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포스터.
<김씨표류기>의 이해준 감독이 포토 코멘터리를 13일 공개했다. 이해준 감독이 현장사진과 촬영현장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엮은 ‘리얼 야생 촬영기’로 충무로에서 감독이 이같은 걸 공개한 것 이번이 처음이다. 가공되지 않은 현장 사진과 당시 감독의 심경… <김씨표류기>의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포토 코멘터리 전문을 그대로 전한다.
8회차의 촬영 제한, 20명의 스텝 제한, 조명을 쓸 수 없는 최소의 촬영장비. 최초의 밤섬 촬영허가는 그만큼 가혹한 조건이 따라 붙었다. 가능할까…… 이런 조건으로 번듯한 상업영화의 그림을 담아낸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의 촬영은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것. 스텝과 장비를 나르는 유일한 이동 수단, 해병 전우회의 고무 보트에 앉아 있자니 전장에 나가는 기분이 묘한 현실감을 갖는다. 그러나 이 현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더 이상 밤섬은 꿈이 아니라 디디고 설 수 있는 현실이니까. 그렇게 비장한 즐거움으로 하루 종일 두근거렸던 최초의 밤섬 촬영, 그 역사적 첫날.
배우가 거울을 본다. 배우가 거울을 볼 때마다 감독은 이상한 안도감에 사로 잡힌다. 이 안도감의 정체는 뭘까.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로서의 자신들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아끼는 순간이기 때문일까….. 어찌됐건, 거울을 보고 또 봐도 질 가능성은 제로다.
열심 분장 중인 재영 선배를 촬영 중인 려원. 그녀는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즐긴다.
물과 흙으로 범벅이 된 밤섬의 주인장, 재영 선배가 그녀를 열렬히 맞이하며 안으려 한다. 그녀도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비명을 지른다.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없이 100% 훈훈한 순간;;;
정재영이란 인간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적절한’ 사람이다. 그는 적절하게 착하고. 적절하게 안 착하며. 적절하게 웃기고. 적절하게 진지하다. 적절하게 까칠하며. 적절하게 여유 있고. 적절하게 비관적이며. 적절하게 낙천적이다. 뭐랄까….. 딱 알맞은. 참으로 좋은 느낌의 적절함이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의 느낌만은 아니다.
재영 선배의 생일을 맞아 려원의 주도 면밀한 지휘 아래 작성된 생일 북. 재영 선배를 향한 스텝들의 뜨거운 애정과 사랑과 연모를…. (다 같은 말인가?)….. 좌우간, 엿 볼 수 있다. 재영 선배는 이 생일 북을 자신의 가보로 삼겠다 했다.
영화 현장에서의 계절 속도는 순식간이다. 어제는 여름인 거 같았는데 오늘은 가을이다. 조급함의 속도도 점점 더 가속이 붙는다. 조급함의 이유 중엔 배우에 대한 걱정도 있다. 빤쓰 한 장 걸치고 연기해야 하니 앞으로 얼마나 춥고 고단할까? 드라이기로 추위를 이겨보겠다는 그의 장난이 현장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였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문득 스틸 들을 넘겨 보며 지난 시간들을 돌이키다 보면. 가끔, 재영 선배 뒤에서. 간혹, 감독의 뒤에서. 종종, 스텝들 한 명 한 명의 뒤에서….. 그때는 알지 못했던 순간 순간마다, 우리들 뒤에 있어 왔던 그녀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즐겁고 재미있는 사진이 분명한데, 괜스레 맘이 짠하다.
훌륭한 감독이 되는 방법은 훌륭한 스텝들이 훌륭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묵묵히 시간을 주는 게 아닐까….. 그게 참…… 알면서도 쉽지 않다. 아무리 조급하게 쫓기는 상황이 올지라도 여유 있게 담대하게…… 재영 선배의 저 하품을 배워야 한다.
촬영 세팅 사이 쉬는 시간. 매 씬이 그 섬의 그 자리….. 상대 배우도 없다……. 대사도 그리 많지 않다……. 배우로선 거의 차 포를 떼고 둬야 하는 장기처럼 열악하고 외로운 이 환경을….. 보라. 재영 선배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극복해갔다.
폼 좀 잡아도 되셨다. 이래 뵈어도 우리영화에선 아직까지 멋있는 축에 들 수 있는 멀쩡한 모습이니까. 이후론 줄곧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그렇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들 뒤에 있어 왔던’ 정려원은 이 사진에도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사진만큼은 짠하진 않다.;;;
밤섬의 마지막 날, 재영 선배가 스텝들에게 회식 쏘는 날. 놓칠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기회에 신하균님도 왕림 하셨다. 김홍집 음악감독과 임필성 감독까지. 마지막 컷을 남긴 채 1차로 밤섬을 떠나는 보트팀이 남은 촬영팀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이 날, 나를 포함한 남은 스텝을 실은 마지막 보트는 기름이 떨어져 그야말로 한강 한가운데 서버렸다. 해는 저물어 어둑해지고 아주 멀리서 유람선이 지나도 그 물살의 영향으로 요동치는 고무보트 위에서의 표류. 철수 중이던 나무선이 부랴부랴 달려와 끌고 가줄 때까지 대략 20분. 막 시작되려는 도시의 야경과 어둠 속에 잠겨가는 밤섬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이렇게 밤섬에 왔노라 그리고 찍었노라…
<김씨표류기>는 자살에 실패한 뒤 불시착한 밤섬에서,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에서 은둔하는 두 김씨의 삶을 다뤘다. 한정된 시공간을 뛰어넘는 오락·작품성이 돋보이는 기대작이다. 14일 개봉된다.
<스포츠칸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