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증도

입력 : 2014.06.25 21:00

염전, 개펄 …청정 자연이 빚은 보물

땡볕이 정수리에 바늘처럼 꽂힌다. 이런 날이 많을수록 염전은 신난다. 소금은 햇빛과 바람의 결정체다. 여기에 염부(鹽夫)들의 땀이 더해져 순백의 알갱이가 탄생한다. ‘소금왕국’ 증도로 간다. 전남 신안의 827개 섬 가운데 하나다. 1975년에는 ‘보물섬’이라 불렀다. 송·원나라 유물 2만3000여점이 이곳 앞바다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증도의 보물은 드넓은 염전과 청정 개펄이다. 슬로시티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구역으로 지정된 후 찾는 이가 부쩍 늘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다.

[트래블&힐링-그곳에 가면…]‘슬로시티’ 증도

증도는 한반도 서남쪽 끄트머리, 서해바다에 오롯이 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인 ‘느린 마을’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운동은 ‘환경과 자연을 보전하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느리게 살자’는 운동이다. 인구가 5만 명을 넘지 않고,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어야 한다. 또 유기농법을 활용한 특산물과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한다. 슬로시티 국제연맹이 정한 24개 항목에 부합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증도는 섬이지만 연륙교와 연도교가 놓여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이곳에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이 있다. 증도대교 건너 좌측 해안가를 따라가자 차창 너머로 검은 개펄이 광활하다. 우측으로 야트막한 언덕 황토밭에는 촌로들의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도로변 가로수로 심어놓은 키 작은 야자수는 앙증맞다.

소금 박물관

소금 박물관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20여 분을 내달리자 ‘태평염전’이라고 적힌 대문이 버티고 서 있다. 입구 바로 옆은 소금박물관. 1953년에 만들어진 낡은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해 2007년 개관했다. 깔끔한 외모와 달리 근대문화유산이다. 이곳에선 소금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체험학습도 진행한다. ‘우리 소금 지키기 체험단’을 통해 천일염에 대해 배우고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태평염전에선 소금레스토랑과 소금동굴힐링센터도 운영한다.

박물관 뒤편은 광활한 소금밭이다. 태평염전은 1953년 6·25전쟁 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 생산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3대를 이어 현재는 소금장인 박형기씨가 운영하고 있다. 개펄을 다져 그 위에 소금 결정을 만드는 전통방식의 토판염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 여의도 두배 면적 국내최대 염전
창고와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

[트래블&힐링-그곳에 가면…]‘슬로시티’ 증도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 간척지에 조성된 염전은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가 압권이다. 총 면적은 462만㎡(약 140만평). 자그마치 여의도 면적의 두 배다. 이곳에서 매년 1만6000톤의 소금이 나온다. 국내 생산량의 6%를 차지하는 천일염이다. 소금박물관 맞은편 야트막한 산에 염전 전망대가 있다. 광활한 염전을 한눈에 담을 요량으로 전망대에 오른다. 한데 발아래 펼쳐진 염전은 끝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아예 염전으로 파고든다. 바둑판처럼 생긴 소금밭은 67개. 여기에 딸린 67동의 소금창고가 3㎞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다. 소금밭과 어우러진 소금창고는 낡고 헐겁지만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련하다.

염전은 증도가 슬로시티로 인정받는 데 공이 크다. 느리고 질기고 모진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천일염을 얻는다. 그 정성은 농부 못지않다. 염분을 머금은 바닷물이 소금이 되기까지는 20여일. 최고 24단계를 거치는 이곳 천일염은 각종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상품으로 높이 쳐준다. 시간이 만들어낸 앙금을 건지는 염부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때가 바로 지금부터다. 땡볕이 고통스러운 한여름, 염부들의 손끝에서 무릇 ‘소금의 으뜸’이 만들어진다.

◆ 개펄 가로지른 ‘장뚱어다리’
낙조 감상 데이트코스 안성맞춤

염전 안에는 염생식물원도 있다. 개펄 습지에는 함초(퉁퉁마디)와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 등의 염생식물과 개펄 생물이 터를 잡고 산다. 오염된 환경에서는 자랄 수 없는 띠(삐비)도 한 줌 바람에 흐드러지게 물결친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식물과 생물이 개펄 가득하다.

연무에 싸여 아득한 염전을 뒤로하고 방축리로 향한다. 섬을 가로지르는 샛길로 20여분을 가다보면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활처럼 휜 백사장이 길게 누운 우전해수욕장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펄과 모래가 섞여 있다.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알알이 떠 있다. 4㎞ 길이의 백사장은 모래가 유독 곱다. 썰물 때 개펄이 드러나면 개펄마사지를 즐길 수 있어 매년 ‘게르마늄갯벌축제’를 연다. 해수욕장 북쪽 끝에 자리한 송림은 인공숲이다.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어 ‘한반도 해송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트래블&힐링-그곳에 가면…]‘슬로시티’ 증도

송림을 지나면 드넓은 개펄 세상이다. 우전해수욕장과 면소재지인 증동리를 잇는 짱뚱어다리가 이곳에 있다. 나무와 철재로 만들어진 예쁜 다리다. 개펄을 가로지르는 다리 길이는 470m. 이름처럼 다리 아래는 짱뚱어와 농게가 지천이다. 짱뚱어는 펄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니다 펄쩍 뛰는 물고기다. 생긴 모양이나 움직임이 ‘쌩뚱’맞지만 여름철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짱뚱어다리는 낙조 또한 장관이다. 다리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늘이 어둑해지는 저녁 8시부터는 다리를 장식하는 조명이 불을 밝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귀띔>

■찾아가는 길: 서울→서해안고속도로→북무안IC→현경 교차로→해제→지도→사옥도→증도

■주변 볼거리: 우전해수욕장, 짱뚱어다리, 증도갯벌생태전시관, 유물기념비, 고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화도, 한반도해송숲길 등

■맛집: 6~7월의 증도는 병어가 제철 음식이다. 안성식당(061-271-7998)을 비롯한 각 식당에서는 병어회와 병어조림, 짱뚱어탕을 맛볼 수 있다. 이외에 보물섬(활어회, 061-271-0631), 갯풍민박식당(장어구이, 061-271-0248), 솔트레스토랑(함초요리, 061-261-2277), 왕바위 갯벌 조개마당(해산물, 061-275-8903), 고향음식점(활어회, 061-271-7533) 등이 있다.

■걷기코스: 증도에도 도보여행 코스인 ‘모실길’이 있다. 40여㎞에 이르는 모실길은 총 5개 코스(사색의 길 10㎞,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길 7㎞, 천년의 숲길 4.6㎞, 갯벌공원길 10.3㎞, 천일염길 10.8㎞)로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숙박: 우전해수욕장에 자리한 엘도라도리조트(061-260-3300)는 빌라형 30동과 185개의 객실을 갖춘 럭셔리 리조트다. 바다를 바라보며 월풀욕을 즐길 수 있는 객실을 비롯해 해수찜, 노천탕, 수영장, 한증막, 테라피센터, 요트 선착장,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있다. 리조트 단지와 백사장이 붙어 있고 입구에 갯벌생태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증도에는 민박과 펜션이 곳곳에 자리해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문의: 신안군청 문화관광과 (061)240-8356, 태평염전 (061)275-0370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