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본 역사

(43) 버드나무 잎으로 왕건을 사로잡다

입력 : 2007.10.08 21:28
[꿈으로 본 역사](43) 버드나무 잎으로 왕건을 사로잡다

고려 태조 장화왕후 오씨의 아버지는 다련군이었다. 대대로 목포에서 살아 왔었다. 다련군은 사간 연위의 딸 덕교를 아내로 맞아서 딸을 낳았다. 어느 날 그 딸이 꿈을 꾸었는데, 바다의 용이 자기의 뱃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놀라 깨어난 부모에게 이야기하니 모두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얼마 안 되어 태조 왕건이 수군장군으로 나주에 진을 두고 목포에 배를 정박하였을 때, 근처에 오색의 구름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다가가 보니 그곳에서 어떤 처녀가 베옷을 빨고 있었다. 태조 왕건은 그녀를 불러 곁에 두고 가까이 하려 하였다. 태조는 잠자리를 함께하고 임신시키기를 원치 않아, 돗자리에다 방설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임신케 노력하였다. 마침내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혜종이다. 얼굴에 돗자리 자국이 있어 세간에서는 그를 접주(주름살 임금)라 하였다. 뒷날 그 자리에 큰 절을 세우고 흥룡사라 하였다. <신동국여지승람>

장화왕후는 왕건이 궁예의 부하로 있던 914년, 수군장군으로 전라남도 나주 지방에 출전하였을 때 그곳에서 혼인하였다. 본래 신분이 낮은 나주 호족의 딸이었으나, 왕건을 만나 혜종을 낳고, 박술희 등의 비호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나주 지역에는 그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을 찾다가, 나주 금성산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 구름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왕건은 이상히 여겨 버드나무 잎을 띄운 까닭을 물었다. 처녀는 “장군께서 급히 물을 마시다가, 혹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하였나이다” 하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에 감동한 왕건은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청혼을 하고, 흔쾌히 승낙을 받는다. 처녀는 왕건이 찾아오기 며칠 전에, 이미 황룡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후 왕건과 인연을 맺게 되고 훗날 고려의 제2대 왕이 되는 혜종이(912~~945) 태어났다.

당시 처녀가 빨래하던 샘인 완사천이 지금도 나주시청 앞쪽의 도로 옆에 있고, 그 옆에는 왕후의 비가 남아 있다. 또한 왕이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왕을 상징하는 ‘용’자를 써서 이름을 ‘흥룡동’이라 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적 사건 뒤에는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왕이 되고 왕비가 되는 데 있어, 어찌 꿈으로 예지되는 일이 없을 것인가? 또한 고귀한 신분으로 나아가는 꿈 이야기 속에는 부귀와 권세·명예를 상징하는 용이나 해와 달의 꿈 이야기가 상징성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 뱃속으로 용이 들어오는 것은 용으로 상징된 귀한 인물이 다가오게 되거나, 태몽으로 귀한 인재를 낳게 될 것을 상징적인 미래예지 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안 좋은 태몽으로 태어난 고려말 비운의 정몽주 태몽을 살펴본다.

◇난초 화분을 안다가 놀라 떨어뜨린 정몽주의 태몽

정몽주는 자는 달가이며, 호는 포은이고, 본관은 연일이다. 어머니 이씨가 난초 화분을 안다가 놀라 떨어뜨리는 꿈을 꾼 후 공을 낳았다. 따라서 이름을 몽란이라 하였다. 어깨 위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흑룡이 동산의 배나무 위에 올라가는 꿈을 꾸다 놀라 깨어, 나와 보니 바로 공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또 몽룡이라 하였다. 관례하면서 지금의 이름 몽주로 고쳤다. <연려실기술>

정몽주(1337~~1392)는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로서, 어릴 때 이름은 몽란 또는 몽룡이었는데 성인이 되어 다시 몽주라 고쳤음을 알 수 있다. 몽주 이름 또한 꿈에 중국의 주공을 보고 낳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처럼 태몽이 하나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꿈속에 어떠한 사람이 태몽 표상으로 등장하는 경우, (나타난 사람과) 체격이나 성품 또한 학식이나 인생의 운명길이 유사하게 전개된다. 주공은 BC 12세기에 활동한 중국의 정치가로 성은 희, 이름은 단이었다. 주나라 초기에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공자가 나이 들어 꿈속에서 주공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늙고 노쇠함을 걱정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공자는 그를 후세의 중국 황제들과 대신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격찬했다. 정몽주 역시도 고려말 학자로서 우러름을 받은 것으로 미루어, 태몽 꿈에서 본 주공과 인생의 길이 같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태몽의 표상으로 등장한 사물이나 동물이 깨지거나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장차 인생 길에서 요절이나 병마 등으로 인하여, 시달리게 되는 일로 이루어진다. 난초 화분을 떨어뜨리는 태몽 꿈의 실현은 훗날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타살되는 비운을 예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소개:춘천기계공고 국어교사, 한라대 강사, 꿈해몽전문가, 문학박사(한문학) ‘꿈으로 본 역사’ ‘파자이야기’, ‘꿈해몽백과(공저)’ 등 8권의 저서가 있으며, ‘홍순래박사 꿈해몽’(http://984.co.kr, 984+접속버튼)의 사이트를 통해 꿈에 대한 연구와 정리를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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