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 파도소리 따라가는 ‘힐링 로드’

입력 : 2012.11.14 17:39 수정 : 2012.11.14 21:37

풋풋한 외모 뒤에 카리스마를 숨긴 배우 김수현(24).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한번 가볼 것을 권유 받았던 부산 이기대는 그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부산에 그런 곳이 있었나’ 싶었지만 두 기녀의 슬픈 사연을 품은 곳이라는 데서 호기심이 발동했고, 지난 여름에서야 친구들과 함께 이기대를 가보게 됐다고 했다. 김수현은 “부산의 여느 명소와 달리 한적해 사색에 빠져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은 곳”이라며 “해식동굴과 기암절벽 등 곳곳에 볼거리가 많고 풍광이 뛰어나 발걸음을 붙잡는 구간이 많았다”고 했다.

이기대는 부산 남구 용호동 산25번지 일원의 이기대 공원을 말한다.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850년 좌수사 이형하가 쓴 <동래영지>에는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있다. 위에 두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그리 말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두 명의 기녀가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로 투신해 함께 죽은 곳으로, 이기대가 아니라 ‘의기대(義妓臺)’가 올바른 명칭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이기대 공원은 장산봉(해발 225.3m) 동쪽 자락에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바다로 몸을 감추는 산자락 끄트머리 용호부두 동생말에서 오륙도로 이어지는 4.7㎞ 거리의 해안산책로가 백미. 한적하고 조용해 파도 소리를 온전히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명품길이다. 부산 갈맷길과 동해 해파랑길도 이곳을 거쳐 갈 만큼 풍광 또한 눈부시다.

부산 이기대

부산 이기대

동생말을 출발점으로 삼아 길에 오르니 해풍에 실려 온 갯내음이 상큼하다. 해안길은 바다와 숲을 양쪽에 끼고 간다. 한동안 군사전략 지역으로 묶인 탓에 주변 자연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들쭉날쭉한 해안길을 따라 10분 정도 발품을 팔자 날카롭게 솟은 바위 위로 구름다리가 이어진다. 5개의 현수교가 해안 절벽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총 연장 길이는 127m. 걷는 동안 몽돌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발걸음을 따라온다.

다리를 건너면 해식동굴.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린 동굴은 파도와 바람의 작품이다. 거북이가 바다로 나가는 모양의 해녀 막사도 길에서 만난다. 40년 전 해녀들이 조업 후 어구를 보관하고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해녀 막사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자 마당바위 너머로 수영만이 시원하다. 마당바위 위에는 세숫대야처럼 생긴 자국이 군데군데 움푹움푹 파였다. 6500만 년 전 살았던 초식공룡 울트라사우르스의 발자국이란다.

해안산책길 종착지인 오륙도

해안산책길 종착지인 오륙도

김수현은 “첨단 도시 해운대와 마주한 이곳에 공룡 화석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수천 년 전 사람보다 먼저 이 땅을 터전으로 삼았던 공룡을 생각하면 아스라이 먼 시간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어울마당에 이르면 시야가 아득하게 넓어진다. 야외 공연장처럼 꾸며진 어울마당은 영화 <해운대>에서 배우 이민기가 열변을 토하며 ‘이기대’를 설명했던 장소다. 간이매점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멀리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와 마천루들이 솟은 해운대가 무척 이국적이다. 광안대교와 해운대는 홍콩 부럽지 않은 야경 또한 압권. 밤바다에 취하기 십상이다.

40년 전 해녀들이 이용했던 막사.

40년 전 해녀들이 이용했던 막사.

여기서부터 해안길은 날카롭게 솟은 절벽 허리춤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갈옷을 입고 있는 모양의 치마바위, 3개의 바위가 위태롭게 서 있는 농바위가 줄줄이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풍광이 새롭다. 비좁은 흙길에는 여린 잎을 하늘거리는 야생화가 반긴다. 걷다 지치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해변도 곳곳에 숨어 있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해안길과 숲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해안으로 달려드는 파도는 쉼 없이 부서지고, 쪽빛 바다와 살을 맞댄 기암절벽에 시선을 자주 뺏긴다.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이 길은 삶의 속도를 잠시나마 늦춰준다.

김수현은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조용히 쉴 수 있었던 그 시간 자체가 너무나 멋진 추억”이라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이기대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본 바다풍광을 떠올리면서 다시 힘을 낸다”고 말했다.

공룡발자국 화석

공룡발자국 화석

고개 하나를 넘으면 승두말. 해맞이 언덕으로 내려서자 오륙도가 성큼 다가선다. 오륙도는 우삭도,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어깨를 맞댄 유인도. 밀물 때 우삭도가 솔섬과 방패섬으로 나눠지고 썰물 때 하나가 돼 오륙도(五六島)란 이름을 얻었다. 겨울이면 굴섬에 날아드는 민물가마우지가 장관. 선착장으로 내려서면 유람선이 반긴다. 시간이 허락하면 오륙도를 일주하는 뱃길에 올라도 좋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영화 <도둑들>로 1000만 배우 대열에 합류한 김수현. 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낯선 곳에서의 휴식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 좋다”는 그는 “이기대는 풍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두 기녀의 의로운 마음이 걷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해거름에 뒤돌아 본 해안길. 산자락 허리춤에 매달린 길은 해운대의 불야성에 잠겨 고요하기만 하다.

■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남천역 4번 출구로 나와 131번이나 20번 버스를 타고 이기대 입구에서 내리면 도보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다.

■주변 볼거리: 기장8경(달음산, 죽도, 임랑·임광해수욕장, 장안사, 불광산 계곡, 홍연폭포, 소학대), 대변항, 범어사, 금정산성, 기장향교, 용궁사, 달맞이길, 태종대, 을숙도, 다대포, 몰운대, 감천문화마을 등

■맛집: 쌍둥이국밥(돼지국밥, 051-628-7020), 춘하추동(밀면, 051-809-8659), 서울깍두기(설렁탕, 051-446-9931), 금수복국(051-742-3600) 등이 부산의 내로라하는 맛집이다. 이외에 용궁 해물쟁반짜장(051-723-0944)은 이름 그대로 해물쟁반짜장이 유명하고 대변항에 자리한 수현횟집(051-721-8888)은 멸치회와 무침, 멸치찌개가 맛있다. 또 돌담장횟집(051-722-9332)은 짚불곰장어가 유명하다.

■숙박: 한화리조트 해운대(051-749-5500), 아르피나유스호스텔(051-731-9800), 금강국민호텔(051-554-3235), 글로리콘도(051-746-8181) 등

■문의: 부산광역시 관광진흥과 (051)888-8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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