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중국 SF? 내공이 장난 아닌데! ‘삼체‘

입력 : 2013.09.26 16:21 수정 : 2013.09.27 10:42

▲삼체
류츠신 지음·이현아 옮김/단숨/448쪽/1만5700원

언뜻 생각해봐도 특정 국가의 SF문학 저변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듯 하다.

이는 양이나 질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친근함 또는 자연스러움의 문제에 가깝다. 예를 들어 1980년대만 해도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제외하면 ‘철수’ ‘훈이’ 같은 한국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SF물을 접하면 무언가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미래를 배경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라지만 국내 과학기술의 ‘소박한’(?) 현실이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는데 상당한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이 요구되는 하드SF쪽으로 갈수록 더 하다.

[화제의 책] 중국 SF? 내공이 장난 아닌데! ‘삼체‘

스파이물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를테면 007이나 제이슨 본은 전 세계 정보기관이나 범죄조직을 상대로 아무리 찟고 까불어도 그러려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정보원 요원이 북한과 상관없이 전세계의 운명을 걸고 신출귀몰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어쩐지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독자들부터 이렇게 느끼는데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같은 수준 높은 작품은 나오기 힘들다. 오히려 보다 한국적인 것으로 주제나 소재를 좁히다보니 보편성과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SF장르의 발전은 요원하다.

우리나라의 SF문학이 주제와 소재 그리고 장르문학의 특성상 무시할 수 없는 플롯과 배경지식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가 2000년대 들어서부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IT분야를 필두로 1990년 중반 이후 시작된 국내 과학기술 산업수준의 전반적인 발전과 겹치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중국쪽 사정이다. 20여년전만해도 전근대적인 국가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수소폭탄을 만들었던 과학기술 강국. 지금은 미국과 함께 G2로 우뚝 선 중국SF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점에서 <삼체>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중국SF가 정식으로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2007년 40만명의 정기구독자를 갖고 있는 SF잡지 ‘커환시제(科幻世界)’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나와 300만부가 팔렸다는 작품이다.(인구 규모의 상대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만 봐도 중국SF의 수준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제목 ‘삼체(三體)’는 세 개의 물체 상호 간 만유인력이 작용할 때 개개의 운동 궤도를 연구하는 물리학 이론으로 정확한 풀이는 아직 나오지 않은 과학계의 난제다.

나노 연구가 왕먀오는 어느날 전세계의 군, 경찰, 정보요원이 모인 ‘작전 센터’에 초대된다. 세상 밖은 평온해 보이는데 참석자들은 자꾸 ‘지금은 전쟁 상황이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왕먀오는 신비로운 과학자의 모임인 ‘과학의 경계’와 접촉,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불가사의한 온라인 가상현실 게임 ‘삼체’에 접속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외계 탐사 프로젝트인 ‘홍안(紅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거기에 얽히고설킨 기묘한 인물들, 그리고 지구의 운명을 위협하는 외계인의 존재와 대면한다.

책은 중국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은하상’과 ‘중국 네뷸러상’ 등을 석권한 작품답게 수준도 상당하고, 낯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몰입도도 뛰어나다. 특히 동서고금의 역사부터 천체 물리학에 이르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을 버무린 ‘게임 삼체’의 묘사는 혀를 내두를 만큼 압권이다.

과학의 관점에서 문화혁명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롭다. 칭화대 교수였다가 반동으로 낙인 찍혀 인민재판에 끌려나온 물리학자와 홍위병의 인민재판 장면을 보자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외부의 관측이 파동함수의 붕괴를 일으킨다고 하잖아. 이것은 반동 유심론의 또다른 표현이다.” “철학이 실험을 이끄는가, 실험이 철학을 이끄는가?” “당연히 정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과학실험을 이끌지!” “그것은 정확한 철학은 하늘에서 떠러졌다는 것과 같은 소리다. 실험으로 얻은 참된 지식에 반대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자연계를 인식한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103쪽)

컴퓨터 엔지니어로 마작을 좋아하던 저자는 어느날 밤 마작으로 한 달 치 월급을 날리자 ‘저녁에 돈을 벌진 못할지언정 잃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자책한 뒤 소설 창작에 투신했다고 한다. 책은 중국SF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도 정식 출판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중국SF는 청나라 말인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와 내공이 만만치 않으며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 장르중 하나라고 한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