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 배우 손호준(31)의 이름을 치면 2006년 데뷔 이후 그가 만들어낸 많은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연기로 데뷔했지만 ‘타키온’이라는 그룹에서 아이돌 가수로 활동한 적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가 얼굴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드라마 tvN의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이후에는 주로 코믹한 연기를 많이 해 그를 ‘개그맨’으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대중적으로는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배우로서 그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은 또 그만큼 어려워졌다. 마침 그는 김상진 감독의 영화 <쓰리썸머나잇>에 출연해 인터뷰에 나섰다. 손호준은 잘 빠진 배우인가, 아니면 때를 잘 만난 예능인인가. 인터뷰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분들이 제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답답해하세요. 정작 저도 너무 답답해요. 항상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선배, 어르신 등 어려운 분들과 많이 뵀거든요. 그 앞에서 자신감을 못 가지는 게 답답하죠. 그냥 저는 기본적인 매너를 지킨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제 또래 누구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인터뷰가 시작하자마자 그는 자기가 착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tvN <삼시세끼>를 보면 나영석PD를 비롯한 제작진이 손호준의 이미지를 예능적으로 잘 풀어낸 단락을 볼 수 있다. 손호준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손아래라도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 손윗사람에게는 볼 것이 없다. 그는 초조해서 다리를 ‘A자’ 모양으로 세워서 앉고, 눈동자는 불안함에 쉼 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삼시세끼> 어촌 편에서는 차승원의 부엌 조수로 항상 조리기구 또는 접시를 들고 대기한다.

마침 그는 지난 15일 개봉한 김상진 감독의 영화 <쓰리썸머나잇>에서도 주인공 중 예의가 필요한 막내로 등장한다. 하지만 극중 배역은 허세가 가득한 30대 초반의 제약회사 영업사원 왕해구다. 그는 성격과 배치되는 ‘갑의 횡포’에 지치다, 함께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 고시생 명석(김동욱), 콜센터 상담원 달수(임원희)와 함께 충동적으로 부산행을 결정한다. 여름은 치기의 계절이고 열정의 계절이다. 부산에서 일탈의 짜릿함을 갈구하는 세 사람은 끊임없이 문제에 휘말리고, 그들의 화끈한 휴가라는 소박한 당초 목표는 멀어져만 간다.

“감독님의 영화는 많이 봤어요. 워낙 코믹영화에 강하셨잖아요. 그래서 연출과 관련한 지시를 하실 때는 의심하지 않고 대본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했죠. 해구는 좀 허세가 있는 친구에요. 친구 중 다 그런 분들 있잖아요. 캐릭터가 확실해요.”

연기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곤 했지만 그의 말은 절반 정도 겸손에 가깝다.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김상진 감독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주인공들의 고통이 따른다. 그들은 바닷가 해수욕장을 수 시간 달렸고, 드럼통에 갇혀 물에 잠기는 고난도의 액션 연기도 해냈다. 달수 역 임원희는 초반 영화 준비 과정에서 액션스쿨에서 연습을 하다 발가락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손호준은 그 와중에 수위가 높은 베드신도 연기했다.

“대본에는 없다가 중간에 생겨난 장면이 많았어요. 사실 베드신도 현장에서 만든 거였죠. 사실 감독님이 시사회에서 ‘호준이가 베드신 소식을 듣고 3일을 밥을 안 먹었다’고 하셨지만 사실 다이어트 중이었어요. <응사>를 마친 후 정말 6~7개월 동안 술자리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게 고스란히 옆구리나 배의 살로 가더라고요. 상의는 벗고 영화 안에 나오는데 배가 나와 보이면 안 되잖아요.”

<응사>로 이름을 알렸던 손호준은 대본을 쓴 이우정 작가의 소개로 나영석PD를 만났다.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를 거쳐 결국 손호준은 ‘나비효과’ 같은 파장 끝에 <정글의 법칙> <집밥 백선생> 등 많은 예능에 출연한 배우가 됐다.

“예능은 출연하면 출연할수록 어려워요. 나영석PD가 연출하시는 관찰 프로그램은 그렇게 어려운지는 모르겠어요. 영석이 형이 하시는 건 차라리 제게는 ‘치유’에 가깝죠. 그런데 나중에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예를 들면 토크쇼 등에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게 사실이에요. 전 사실 말을 재미있게 하는데 별로 소질이 없거든요. 그런 웃겨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생기니까 부담이죠.”

그는 그의 성격상 처음 만난 사람들과 격의 없이 말을 놓기도 어렵고, 남의 말을 자르는 일도 못한다. 그래서 그를 멀찌감치 풍경처럼 앉혀놓고 그의 세밀한 표정을 찾아내는 나영석PD의 작법이 그에게는 더 잘 어울릴지 모른다. 그는 지금은 하차를 결정했지만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한 예능에 출연했다. 맛이 ‘있다’ ‘없다’ 반응만 보이며 되니까 수월하게 찍었다.

“요즘은 요리에 관심을 붙였어요. 백종원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거든요. 요리라고 하면 무조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요리는 거창하다는 편견을 버리게 됐고, 메뉴를 보면 모르는 요리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는 김희애 주연의 SBS 드라마 <미세스 캅>에서 아픔을 간직한 형사로 좀 더 다른 이미지를 보일 예정이다. 그는 아직도 <응사>를 그의 대표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연기를 배우는 단계이고 따라서 인정을 받는 일이 먼저라고 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 게 좀 더 급했다. 인정이 됐을 때 나오는 연기, 그게 손호준의 진짜 연기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어떤 작품을 하던지 저는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기는 직업이니까 제 배역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는 게 맞죠. 예능에 나온 것도 저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것도 저지만 드라마는 좀 더 캐릭터에 맞다고 생각해요. 예능 속 손호준은 좀 더 제 모습과 가깝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저는 저 대로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