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기자의 이런생각

찰리 채플린과 김제동

입력 : 2009.10.14 19:44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탁월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모던 타임스'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채플린은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열풍으로 추방되어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는 당시 마녀사냥식으로 진행된 반공주의의 희생양으로 지목돼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끊임없이 사찰을 당했다. 영화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위대한 미국을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철학적 유머로 가득한 그의 영화는 지금 위대한 영화교과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말은 들어본 바 없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그의 탁월함은 후세의 평가로 입증됐다.

윤도현이 KBS로부터 퇴출됐을 때 다음 차례는 김제동이나 김C가 아닐까 우려했다. 김제동은 전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자 자청해서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해준 현 소속사로 들어갔다. 윤도현과 김C, 강산에 등이 소속된 다음기획을 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계약금 한 푼 받지 않았다. 대구에서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로 일하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서울로 불러올린 게 윤도현과 다음기획 대표였기에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것이다. 

나는 글로 밥을 먹고사는 기자로서 김제동의 재능을 잠시나마 시기한 적이 있었다. '딴따라'가 웬 글을 그리 잘쓰는지, 게다가 말까지 잘하니…. 인터넷을 보면 '김제동 어록'이 족히 책 한 권 분량이 넘는다. 그의 말 한 마디, 그의 글 한 줄에서 늘 진정성을 담은 힘을 느낄 수 있다. 노무현 노제때 읽어내려간 조사나 '쌍용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에서 느껴지는 공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일부의 시선처럼 김제동이 진보적이거나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정한 좌파라면 그가 MB정권 취임식의 식전행사 사회를 맡았겠는가. 그리고 죄파 진영에서 그를 그냥 놔뒀을 리도 없다. "웃음에는 좌도 우도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땅의 MC일 뿐이다.
여하튼 김제동의 하차가 KBS 이병순 사장의 해명대로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건강한 상식을 갖고 있어야 할 공영방송의 수장이나 간부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알아서 처신한 거라면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보석'인 찰리 채플린을 온갖 구실로 중립국으로 내몰았던 매카시즘의 광풍이 이 땅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데올로기 과잉시대에 전세계적으로 몰아쳤던 좌우대립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비극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또 한 가지 바라는 건 김제동이 시시껄렁한 잡담을 늘어놓는 MC가 아닌 유머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한국의 채플린'이 됐으면 좋겠다. 하여, 그의 유머 때문에 국민들이 세상의 실망과 근심을 잠시라도 잊게해 줬으면 좋겠다. 

<오광수 문화연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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