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36·KT)은 ‘슈퍼소닉’이다. LG에서 뛰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사이에 246도루를 기록하며 KBO리그 최초의 3년 연속을 넘어 4년 연속 50도루를 달성한 기록의 사나이다. 그 중 후반 3년은 역시나 최초인 60도루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전준호와 이종범에 이어 사상 3번째로 통산 500도루를 넘겨 도루계의 레전드급 기록을 갖고 있다.

2015년 KT로 옮겨서도 이대형의 가치는 녹슬지 않았다. 첫해 44도루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3년 동안 104도루를 기록했다. 2015~2016년에는 2년 연속 3할도 쳤다. KT 부동의 톱타자이자 외야수였다. 그러나 13년 연속 두자릿수를 달리던 이대형의 도루 행진은 멈춰섰다. 2017년 시즌 막바지에 베이스러닝 중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멈춰선 것은 기록뿐이 아니었다. 하필 FA가 되는 시즌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빠른 발이 최대 장점인 이대형의 무릎 부상과 수술은 구단들이 판단하는 그의 미래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대형은 어렵게 KT와 2년 계약을 맺었고, 지난 시즌을 재활로 보낸 뒤 마지막 1경기에 1군 등록돼 출전하며 2019년을 다짐해야 했다. 시즌 뒤 KT의 사령탑은 바뀌었고 이대형의 진로도 답을 기다려야 했다.

현재 이대형은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진행 중인 KT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있다. 2년 만에 참가한 전지훈련에서 이대형은 주전이 아닌 주전 경쟁 그룹에 포함됐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김민혁, 배정대와 송민섭, 김진곤 등 20대 후배들과 좌익수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경력만 보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으나 프로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이대형은 경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16일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이대형은 “무릎 상태는 100%에 가까워졌다”며 “매년이 경쟁이었지만 이전 캠프들과는 상황이 아주 많이 다르다. 아프면 안 되니 몸 상태 체크 잘 하면서 내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구단에서 세대교체는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이다. KT에서도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여러 베테랑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었고, 이대형은 부상 이후 사실상 KT의 미래 구상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이대형을 스프링캠프에 포함시킨 이강철 KT 감독은 “기회를 주고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며 현재 스프링캠프에서 흘리는 이대형의 땀을 지켜보고 있다. 경력도, 나이도 관계없는 공정한 눈으로 판단하고자 끝까지 경쟁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KT의 주전 좌익수 경쟁은 최소한 시범경기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KT는 세대교체를 주창하면서도 분명히 더 높은 순위를 기대하고 있다. 몸 상태를 회복한 이대형이 부상 전처럼만 치고 달릴 수 있다면 경쟁력은 충분하다. 이강철 감독은 “이대형을 캠프에 그냥 포함시킨 것이 아니다. 가장 좋다고 판단되면 이대형이 주전 좌익수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수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처럼 이대형도 자존심이 강하다. 말하지 않고 티내지 않지만 부상 뒤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하기에 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대형은 “경쟁 상황이지만 후배들을 이겨서 올라가겠다기보다는 경쟁력을 다시 키우고자 한다. 내 가치를 살리려는 것이고 판단은 감독님·코치님이 하실 것”이라며 “나는 뛰지 못하면 경쟁력이 없는 선수다. 그 부분을 많이 생각하고 있고, 시범경기까지 최대한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형을 잘 아는 주변의 선수들은 “정말 이를 악물었다”고 전했다. ‘슈퍼소닉’은 어쩌면 신인 시절보다 훨씬 뜨겁게, 데뷔 이후 가장 치열한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