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 금강송 군락지.
소나무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곧 ‘한민족의 기상’이요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도 소나무다. 그만큼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민나무’인 셈. 하지만 ‘금강송(金剛松)’은 흔치 않다.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인 까닭에 과거에는 왕실의 건축자재나 관을 만드는 데만 사용됐다. 얼마 전 화마에 휩쓸려 한 줌 재가 된 숭례문과 경복궁 복원에 쓰인 나무도 바로 금강송이다. 최근 금강송이 다시금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일까. 사철 푸르러 제 철이 없지만 이즈음 순백의 설원 위에 우뚝 선 금강송은 그 자태가 장엄하기까지 하다. 황량한 겨울산을 산답게 지켜주는 국내 대표적인 금강송군락지 4곳을 둘러봤다.
- 울진|국내 최대규모… 520살 명품송 우뚝 -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소광리 금강송군락지는 불영계곡의 원류인 대광천을 따라간다. 자수정광업소에서 917번 지방도를 따라 5㎞쯤 들어가면 갈림길. 우측 길로 3㎞쯤 가면 도로 왼쪽에 ‘황장봉계표석’을 만난다. 조선 숙종 6년에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을 금지했던 표석이다.

삼척 금강송 군락지.
여기서 6.5㎞ 떨어진 곳에 금강소나무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 맞은편에는 520년생 금강송이 우뚝 서 있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려 잡아도 손이 닫지 않는 보호수다. 25에 이르는 소나무는 휘어진 채로 중간에 가지를 냈다. 그 ‘덕’에 벌목에서 제외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금강송군락지 초입에 들어서면 높고 곧고 짙게 푸른 금강송이 삿갓재와 백병산 기슭을 따라 빼곡하다. 중간에 가지를 내지 않은 채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치솟은 ‘명품 소나무’다. 이 땅에 이만한 숲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우거진 숲이다.
이곳 금강송의 수령은 10~520년. 1610㏊에 이르는 숲에는 520년 된 보호수가 2본이나 되고 직경 60㎝ 이상의 소나무만 1672본에 이른다.
임도를 따라가다 계곡 길로 내려서는 탐방로는 모두 3곳. 전체를 둘러보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눈 덮인 겨울 숲은 새소리만 청량하다. 그 숲에 들어서면 한줄기 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가 싱그럽다. 울진의 금강송은 15㎞에 걸친 불영계곡의 기암괴석 사이사이에도 뿌리를 박아 근사한 풍광을 선사해 준다. 울진국유림관리소 (054)783-7074
- 봉화|솔숲산책뒤 탄산약수 한모금 ‘캬~’ -
경북 내륙의 오지 중 오지인 춘양면 서벽리 문수산 자락에도 금강송군락지가 있다. 915번 지방도로를 따라 주실령을 넘어간다.

봉화 금강송 군락지 탐방로.
울진보다 규모는 작지만 때깔 좋은 금강송은 여전하다. 평균 수령은 50년 정도. 일제시대 때부터 끊임없이 남벌된 탓이다. 금강송은 이곳에선 이름을 달리 한다. 이른바 ‘춘양목’이다. 과거 인근 지역에서 벌목한 금강송을 영암선 철도인 춘양역에 모았다 전국으로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숲에는 1.5㎞에 걸쳐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탐방로 곳곳에는 수목과 야생화, 야생동물에 대한 설명을 적은 해설판을 세웠다. 맑은 공기와 더불어 숲길을 걸으며 아름드리 금강송을 발견하듯 관람하는 맛이 쏠쏠하다.
보기에도 훤칠한 1500여 그루의 금강송에는 페인트로 번호가 매겨졌다. 2001년 문화재 보수 및 복원을 위해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그중 ‘풍채’가 당당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수령 200년 된 왕금강송이다. 산책로 중간쯤에 있다. 어른 2명이 껴안아야 할 정도로 굵고 전봇대를 박아놓은 것처럼 기골이 장대하다.
탐방로 산책을 마치고 인근 두내약수와 오전약수에 들르면 탄산약수로 갈증을 달랠 수 있다. 영주국유림관리소 (054)633-7278
- 영양|산림청 지정 ‘미림단지’ 절경 자랑 -
산림청에서 ‘미림단지’로 지정할 만큼 금강송군락지가 아름다운 곳이다. 수비면 본신리 일대 드넓은 숲은 구주령 정상 부근에 터를 잡았다. 88번 국도와 인접해 접근이 수월하다. 길 양쪽 금강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 산림청에서는 방문객을 위해 1~4시간 걸리는 3가지 코스의 탐방로를 조성해 놨다. 숲에는 숲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둘러볼 수 있고 야외 텐트장도 설치됐다.
드넓은 산자락에는 금강송을 중심으로 다양한 나무가 조림돼 있다. 이곳 금강송도 문화재 복원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됐고 금강소나무림의 후계숲 조성을 위한 시범림이기도 하다. 군락지 입구 좌측 아름드리 금강송이 이곳의 터줏대감.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오른 금강송의 자태가 당당하다. 어른이 양 팔을 벌려 껴안기가 버거울 정도. 입구를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가는 탐방로는 지난 주 내린 폭설로 갈 수 없는 게 아쉽지만 길 양쪽으로 온통 붉은색을 띤 금강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 금강송군락지는 임업장비를 활용해 숲을 가꾸는 기계화 시범사업장으로 활용될 만큼 뛰어난 입지여건이 자랑. 인근에 산더덕재배지가 있어 체험학습을 겸한 금강송 탐방여행을 다녀올 만하다. 영덕 국유림관리소 (054)732-1604
- 삼척|조선왕실 소유…숭례문 복원목재 후보 -
강원도 두타산과 덕흥산 사이 골 깊은 계곡에 터를 잡은 준경묘(濬慶墓) 일대도 울진에 버금가는 금강송군락지가 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의 아버지인 이양무(李陽茂) 장군의 묘소. 주차장에서 산 쪽으로 숲길을 걷다보면 이내 시야가 확 트이고 빼곡하게 들어선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 곳 휨 없이 곧게 치솟은 나무는 고개를 올려 봐도 끝을 보이가 쉽지 않다. 이곳 금강송의 유명세는 조선시대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당시 경복궁을 중수할 때 이곳의 금강송을 재목으로 썼고 속리산 정이품송과 혼례(교배)를 치른 정부인송도 터를 잡고 있다. 높이 32, 둘레 2.1의 ‘혼례나무’는 충북 보은군의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명물이다.
준경묘 일대 금강송군락지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모습을 갖춘 것은 사람의 손을 덜 탔기 때문. 조선시대엔 왕실 소유였고, 현재는 전주 이씨 문중림으로 관리돼 남벌과 도벌을 피했다.
최근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복구를 위해 문화재청은 금강송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준경묘 일대 금강송이 유력한 후보. 이곳에는 지름 80㎝ 이상의 금강송이 20여 그루에 달하고 지름 60㎝ 이상만 해도 1000그루가 넘기 때문. 특히 1961년 숭례문 중건 때도 이곳 금강송이 재목으로 사용된 경력을 갖고 있다.
눈 덮인 황량한 겨울산을 산답게 해주는 금강송.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는 금강송이 이 땅에 뿌리박고 선 모습이 자랑스럽다. (033)570-3224
- 금강송이란? 잘 안썩고 단단… 왕실용 명품소나무 -
소나무는 크게 ‘육송’과 ‘해송’ 2가지. 대부분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은 수피가 검은색을 띠어 ‘흑송’으로도 불린다. 또 주로 내륙지방에 분포하는 육송은 상단부가 붉은 색을 띠어 ‘적송’이라고 하는데 금강송이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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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강송군락지는 강원도 대관령·삼척, 경북 울진·봉화·영양·영덕 등이 대표적. 금강송은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여럿이다. 강원도와 경북 울진 지역에서는 ‘금강산 소나무’를 줄여 ‘금강송’ 또는 ‘금강석처럼 단단하다’는 뜻에서 ‘강송(剛松)’으로 부른다.
또 경북 봉화에서는 금강송을 ‘춘양목(春陽木)’으로 통칭해 사용한다. 이는 ‘춘양역에서 싣고 온 나무’를 일컫는 말에서 연유된 것. 춘양역은 태백산맥 일대의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기 위해 1955년 7월 개통된 영암선의 한 역으로 당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벌채된 목재가 춘양역에 집재된 후 서울 등 대도시로 수송됐다.
하지만 금강송의 원래 명칭은 ‘황장목(黃腸木)’이다. 황장목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던 질 좋은 소나무’로 나무 중심부가 황갈색을 띠어 예부터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황장목은 잘 썩지 않고 보통 소나무와 같은 굵기라도 수령은 3배나 많아 그만큼 재질이 단단하다. 또 껍질은 얇고 위로 갈수록 붉은색을 띠며 거북이등 모양으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부터 왕실의 건축자재나 관을 만드는데 사용돼 일찍이 국가에서 중요 자원으로 인정받았다.
- 울진 송이·삼척 곰치국도 맛보세요 -
▲찾아가는 길:봉화를 첫 코스로 잡는다면 영동고속도로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영주시에서 봉화방면으로 가면 된다. 또 울진은 봉화에서 36번 국도를 따라가고 울진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삼척이다. 영양은 삼척에서 7번 국도를 이용, 평해에서 31번 국도를 따라가거나 봉화에서 31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가볼만한 곳:울진은 천연알칼리성 라듐성분을 함유한 백암온천과 덕구온천이 유명하다. 봉화의 대표적 관광지는 청량산도립공원. 턱걸바위, 관창폭포, 금탑봉 등은 물론 천년고찰 청량사도 둘러볼 만하다. 영양은 문향의 고장이다. 오일도, 조지훈, 이문열 등의 생가가 이곳에 있어 문학기행을 다녀올 만하다. 삼척은 동굴이 유명하다. 그중에서 최근에 개방된 대금굴은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내부 140까지 들어가 종유석, 동굴진주, 폭포 등을 관람한다.
▲먹을거리:울진은 송이와 대게가 유명하고 봉화는 송이돌솥한정식과 봉성 짚불구이돼지고기가 대표적 먹을거리다. 또 영양은 일월산흑염소와 메기매운탕이 맛있고, 삼척은 활어회와 곰치국을 즐길 수 있다.
▲숙박:백암한화콘도(울진, 054-787-7001), 만산고택(봉화, 054-672-3206), 검마산자연휴양림(영양, 054-682-9009), 호텔펠리스(삼척, 033-575-7000) 등
▲문의:울진군청 문화관광과 (054)785-6393, 봉화군청 문화체육관광과 (054)679-6394,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054)680-6067, 삼척시 관광정책과 (033)570-3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