-IDEA)가 진행 중인 ‘게임 중독법 반대를 위한 온라인 서명’이 4일 오후 현재 1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서명을 받은 지 불과 일주일 만의 기록이다. 이날 오후 현재 서명이 진행 중인 K-IDEA 홈페이지는 접속이 안될 정도로 누리꾼들의 방문이 폭주하고 있다.

게임업계는 지난달 말부터 ‘중독법 관련 저지’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왔다. 첫발은 넥슨이 디뎠다. 넥슨은 공식 홈페이지에 게임 중독법 반대 서명 운동 배너를 걸었으며, 이 배너를 클릭하면 K-IDEA의 서명운동 페이지로 넘어간다. 넥슨 외에도 엔씨소프트, NHN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게임즈, CJ E&M 넷마블 등 90여개 게임사가 배너를 걸어 서명운동에 동참할 예정이다.

그동안 게임업계는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각종 게임 규제안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왔던 게 사실이다. 자칫 게임에 대해 거부감이 큰 학부모들의 ‘심기’를 건드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극히 적은 탓이었다. 이 때문에 각종 규제와 기금 출연 요구에 이렇다할 목소리를 못 내고 번번이 따라 왔으며, 최근에는 K-IDEA가 앞장서 자율규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을 발의하자 결국 눌러 왔던 울분이 폭발했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은 게임을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유발 물질로 규정하고 정부에서 관리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게임은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보건복지부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게임업계가 전례없이 집단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은 ‘더 이상 밀리면 게임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업계는 청소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음에도 이를 바로잡을 의지가 없는 정부와 일부 세력이 ‘게임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업계가 그동안 보여준 ‘체념과 순응’이 정부 부처와 일부 단체의 이른바 ‘숟가락 얹기’를 부르고 있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사실 게임업계는 최근 몇년간 침체일로를 걸어왔다. 강제적 셧다운제, 웹보드 게임 규제안 등 각종 규제책이 쏟아지는 데다 내부적으로 수익성 악화라는 암초를 만났다. 특히 한국 게임산업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게임이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뚜렷한 하강국면을 맞고 있다.

온라인게임을 대체하고 있다는 모바일게임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수익률이 10%도 되지 않을 만큼 전형적인 ‘레드오션’이 되고 있다.

‘게임업계 최대 잔치’인 올해 지스타를 들여다보면 이같은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는 14~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지스타 2013은 ‘게임쇼의 꽃’으로 불리는 일반관객 대상 ‘B2C 전시관’ 대신 비즈니스관인 B2B관에 승부를 걸었다. 말이 좋아 ‘승부’지, 엔씨소프트·넷마블·위메이드·NHN엔터테인먼트 등 그동안 지스타를 빛내온 터줏대감들이 불참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들 업체가 불참한 이유는 한마디로 ‘보여줄 거리’가 없어서다. 지스타는 물론 게임산업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이자 K-IDEA가 ‘잔치’를 앞두고 홈페이지에 ‘조기’를 내건 이유다.

특히 10만여명에 이르는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게임이 마약류로 취급받고 있는 데 대해 ‘허무함’을 넘어 ‘굴욕감’마저 느끼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K-IDEA 수장인 남경필 의원은 “게임을 마약·도박·술 등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중독과 똑같은 테두리 안에서 게임 중독을 관리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가 그동안 많이 참아오다가 게임 중독법 법안 소식에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K-IDEA를 중심으로 공동 대응에 나선 업계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