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땅에서 만나는 작은 금강산

입력 : 2014.07.30 22:20

천하절경 금강산 못 닿을까, 쏙 빼닮은 산수 내려놓았네

소금강(小金剛)은 ‘작은 금강산’이다. ‘천하절경’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가는 길이 막혀 볼 수 없지만 금강산에 견줄 만한 비경이 남한 땅에도 제법 많다. 품에 드는 순간 금강산에 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율곡이 직접 글로 써 남긴 강릉 청학동 ‘소금강’
천년고찰 ‘금강사’와 바위수로 ‘십자소’ 지나면
9개 물줄기 합창 ‘구룡폭포’… 계곡 따라 탄성

강원 강릉시 청학동 소금강은 우리나라 ‘소금강 1번지’이자 1970년 지정된 국내 최초의 명승지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가 <청학산기>에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한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소금강 내 유일한 사찰인 금강사 앞 영춘대에는 율곡이 새겼다고 전해지는 ‘小金剛(소금강)’이란 글씨가 또렷하다.

강릉 청학동 소금강 만물상(강릉시청)

강릉 청학동 소금강 만물상(강릉시청)

오대산(해발 1563m) 동쪽 기슭, 산정을 향해 꿈틀거리는 소금강 계곡은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오대산 줄기인 황병산을 주봉으로 좌·우 측에 매봉과 노인봉을 거느려 ‘학이 날개를 편 형국’이라 청학산이라고도 부른다. 청학산장 부근 무릉계를 경계로 하류 외소금강에는 금강문과 옥조대, 십자소, 옥수연 등의 명소가 줄줄이 이어지고, 상류 내소금강은 식당암, 구룡연, 청심대, 만물상 등을 품고 있다. 노인봉에서 흘러내려 소금강 계류에 합류하는 연곡천에서는 맑은 물에만 서식하는 은어와 산천어가 주인이다.

숲 짙은 계곡에서 만나는 첫 비경은 무릉계다. 여기서부터 급류와 청담, 기암이 줄줄이 이어진다. 골 깊은 소금강 계곡은 협곡이다. 그사이를 맑고 투명한 계류가 쉼없이 흐른다. 계류가 암반을 어루만지는 연화담을 지나면 금강사다. 금강송을 수문장처럼 두른 절집은 신라 때 지어진 천년 고찰이다. 이어 나타나는 십자소는 거대한 바위 수로다. 수로 양편과 바닥이 한몸을 이루고 있다. 이런 풍광은 경남 하동의 의신계곡 외에 보기 힘들다. 계곡으로 파고들수록 가파른 암벽이 이어져 오르고 내리기가 만만찮다. 한 발짝 들어설 때마다 옹골찬 산세와 비경에 압도당한다.

너른 마당을 옮겨놓은 듯한 식당암과 삼선암 언저리는 기암이 절경이다.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바위 아래로 일동천이 흐른다. 바위에 매달린 채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삼선암은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기서 소나무·주목·굴참나무 울창한 숲길을 따르면 소금강의 백미인 구룡폭포를 만난다.

‘눈 감으면 한 폭포수 소리인데 눈 뜨면 아홉 폭포’라는 시구가 말해주듯 9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한몸을 이루고 있다. 9개의 못을 휘감아도는 계류가 새하얀 포말로 몸을 부수며 짙푸른 소로 내리꽂히는 모습이 장쾌하다. 계곡 가득한 폭포수 소리에 세속에 찌든 때를 씻고 발걸음을 재촉하면 만물상과 선녀탕이다. 거인상, 귀면암, 이월암, 촛대석 등이 변화무쌍한 만물상은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놓은 듯하다.

소금강 등반은 여기서 노인봉을 거쳐 진고개에 이른다. 산정에는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아미산성이 남아 있다. 일반 관광객이라면 만물상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 위로는 길이 험해 작심하고 올라야 한다. 이쯤에서 하산해도 핵심은 다 본 셈이다 .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의 배경 화암8경
각도 따라 모습 달리하는 기암괴석 ‘화표주’
원시림의 신비 간직한 ‘광대곡’ 압권

강원도 정선 땅에도 소금강이란 이름의 절경이 숨어 있다. 화암팔경(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중 제6경에 이름을 올렸다. 화암(畵岩)은 ‘그림 바위’다. 기기묘묘한 바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광이 금강산 못지않아 소금강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화표주’의 배경이 바로 화암이다.

정선 화암8경 광대곡(정선군청)

정선 화암8경 광대곡(정선군청)

화암약수에서 421번 지방도로를 타고 소금강으로 방향을 잡으면 두 개의 돌기둥이 우뚝 솟은 화표주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몰운대까지 계곡을 ‘정선 소금강’이라 부른다. 한겨울 바위에 눈이 쌓인 ‘설암(雪岩)’이 압권이지만 녹음에 묻힌 이즈음 풍광도 감동받을 만하다. 계곡은 동강 상류인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어천을 사이에 두고 수직 바위 절벽의 호위를 받고 있다.

바위를 뚫고 샘솟는 화암약수 한 모금 들이켜고 길을 떠난다. 화암약수 진입로 오른쪽 위 거북바위와 약수터 못 미처 하천변에 자리한 용마소, 화암동굴을 거쳐 화표주에 이른다. 화암약수에서 424번 지방도로 몰운리 방면으로 들어서면 화표동 입구 삼거리다. 여기서 좌측으로 뾰족하게 우뚝 선 돌이 화표주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거대한 돌기둥이다.

여기서 424번 지방도로를 따라가자 좌우로 기암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설경이 아름다워 설암이라 불리는 소금강은 어천에 발을 담근 기암괴석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몰운대 절벽 끝에 뿌리를 박고 홀로 선 소나무가 기묘하다. 구름도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쉬어간다는 몰운대 절벽 아래는 너른 반석을 어루만지는 계류가 쉼없이 흐른다. 예부터 그 풍광에 반해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시인 황동규는 ‘몰운대행’이라는 시를 남겼다. 노송 너머 발아래 소금강 계곡이 아련하다.

몰운대를 지나면 광대곡이다. 광대곡은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의 계곡으로, 원시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태곳적부터 부정한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금하는 전설을 품고 있다. 부정한 음식(닭고기·개고기)을 먹고 입산하면 모든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인단다. 계곡 끝자락, 협곡을 가르는 영천폭포가 장관이다.

남한 땅에는 이외에도 지역 이름을 앞에 붙인 소금강이 제법 많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명소는 전북 완주의 대둔산(해발 878m)과 전남 영암의 월출산(해발 809m)이다. 완주와 충남 논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금강산을 빼닮았다. 산자락을 가득 메운 바위 기둥이 죽순처럼 뾰족해 그 모양이 마치 산수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신비롭다. 이를 두고 원효대사는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했고, 만해 한용운과 우암 송시열도 글로써 예찬했다.

월출산의 산세도 만만찮다. 매월당 김시습이 ‘남쪽 고을에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서 오르더라’라고 노래한 산이다. 원출산은 사방 100리에 큰 산이 없어 더욱 도드라진다. 땅의 기를 모아 하늘로 솟구친 형상이다.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경남 양산의 천성산(해발 922m), 경북 봉화의 청량산(해발 870m)을 비롯해 충북 보은의 속리산(해발 1058m), 경기 동두천시와 포천시에 걸쳐 있는 소요산(해발 536m) 등이 거대한 기암괴석을 떠받치고 있어 ‘소금강’이란 별칭을 달고 있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