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객'의 최종수PD는 영덕의 앞바다를 사랑한다.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 정감 넘치는 바다를 배경으로한 장면이 등장했다. 넘실대는 파도를 배경으로 극중 성찬(김래원)과 주희(김소연)이 드라이브를 하다가 성찬이 바닷물을 떠가기 위해 달려가는 그런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대장장이가 직접 벼른 수제 식칼을 찾으러 다녀오는 길이었다.
높은 파도 옆으로 얼핏얼핏 스치는 바닷가 마을의 풍광을 보면서 '어느 바닷가가 저리 아름다울까' 궁금했다. 바닷가 덕장에 건조를 위해 걸어놓은 싱싱한 오징어에서 금새라도 바닷내음이 배어나오는듯 했다. 극중 주희의 대사를 통해 그곳이 경북 영덕의 한 바닷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가 '식객'의 연출가 최종수PD였다. 단정적으로 얘기하면 최종수PD는 분명 경북 영덕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무명의 포구였던 경북 영덕의 강구항(江口港)을 전국민이 찾는 관광지로 만든 이가 최종수PD였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최종수PD를 잘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미 중진급 감독 반열에 오른 최종수PD는 MBC를 드라마왕국으로 건설하는데 앞장섰던 스타PD였다. 장안의 화제가 됐던 '수사반장''첫사랑''사랑과 야망''제4공화국'의 연출자였고, 그가 기확자로서 참여한 최진실 주연의 '질투', 심은하 주연의 '마지막 승부', 차인표 주연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 김수현의 공전의 히트작 '사랑이 뭐길래'등은 시청률 40%를 넘나든 장안의 히트작이었다.
지금도 황신혜, 차화연, 김희애, 고소영, 심은하, 차인표 등에게 묻는다면 최종수PD가 자신들을 발굴하여 스타반열에 올려놓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식객'의 대령숙수로 등장하는 최불암은 그와 더불어 한평생 연기인생을 같이해온 동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를 관통하면서 MBC가 드라마왕국으로 군림한 배후에는 최종수PD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왜 경북 영덕을 유명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걸까. 그 중심에 MBC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가 있다. 1997년과 98년 사이에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최불암을 비롯해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를 비롯해 한류스타 송승헌 등이 출연했다. 박상원과 차인표, 송승헌이 삼형제로 등장했고, 그들의 아버지인 최불암이 사는 집이 바로 경북 영덕의 강구항이었다. 그당시만 해도 지방자치단체가 지금처럼 세트장을 지어주고,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이도록 하는 마케팅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매주말 영덕의 강구항이 타이틀로 비춰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영덕과 강구항을 동해안 여행의 필수코스로 잡았다. 기자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훨씬 이전에 그 강구항에 가봤다. 어느 이른 봄날 작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 위를 날던 수만마리의 갈매기떼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포구 끝에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에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했다.
한참 뒤에 그곳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뒤 다시 찾았을 때, 이미 그곳은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정동진이 그랬듯이 원래 사람들의 때를 타면 예전만 못해지는건 당연지사일런지 모른다.
여하튼 그런 영덕이 다시 '식객'의 한 무대로 등장해서 무척 반가웠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한 시절 '열종수'로 불리던 최종수PD가 다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성기 시절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바꿨던 그가 다시 만드는 드라마는 어떨까. 혹, 감각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젊은 제작팀들과 호흡은 잘 맞을까.
극초반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의 드라마에서 열정과 따스한 인간냄새가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사진:'식객'의 최종수 감독과 '식객'의 한 장면>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
ps. 다 쓰고 나니 기자로서 낙종을 했던 아픈(?) 기억 하나를 고백해야 할 듯하다. 방송담당 기자 시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시사회를 끝내고 기획자(CP)였던 최종수PD를 비롯해 주인공인 차인표와 신애라 등과 술 한잔을 하게 됐다. 여의도의 조그마한 카페에서였다. 그때 기자는 차인표와 신애라 사이에 끼어앉아 있었다. 최종수 PD가 왜 생짜 신인인 차인표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쓰게 됐는지 먼저 설명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신애라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차인표를 칭찬하고 나선 거였다. 차인표가 얼마나 반듯한 청년인지, 대본을 얼마나 성실하게 리딩하는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세심한지…. 하얀 옥니를 드러내고,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당시에도 차인표를 바라보는 신애라의 눈빛은 분명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두 사람이 심상치 않았음을…. 그런데 그냥 술마시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차인표가 섹소폰 한번 불고 장안 최고의 훈남이 됐음에도, 차인표와 신애라의 관계를 살펴보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열애 기사는 모 스포츠지가 특종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