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화천지역은 군부대가 인접한 인구 2만5000의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대개의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는 아동들의 사정이 그러하듯이 우리 화천지역아동센터 아동들도 많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입니다. 화천지역아동센터에는 19가정의 아동이 있는데, 그 가운데 네 가정의 아이 중 6명이 제가 다문화가정 한국어 방문 지도사로 일할 때 만난 아이들입니다.

한 명 한 명의 아이들 전부에게 마음이 가지만, 유난히 마음이 가는 아이는 종갓집 맏아들로 농사를 지으시는 아빠와 더운 나라에서 시집온 결혼이민자 사이에서 태어난 종현이입니다. 제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났을 때 다섯 살 유치원생이었던 종현이는 이제 초등생 2학년이 됐습니다. 아빠는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본국으로 돌아가 재혼을 했습니다. 남겨진 종현이는 할머니·할아버지께 맡겨진 사촌오빠 둘과 사촌언니 1명의 틈에서 막내로 자라고 있습니다.

주양육자이신 할머니께서 건강이 안 좋으신 상태로 손자·손녀 양육과 농사일까지 감당하고 계셔서 그 애처로움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인 종현이는 막막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드림스타트센터에서 연계되는 음악치료와 수영 활동, 학습지 지원, 목욕과 두발관리 등의 지원과 지역아동센터의 보살핌을 받으며 하루하루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막내이면서도 사촌언니·오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기방 청소하기, 스스로 옷 챙겨 입고 학교 가기, 스스로 씻기 등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가 돼 갑니다. 장차 자신의 삶과 비슷한 친구나 동생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종현이를 볼 때마다 제 가슴은 먹먹해집니다.

엄마를 닮아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작은 눈 때문에 자신을 예쁘지 않다고 여기는, 외모에 대한 낮은 자존감이 종현이의 유일한 흠입니다. 그래서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는 종현이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종현이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는 사진입니다.

“엄마 등 뒤에는 누가 있을까”라고 물으니 “제가 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종현이가 엄마 등에서 자고 있을 때 선생님이 찍은 거야. 나중에 건강하고 예쁜 선생님의 모습으로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라고 말해 주니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선생님들의 노력을 알기라도 하듯이 바르게 성장해 주고 있는 종현이와 다른 아이들을 보며, 지역아동센터의 선생님으로서 아동들을 키우는 것이 곧 큰 세상을 키워 내는 일임을 실감합니다.

‘아이들아, 때로는 힘들고 외로운 세상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우리 함께 힘을 내어 서로를 키워 내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