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애틀랜타 한인타운에서 한 목사의 강연이 있었다. 코네티컷의 장호준 목사, 장준하 선생의 셋째 아들이다.
장목사는 요즘 바쁘다. 매주 미국 곳곳으로 강연을 떠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박근혜 대선 후보 때문이다. 강연을 시작할 때마다 “박정희의 친일적 사대주의와 유신 독재적 역사관에 사로잡힌 박근혜는 결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박정희 최대의 정적’으로 불리며 온갖 탄압을 받았던 아버지 생각을 하면 백 번 이해될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선거법’ 때문에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미주사람사는 세상 애틀랜타 지부 주최로 열린 강연에서 장호준 목사가 아버지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를 들고 강연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장준하의 아들’로 살아왔을 그이지만, 장목사는 그 개인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목사이되 본업은 따로 있다. 스쿨버스 운전사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전하는 힘겨운 직업인데, 운전수당 시간당 15달러가 그의 주수입원이다. 주말에야 ‘목사 노릇’을 하는데 사례로 겨우 500달러를 받는다. “목사가 교회에서 불필요하게 돈을 많이 받으면 ‘착복’”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는 목사지만 쉽게 ‘용서’를 말하지는 않는다. 박정희·박근혜에 대해 “종교적 용서는 몰라도 인간적 용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나의 용서는 잊어버리는 일”이라고 온화하게 말한다. 목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발언이다. 그의 강연은 온화하지만 날카롭다. “박정희는 아들을 키워 마약쟁이로 만들고, 장준하 선생 아들은 마약쟁이를 고치는 목사가 됐다”고 서슴없이 말한다.(그는 마약치료 상담사 자격증이 있다고 한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그의 인생과 목회는 특별하다. 그런데 그동안 조용히 버스 운전사와 목사로 살던 그가, 이제 매 주말 새벽 비행기를 타고 미국 곳곳에서 연설을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1960년대 장준하 선생이 ‘사상계’에 썼던 권두언을 인용한다.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부정과 불의에 항쟁을 못할망정 오히려 야합하여 춤춘 일부 종교가·예술가·교육가·학자들의 추태다. 선거 통에 한몫 보자고 교우의 수를 팔아가면서 쪽지를 들고 돌아다니는, 목사·장로 따위의 축복을 바라고 그가 높이 든 팔 아래 머리를 숙이고 ‘아-멘’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에게 신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양의 가죽을 쓴 이리떼 같은 교육자들이여, 토필을 던지고 관현의 제복으로 갈아 입거나 정당인의 탈을 쓰고 나서라. 너희들에게는 일제 시의 노예근성이 뿌리 깊이 서리어 있느니라. 지식을 팔아 영달을 꿈꾸는 학자들이여, 진리의 곡성은 너희들에게 반역자란 낙인을 찍으리라.”
이 글을 보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데 놀란다. 50년 전과 지금은 조금이라도 달라야 하기 때문에 강연에 나섰다는 장 목사의 강연을 듣고서, 어제 게으른 몸을 일으켜 재외국민 투표를 다녀왔다. 필자와 같은 날 투표한 사람이 애틀랜타에서만 1000명이라는데,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