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금선계곡 & 금선정

입력 : 2014.09.17 20:41

탁족 즐기고 정자 걸터 앉으니 詩 한 수 절로 나오네

퇴계 이황·금계 황준량 등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들 비경에 반해 자주 찾던 곳

소백산(해발 1439m)은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친 소백산맥에 우뚝 솟아 있다. 조선시대 풍수학자 남사고 선생은 이 산을 일컬어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 영주 땅의 위도가 사람의 체온과 같은 36.5도라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소백산 자락에서도 주봉인 비로봉 아래에 터를 잡은 금계리는 <정감록>에 기록된 10승지 중 1승지에 꼽힌다. 이곳에 금선계곡과 금선정이 숨어 있다. 금선대에 걸터앉은 금선정은 퇴계 이황과 금계 황준량의 발자취가 서린, 오래된 정자다.

소백산 골 깊은 계곡, 솔바람이 청량하다. 계류를 타고 내려오는 산바람엔 왠지 모를 그리움이 짙게 스며 있다.

금선계곡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2리 장선마을에 꼭꼭 숨어 있다. 장선마을은 그 옛날 생긴 모양이 긴 배 같다고 해서 ‘장선(長船)’이라 불렸지만, 이후 마을에 오랫동안 착한 사람이 많이 나서 번성하라는 뜻으로 ‘장선(長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됐다.

[트래블&힐링-그곳에 가면…]경북 영주 금선계곡 & 금선정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을 따라 계곡으로 파고들자 아름드리 송림에 둘러싸인 금선정이 거대한 바위 절벽을 깔고 앉아 가을 햇살을 탐하고 있다. 그 아래로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에서 발원해 정안동계곡과 욱금동천 삼십리 길을 달려 온 계류가 잠시 숨을 고른다.

정자가 들어선 금선계곡은 조선 중기 문신 금계 황준량(1517~1563)이 생전에 즐겨 찾던 곳. 어릴 적부터 재주가 뛰어나 기동(奇童)으로 불렸던 그는 1537년 생원이 된 후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던 인물이다. 이후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신녕현감, 단양군수, 성주목사로 재임하다 1563년 병을 얻어 사직하고 고향 풍기로 돌아오던 중 예천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곡 바위절벽을 찾았던 금계는 “소백 운하는 어디가 제일인가. 금선대 풍월은 스스로 무엇과도 비할 길 없구나”라며 금선계곡과 금선대의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고 후손들은 전한다. 정자를 이고 있는 바위절벽 ‘금선대(錦仙臺)’ 역시 금계가 지어준 이름. 이후 1756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송징계가 바위벽에 ‘錦仙臺(금선대)’란 글자를 새겼고, 1781년 이한일 군수가 정자를 세우고 ‘금선정’이라 이름 붙였다. 1785년 이대영 군수는 ‘금선정’ 현판을 당시 목사였던 조윤형의 글씨를 받아 새겨 걸었다. 금선계곡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금양정사

금양정사

▲계곡 바위에 몸 부수는 물소리
노송을 스치는 바람소리
청아한 계곡과 기암절벽
한 폭의 수묵화가 절로 그려져

1.5㎞에 걸친 계곡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기암괴석과 제멋대로 구부러진 200~300년생 노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풍광이 빼어나다. 그동안 마을주민들만 “쉬쉬” 하며 탁족을 즐긴 까닭에 청정계곡의 비경이 온전히 살아 있다. 계곡 바위에 몸을 부수는 물소리, 노송 스치는 바람 소리가 청아한 계곡은 기암절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가 절로 그려진다.

금선정을 이야기할 때 금계를 빼놓을 수 없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암 이현보의 아들 이문량의 사위였던 금계는 퇴계를 스승으로 모셨다. 퇴계와 처음 만난 곳은 그의 처가집인 안동 농암댁. 퇴계는 수제자이자 학문의 동반자였던 금계가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예천에서 죽자 제문을 통해 “실성하여 길게 부르짖으며 물을 짜내듯이 늙은이의 눈물을 흘렸다오. 하늘이 이 사람을 빼앗음이 어찌 이다지도 빠른가. 참인가. 꿈인가. 놀랍고 아뜩하여 목이 메이는구나”라며 죽음을 슬퍼했다.

금계는 퇴계보다 17년 연하였지만 7년 먼저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수의마저 갖추지 못해 베를 빌려 염을 했고, 관에 의복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청빈했다. 퇴계는 이를 애석하게 여겨 제문(祭文)을 두 번이나 쓰고 특별히 행장(行狀)을 썼다.

퇴계 역시 풍기군수 시절 금선계곡을 자주 찾아 ‘신선될 재주없어 삼신산을 못 찾고, 구름 경치 찾아 시냇물을 마셔보네. 얼씨구 풍류 찾아 떠도는 손(客)들아, 여기 자주와서 세상 시름 씻어 보세’라는 시 한 수를 남겼다.

금선정 뒤편 산중턱에는 ‘금양정사(錦陽精舍)’가 계곡을 굽어보고 앉아 있다. 이곳 역시 금계와 퇴계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다. 금계가 만년에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퇴계는 금계 사후 이곳을 찾아 그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대청에 오르자 소백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시원하다. 발아래 손바닥만한 연못은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주인 잃은 연못엔 철 지난 낙엽만 수북하다.

◆귀띔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 자락길


■찾아가는 길:서울→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IC→풍기읍 방면→금계리

■주변 볼거리:부석사, 성혈사, 가흥리 마애삼존불상, 소백산자락길, 읍내리 벽화고분, 풍기인삼시장, 희방사&희방폭포, 무섬마을, 죽령옛길, 소백산 풍기온천 등

선비촌

선비촌


■맛집:약선당(약선정식·인삼정식, 054-638-2728), 풍기 한방삼계탕(054-638-2600), 순흥 전통묵집(054-634-4614), 정도너츠(054-636-0067) 등

풍기한방삼계탕

풍기한방삼계탕


■숙박:선비촌(054-638-7114), 선비문화수련원(054-631-9888), 물도리예술촌(054-633-8111), 영주청소년수련관(054-633-0924), 옥녀봉 자연휴양림(054-636-5928), 풍기인삼관광호텔(054-637-8800) 등

■문의: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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