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암산(해발 961.7m)은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해 대간꾼들이 종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산이다. 7부 능선 위로는 거대한 기암지대. 그 모습이 마치 베(布)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여 베바위산,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지릅) 같아 마골산, 계립령(하늘재)을 끼고 있어 계립산으로도 불린다. 하늘재를 들머리로 삼아 정상에 오른 뒤 만수봉(해발 983m)을 거쳐 만수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이 가을 산꾼들을 불러 모은다. 하산 길에 낙조를 만나면 핏빛으로 물드는 단풍이 장관이다.
포암산 등반 코스는 대략 5개 정도다. 이중 하늘재를 들머리로 삼아 오르는 코스가 가깝고 운치 있다. 하늘재는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반대편 문경에서 올라오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길이라 옛길의 정취가 떨어진다.
미륵리 주차장에서 300m쯤 올라가면 미륵리 절터다. 이 절터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계시를 받고 석불을 세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너른 절터에는 야트막한 언덕을 등지고 우뚝 선 석불(미륵석불입상, 보물 제96호)이 길손을 맞는다. 10.6m짜리 석불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돌이끼를 어깨까지 두른데 반해 머리 부분은 새것처럼 반질거리는 점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과 석등이 일렬로 서 있고 온달 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1m 크기의 공깃돌 바위,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거북모양의 귀부(비석 받침돌) 등이 천년 세월을 안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터를 나오면 은행나무길.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해 하늘길로 인도한다. 길 중간쯤 미륵대원터를 지나 은행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50m쯤 올라가면 하늘재 입구다.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하늘재는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자 고개다. 156년 신라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길을 뚫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잇는 죽령(해발 689m)보다 2년 앞선다.
문경읍 관음리와 충주시 미륵리를 잇는 하늘재는 이름처럼 높지 않다. 고개 정상이 불과 해발 525m다. 불교 용어로 미륵은 내세불이고 관음은 현세불이다. 하늘재는 미래와 현세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란 뜻인가. 아니면 그 중간쯤 되는 것일까.
포암산과 탄항산 사이 낮은 목을 넘어가는 하늘재는 정상까지 2㎞ 거리다. 자연과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걸으면 1시간 남짓 걸린다.
2000년 가까운 세월 만큼이나 고개가 품은 역사는 깊다. 계립현, 마목현, 마골산, 마골참, 대원령, 한훤령 등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인 하늘재는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다. 또 온달장군의 기백이 서려 있고, 궁예는 상주지방을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다.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행렬도 이 땅을 밟았고,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 공주의 한이 스며 있다.
하늘재 들머리 갈림길에 이르자 솟대와 장승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다. 오른쪽은 대원사로 향하는 길. 좌측 숲길로 들자 계류가 반긴다. 새소리 청량한 호젓한 길이다. 고갯마루까지 이어진 야트막한 오름의 흙길은 아름다운 숲길의 정수를 보여준다.
500m쯤 가면 좌측으로 역사·자연탐방로가 나온다. 자연을 접하고 역사를 엿보는 길이란다. 낙엽송이 대세를 이룬 숲은 노랗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박힌 단풍나무가 수줍은 듯 붉힌 얼굴을 내민다. 길 중간쯤에서 만나는 ‘김연아를 닮은 나무’는 모양이 독특하다. 한 쪽 다리를 뒤로 치켜 올린 모양이 김연아가 묘기를 부리는 모습과 닮았다.
길섶에 핀 들꽃을 벗 삼아 상념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숲길을 벗어나 정상에 오르자 하늘이 터진다. 왼쪽(동쪽)으로 포암산, 오른쪽(서쪽)으로 탄항산이 얼굴을 맞대고 백두대간을 잇고 있다. 하늘재산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온갖 풍상과 애환이 고스란히 스민 하늘재를 뒤로 하고 포암산 들머리 가파른 계단길에 오른다. 계단 끝에서 하늘샘까지는 야트막한 오름을 따라 간다. 하늘샘을 벗어나자 길은 곧바로 곧추선다. 된비알을 피해 위회로를 찾아 비껴 오르면 포암산은 그 때부터 ‘포악산’으로 바뀌니 제대로 된 등반로를 따라야 한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등반로는 흐릿하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발 한발 오르자 암릉지대에서 시야가 터진다. 힘차게 솟아오른 연봉들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산꾼들이 쌓아놓은 돌탑을 지나면 길은 이내 으슥한 숲길로 바뀐다. 숲길을 벗어나면 철제다리를 만난다. 정상이 코앞인데 장딴지가 뻐근하다. 철제다리는 다리에 코를 박고 오를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중간쯤에서 뒤돌아보면 오금이 저린다.
포암산 정상은 비좁다. 표지석을 중심으로 어른 키만한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키 작은 나무를 헤치고 사방을 둘러본다. 조령산, 월악산, 월항삼봉에서 포암산, 대미산을 거쳐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또렷하다.
여기서 월악산 만수봉까지는 5㎞. 거리는 멀지만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라 수월하다. 만수봉은 월악산의 주능선과 포암산 연능 사이에 솟은 암봉이다. 지도상에는 무명봉으로 남아 있지만 산 아래 만수교와 만수골 이름을 빌려 만수봉으로 통한다.
만수봉 역시 조망이 탁월하다. 허연 암벽을 드러낸 채 어깻죽지를 맞대고 줄줄이 이어진 산봉들이 장관이다. 산행은 만수봉 정상을 찍고 다시 만수봉삼거리로 돌아와 계곡탐방로를 따라 만수교로 내려서는 게 무난하다.
정상에서 산죽밭을 거쳐 ‘만수교 3.5㎞’ 이정표를 지나면 본격적인 만수골이다. 골이 깊어 냉기가 가득한 만수골은 크고 작은 폭포가 수없이 이어진다. 널찍널찍한 반석을 타고 넘는 계류 위로 오색단풍이 고운 때깔을 뽐낸다. 해거름에 도착한 만수교에 올라 다리품을 쉰다. 멀리 국토의 등뼈를 따라 이어진 백두대간 산봉이 노을 속에 아스라히 잠긴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서울→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충주방면 19번국도→충주호 방면 36번국도→597지방도로→수안보온천→월악산 탐방안내소→미륵리 주차장
■주변볼거리:충렬사, 중앙탑, 중원고구려비, 충주호, 월악산, 탄금대, 택견전수관, 사과과학관, 우륵당, 구룡폭포 등
■맛집:꿩샤브샤브가 별미다. 감나무집(043-848-0609)과 대장군식당(043-846-1757), 삿갓촌식당(043-846-2529), 약수터집(043-844-9231)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이외에 실비집(민물고기, 043-856-5108), 영화식당(산나물, 043-846-4500), 중앙탑오리집(오리요리, 043-857-5292) 등
■도보 여행길:충주에는 비내길(17㎞), 사래실 가는 길(10.8㎞), 새재넘어 소조령길(36㎞), 하늘재길(1.8㎞) 등 4가지 코스의 풍경길을 조성했다. 이중 비내길은 억새와 갈대가 장관인 비내섬을 거쳐 가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다.
■온천:수안보온천(043-846-3605), 앙성탄산온천(043-844-2020), 문강유황온천(043-848-5115) 등 3개의 온천지구가 있어 산행 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숙박:수안보한화콘도(043-846-8211)는 30일까지 최대 34% 할인된 ‘바비큐 패키지’를 운영한다. 객실 1박과 가든 바비큐 세트(2명), 온천(2명)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9만8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 사조리조트콘도(043-846-0750), 조선관광호텔(043-848-8833), 수안보상록관광호텔(043-845-3500), 일양유스호스텔(043-846-9200), 계명산자연휴양림(043-850-7313), 봉황자연휴양림(043-850-7315), 밤별야영장(043-854-1133) 등이 있다.
■문의:충주시 관광과 (043)850-67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