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탈출 프로젝트’로 눈길 잡는 펑크밴드
보컬 아닌 멤버가 한 차례씩 노래 불러발상전환 시도…1탄 ‘소주 한 잔 ’ 발표
따지고 보면 ‘드러머’가 꼭 무대 뒤편에 있을 필요는 없다. 보컬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도 어느 측면에선 매우 답답한 일이다. 발상을 전환하면 재미있는 일이 많아진다.
펑크 밴드 ‘노브레인’(보컬 이성우, 기타 정민준, 베이스 정우용, 드럼 황현성)은 최근 기발한 음원 ‘소주 한 잔’을 내놓았다. 음원에는 그럴싸한 프로젝트 이름 하나도 따로 붙어 있다. ‘병풍 탈출 프로젝트’라고 한다.
‘병풍’(屛風). 사전적 의미로는 ‘무엇을 가리거나 장식용으로 방 안에 치는 물건’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의 ‘병풍’은 ‘주인공 곁에서 존재감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통용된다. ‘병풍’은 어느새 지나치게 슬픈 말이 돼버렸다.
왼쪽부터 이성우, 정민준, 정우용, 황현성.
‘병풍 탈출 프로젝트’ 1편으로 발표된 노래 ‘소주 한 잔’에선 평소 컴컴한 곳에서 묵묵히 드럼을 치던 황현성(35)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이윽고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의 작사·작곡 또한 황현성이 맡았다. 빈 드럼 자리는 객원 드러머가 채웠다.
“ ‘병풍 탈출 프로젝트’는 보컬 뒤편에 선 사람들이 벌이는 재미난 시도를 해학적으로 표현해본 말입니다. 사람들도 궁금할 수 있잖아요.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사람의 목소리가요.”(황현성)
기존 보컬 이성우(37) 자리는 온데간데 없다. 하지만 ‘그냥’이란 역할이 따로 있다는 게 밴드 멤버들의 자잘한 설명이다. 앨범 트랙리스트에도 ‘보컬 황현성, 기타 정민준, 베이스 정우용, 그냥 이성우’라고 썼다.
4일 오후 인터뷰차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를 찾은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동료들에게 대뜸 농부터 건넸다.
“일종의 ‘역지사지’ 시간인데, 모쪼록 보컬 자리도 만만치 않다는 걸 느껴보길 바랍니다. 어디 잘 되나 제가 한 번 두고 볼 것이고요.”
웃음이 터져 나온다.
프로젝트는 엉뚱하게 시작됐다는 것이 황현성의 이야기다. 그가 소주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었는데, 막상 보컬 이성우는 소주와 거리가 멀었다. 기타의 정민준(33)도 술을 입에 못댔고, 베이스의 정우용(31)은 이른바 ‘맥주파’에 가까웠다. 황현성은 “소주에 대해 진솔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라지만 이성우가 묘사한 ‘그날’의 풍경은 평상시보다 낯설긴 했단다.
“다 모였는데 어딘가 쭈뼛쭈뼛하더라고요. 그리곤 (황현성이)‘이 노래를 내가 부르면 어떨까’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더라고요. 마침 스페셜 음원을 낼 때고, 흥미로운 시도이기도 하고 해서 저는 좋다고 했지요.”
정민준은 “사실 이번 일은 모든 밴드가 공감할 만한 것”이라며 “같은 멤버인데도, (다른 연주 멤버들이)그림자로 여겨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MR(Music Recorded·가수의 목소리는 빠져 있고 악기 연주 소리만 녹음된)음원’에서 비롯된 여러 씁쓸한 경험도 연주 멤버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라이브’를 표방하는 국내 방송사 TV 음악 프로그램 상당수가 사실은 ‘연주의 립싱크’를 의미하는 ‘MR’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정민준은 “어느 방송사엘 갔더니 심지어 (치는 흉내라도 내야하는) 드럼조차 설치가 안되지 않아 결국 드러머 혼자 차에 앉아 있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노래는 요즘 연주자들이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이성우는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짚어야했던 문제”라며 “연주는 엄연히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꼼장어라도 지글지글/ 지글지글 구워가며 일단 한 잔 마셔 카~/소주 한 잔 예~아~/ 나와서 막상 한 잔 들이키니/ 나오길 참 잘한 것같다….’
노래 ‘소주 한 잔’은 노브레인 원래의 스타일보다 더 경쾌하게 질주한다. 간단한 ‘코드’가 가볍게 반복되지만, 비틀어 부르는 맛이 묘한 자극을 안긴다. 진짜 취기에 올라 부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대목도 있다.
“드러머가 노래를 부르는 일, 그게 좀 위험하긴 하지만 궁극에는 멤버 간에 서로 얻을 게 있을 것이라 봅니다. 좀 더 확장을 해보면, 각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 나아가 반장과 학생, 1등과 꼴찌에 대한 입장 바꾸기를 권해보는 메시지도 있을 테고요.”(황현성)
아직 작업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가 한차례씩 나와 노래를 부르는 ‘병풍 탈출 프로젝트’ 시리즈의 후속 음원도 곧 뒤따를 예정이다. 해당 곡을 각자의 자작곡으로 하게 될 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병풍 탈출 프로젝트 노래들은 노브레인 모든 노래와 마찬가지로 저작권료가 ‘n분의 1’로 나뉘어 분배된다. 노브레인이 예전부터 추구해오던 방식이다.
노브레인은 다음달 중순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 참가해 한 달간 현지에 머물며 각지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이성우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면서 “많은 걸 경험하고 오고싶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