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첫 우승잔치 김남일 “같이 뛰자했던 이동국, 날 이끌어준 최강희 감독님께 감사”

입력 : 2014.11.10 06:00

프로 생활 15년째. 김남일(37·전북)에게 우승은 언제나 남의 일이었다. 우리나이 서른 여덟, 전북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에는 우승 욕심이 깔려 있었다. 야심차게 이적했지만 시즌 중간에는 부상으로 고비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마침내 프로 선수로 첫 우승을 달성했다. 김남일은 전북이 우승을 확정한 지난 8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59분을 뛰고 교체 아웃됐다. 최강희 감독은 벤치로 들어오는 김남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포옹했다.

우승의 밤을 보내고 제주도를 떠나는 9일 아침에 그를 만났다. 김남일은 “어젯밤에 후배들과 조촐하게 ‘치맥’으로 우승을 자축했다”면서 “우승컵을 안 들어봐서인지 아직은 실감이 안난다”며 웃었다. 김남일은 2000년에 프로에 데뷔해 K리그 전남·수원·인천에서 뛰었고 일본 J리그 빗셀 고베, 네덜란드 엑셀시오르, 러시아 톰톰스크 등에서 활약했다. 지난 14년간 그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전북 김남일이 9일 제주공항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프로 첫 리그 우승과 지나온 축구 인생을 돌아보며 얘기하고 있다.  제주 | 양승남 기자

전북 김남일이 9일 제주공항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프로 첫 리그 우승과 지나온 축구 인생을 돌아보며 얘기하고 있다. 제주 | 양승남 기자

우승을 꿈꾸며 이적한 전북과의 첫 만남을 물었다. 김남일은 “(이)동국이가 항상 나를 기다렸던 것 같다. 대표팀에서부터 잘 맞았고 언젠가 같이 뛰자고 했는데 그런 진심이 통해서 이적까지 이뤄졌다”고 했다. 그를 전북으로 이끈 또 한 명, 최강희 감독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김남일은 “이적하기 직전에 감독님과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사석에서 만난 것은 처음인데, 42살까지 뛴 외국선수 얘기를 했다. 나도 못할 이유없다며 ‘함께하자’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같이 뛸 날을 기다려준 절친한 후배, 믿음으로 자신을 데려온 스승과 함께한 새 출발의 첫 해 마무리가 우승으로 이어졌으니 더욱 의미가 각별했다.

김남일이 직접 뛰면서 느낀 전북의 우승 원동력은 뭘까. 그는 “우선 좋은 선수가 많아 대체자가 풍부해 강점이 있었다”면서 “훈련 자체도 아주 혹독했다. 본 경기보다 훈련이 더 치열할 정도라 경기가 오히려 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승이라는 확실한 동기부여와 목표의식으로 뭉쳐진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밑바탕이 됐다고 했다. 또 그는 “여러 팀에서 생활해봤지만 이렇게 훈련하기 좋은 클럽하우스가 없다. 좋은 환경 속에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게 해줬기에 선수들도 ‘전북맨’이라는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베테랑 김남일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굵은 땀을 쏟았다. 전지훈련 때에 컨디션이 좋았지만 시즌 들어와서 5월에 부상을 당해 이탈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변함없는 믿음 속에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월드컵 이후 회복해 팀의 후반기 연승 질주에 힘을 보탰다. 특히 그는 9월과 10월, 중요한 고비였던 2경기에서 결승골을 넣는 깜짝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상대 공격을 막고 몸으로 버티는 게 주임무인 김남일은 지난 2008년 이후 무려 4년 만에 골을 넣었다. 변함없는 파이터 기질로 팀 수비의 중심을 잡고 깜짝 골까지 넣었으니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지난 9월14일 경남과의 홈 경기 때 첫 골은 마침 아내 김보민 아나운서 앞에서 넣은 것이라 더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취재차 전주로 내려와 경기를 지켜보던 아내는 남편의 골에 감격해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터프가이’ 김남일이 멋쩍게 웃었다. “원래 아내가 경기장에 오는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젠 안 울었으면 좋겠다.”

결혼 7년차 김남일 부부는 아직도 깨가 쏟아진다. 8일 전북이 우승을 확정지은 이후 김보민 아나운서는 트위터에 김남일과의 키스 사진을 올리며 남편의 우승을 축하하고 고마워하는 글을 올렸다. 김남일은 “어제 경기 후에 아내가 ‘고맙고 고생했다’고 하더라. 지금도 경기장에 나가기 전에 항상 통화한다”고 했다. 좀 짓궂게 물었다. 이제 좀 시들해질 때가 안 됐냐고. 김남일은 “지금도 여전히 좋다”고 짧고 굵게 답했다. 2002 월드컵 스타로 아직도 많은 여성 팬을 보유한 김남일은 “아내도 그냥 여성 팬들을 다 좋아해준다”며 웃었다.

김남일의 오늘을 있게 한 한·일월드컵의 의미를 물어보니 큰 인기 만큼이나 부담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많은 인기와 관심 등이 견디기 힘들어 도망가기도 했다. 철이 없었다. (인기 스포츠 선수의 생활을)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야 이런 걸 받아들이게 된다.”

전북 생활은 여러모로 그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봉동의 숙소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외로움과 두려움 등을 극복하고 맞서 싸우는 준비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혼자 나가서 밥도 먹고….”

전북으로 와서 세상을 좀더 여유있고 열린 자세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는가 많이 물어보는데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는다. 젊은 선수들이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의 새로운 훈련법을 배우기도 했다. 과거에는 ‘이렇게 하면 될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면 이젠 ‘이렇게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생활과 훈련의 변화로 이어졌다.”

김남일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궜고, 꾸준한 선수 생활 속에 마침내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스스로 축구인생의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더니 그는 “아직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남일은 남은 3경기를 잘 마무리한 뒤 천천히 쉬면서 다음 꿈을 생각하겠다고 했다. 당장은 오는 15일 포항과의 홈 경기 이후에 있을 우승 세리머니때 홈 팬들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뭔가 다르게 하고 싶다”는 김남일이 어떤 세리머니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하나 더. 전북 구단과 최강희 감독은 김남일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두텁다. 구단은 이미 일찌감치 김남일과 재계약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베테랑 터프가이’ 김남일이 내년에는 전북의 리그 2연패와 아시아 정상을 향한 도전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남일이 최강희 감독의 바람대로 42살까지 뛸 수 있을까.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기자 정보

오늘의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