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우선협상기간 종료를 하루 앞둔 25일 밤, 박용택(35)은 “내일 밤 12시까지 단장님과 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 구단 홈페이지에서 팬들의 ‘박용택 재계약 릴레이’가 1000건을 넘어가고, 계약 여부를 궁금해한 팬들로 인해 한밤중 박용택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른 시각이었다.

이날도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백순길 단장과 면담을 마친 박용택은 “내일 계약을 못하게 되더라도 밤 12시까지 구단 사무실에서 백 단장과 함께 있을 생각”이라고 했다. “릴레이까지 해주는 팬들이 정말 고맙다. 나도 LG 팬이다. LG에 남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사람은 나”라며 협상 마지노선인 마지막 순간까지 LG와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몸값이 자존심인 프로야구 FA협상 테이블. 자존심과 팀에 대한 애정 사이에 놓였던 박용택은 예상보다 빨리 결단을 내렸다. LG 줄무늬 유니폼을 택했다.

박용택이 2015년 FA(자유계약선수) 1호 계약자가 됐다.

LG는 26일 오후 “박용택과 4년 총액 50억원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계약금 18억원에 연봉 8억원씩 총 50억원이다. 50억원은 LG의 FA 계약 역사상 공식적인 최고금액이다. 이로써 박용택은 올겨울 FA 19명 가운데 가장 먼저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박용택은 LG의 가장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스타다. 2002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이후 올해까지 13년 동안 LG에서 뛰었다. 다른 선수들은 해외 진출이나 이적, 군 입대 등으로 팀을 잠깐씩이라도 비웠지만 박용택은 유일하게 입단 이후 한 번도 LG에서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LG가 10년 동안 4강에 못가던 ‘암흑기’를 꾸준히 버텨낸 박용택은 지난해 LG가 11년 만에 4강에 진출할 때도, 올해 2년 연속 4강에 올라설 때도 타선의 핵심이 되어 팀을 이끌었다.

2009년부터 올시즌까지 6년 연속 타율 3할을 기록한 박용택은 지난 2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올해는 톱타자와 중심타자를 오가며 124경기에서 타율 3할4푼3리와 출루율 4할3푼을 기록,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나이는 고참이 되었지만 기량은 갈수록 상승세를 타고 있다.

데뷔 이후 한 팀에서만 뛰어 ‘LG의 박용택’일 때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박용택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박용택을 다른 팀에 보내게 될 경우 파장에 대해서는 LG 구단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선협상기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의견을 주고받아온 박용택과 구단은 공식적으로 두번째 면담을 가진 25일까지 서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용택은 협상 과정에서 팀이 자신을 진정 원하는지에 대해 조금 의구심마저 갖기도 했다. “LG에 남고 싶다”는 박용택이 혹시 떠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 이유였다.

결국은 마지막날, 서로 절실히 원하는 양측이 한발씩 움직였다. 한발씩이지만 꽤 큰 보폭으로 양보하며 합의해 계약을 이뤘다.

그동안 최초 제시조건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구단이 마지막 순간 적지 않은 조건을 보태며 성의를 보인 점이 박용택의 마음을 붙잡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백 단장과 긴 시간 대화를 통해 그만큼 구단이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계약 총액인 50억원이 옵션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순수 보장액이라는 점 역시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2010년 시즌을 마치고 첫 FA 계약으로 LG에 잔류할 때는 34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억5000만원이 옵션 조건이었다. 첫번째 FA에서는 박용택이 LG에 남기 위해 크게 양보했다면 두번째 FA인 이번에는 구단도 박용택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에 크게 양보했다.

이제 영원한 ‘LG 쿨가이’로 남게 된 박용택은 “마음 굳게 먹고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LG에 남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냥 계약까지 가더라”고 웃으며 “팬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FA 선수를 남으라고 이렇게 릴레이까지 해준 경우 본 적 있나. 그런 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붙잡아준 팬들의 마음과 나 때문에 고생해준 단장님의 마음에 LG에 남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