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말싸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고, 결국 감정싸움과 몸싸움으로 치닫는다. 그러는 사이 처음에는 한 편이었던 무리도 차츰 입장이 뒤바뀌어 적이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적이었던 이가 같은 편이 되기도 한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세계적인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으로 2009년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여우주연상 등 3관왕을 차지했고, 2009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코미디 상 등 권위있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휩쓴 화제극이다.
'대학살의 신'이라는 제목 때문에 대형 스케일을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11살 두 소년의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양측 부모가 점잖은 대화로 풀어가려다 논쟁으로 점차 과격화되고 유치한 설전에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코미디 연극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은 한 아이의 집이고, 양측 부모 4명이 출연진의 전부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는 끊임없이 웃음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기업의 무정함, 휴대전화에 중독된 사람들, 인간의 허영과 위선이 숨어있다. 변호사 알렝과 아내 아네트, 아마추어 작가 베로니크와 남편 미셸을 맡은 박지일-서주희, 오지혜-김세동은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들면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아네트의 구토 장면.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관객일지라도 '어떻게 저렇게 리얼할 수 있을까?'라고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비위가 약한 분들이라면 앞자리는 피하는 것이 좋다.
공연시간은 불과 90분이지만 연극뒤의 여운은 꽤 길다.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특히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하지만 결국 비방과 삿대질, 욕지거리로 이어지는 인간의 유치함은 곧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연극이지만 싸움으로 조금은 서먹해진 부부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연극이다.
5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공연예매 1544-1555(인터파크), 1588-7890(티켓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