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산으로… 멋스런 옛길
오대산(해발 1563m) 자락 녹음 짙은 숲으로 든다. 들머리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자리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다. 이 길 끝나는 곳에 ‘선재길’이 뚫려 있다. 월정사와 상원사, 두 천년고찰을 이어주는 옛길이다. 선재(善財)는 불교 경전 <화엄경>에 등장하는 동자의 이름. 동자가 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듯, 이 길을 걷는 이들도 득도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 옛날 스님과 불자들이 오갔던 길은 새 길이 뚫려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녹음 우거진 숲, 청량한 공기, 싱그러운 숲향…. 예나 지금이나 늘 변함없는 건 자연뿐일까.

선재길은 1960년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찻길이 뚫리기 전까지 사람들이 오르고 내렸다. 화전민과 벌목꾼들이 이 길에서 삶을 일궜고, 스님과 불자들은 득도를 위해 이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 넓고 평탄한 길이 나면서 옛길은 토막나 이리저리 숲에 흩어졌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9.6㎞ 거리의 옛길을 복원해 ‘선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 밝고 맑고 청량한 초여름 숲으로 든다.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금강문까지 1㎞ 거리. 반듯하게 뻗은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 길은 ‘아름다운 숲길’이다. 천년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키고 있어 ‘천년의 숲’이라 불린다. 400살 가까운 아름드리 전나무는 모진 세월을 이겨낸 꼿꼿한 자태가 경이롭다. 500살을 훌쩍 넘긴 터줏대감 전나무는 태풍에 밑동만 남았지만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걷는 내내 세속의 찌든 때가 한 줌 바람에 쓸려가는 느낌이다.

금강교를 건너자 오대산에 등을 기댄 월정사가 점잖게 앉아 있다. 월정사는 어떤 절인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창건 유래는 이렇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이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해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자장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했다. 월정사는 생전에 큰 죄를 지은 조선의 임금 세조와 연관이 깊다. 불교에 귀의한 세조가 수시로 찾아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사에 휘말린 절집은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다. 팔각 2층 기단 위에 세운 9층탑(국보 제48호)과 석조 보살좌상, 월정사 보물이 보관된 성보박물관이 그 옛날의 월정사를 온전히 기억할 뿐이다. 경내 한 귀퉁이를 차지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숲길로 들어선다.
계곡과 나란히 달리는 선재길은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다. 물푸레나무, 거제수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박달나무 빼곡하게 들어서 한여름 땡볕도 쉽사리 범하지 못하는 우거진 숲길이다. 걷는 내내 오솔길과 나무데크, 출렁다리, 섶다리, 올빼미정원, 화전민 터를 심심찮게 만난다. 때 이른 더위에도 계류는 얼음처럼 차갑다.
하류에서 몸집을 불린 계류에는 섶다리가 놓여 있다. 물푸레나무·버드나무로 기둥을 세운 섶다리는 소나무·참나무로 만든 상판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가지)을 엮어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월에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넌다. 여름이면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이별다리’로도 불린다.
길 절반 쯤에 이르면 동피골이다. 오대산장과 멸종위기식물원이 이곳에 있다. 숲길은 완만한 경사다. 계류를 따라 걷다 물길을 만나고 숲으로 파고든다. 그 누구도 무리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편하다. 조붓한 숲길 끝, 종착 지점에 상원사가 숨어 있다. 초입, 조선 초 세종대왕이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관대걸이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월정사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4년(705)에 보천·효명 두 왕자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태조와 세조가 원찰로 삼아 귀한 보물도 많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이곳에 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동종은 안동 광풍루에 걸려 있던 것을 예종 원년(1469)에 상원사로 옮겨왔다. 구름 위를 날며 옷깃을 흩날리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아름답다.
선재길은 상원사에서 끝을 맺지만 적멸보궁을 두고 돌아서기는 아깝다. 상원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한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적멸보궁 못 미처에 적멸보궁을 지키는 중대 사자암이 있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암자에 불상은 없다. 보궁 뒤편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있다. 적멸보궁은 오대산 산능선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의 천하명당이다.

백룡동굴
명산 오대산을 뒤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 발길은 ‘지하’로 향한다. 평창에 태곳적 신비를 오롯이 간직한 천연 동굴이 백운산(해발 883m) 기슭에 숨어 있다. 동굴은 무더위를 피하기에 딱 좋은 피서지다.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운산 기슭에 뚫린 백룡동굴은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영구 보존을 위해 개방을 불허하다 2010년 일반에 공개됐다. 사람의 손을 덜 탄 까닭에 억겁의 세월이 빚은 ‘자연 예술품’은 온전한 모습 그대로다. ‘백룡’이라는 이름은 백운산과 최초 발견자인 정무룡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붙여진 것. ‘C’자형 모양의 동굴은 총 연장 길이가 1875m. 지질학적 나이는 5억년쯤 된다.
초입은 평창, 중간은 영월, 끝부분은 정선에 속하는 동굴은 주굴(A지역)과 가지굴(B~D지역)로 나뉜다. 일반에 공개되는 지역은 785m짜리 주굴이다. 전체적으로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수평굴이지만 낮은 포복과 기어가는 몇몇 구간이 탐사의 재미를 더해준다. 동굴 탐사는 전문 가이드에 의해 진행되고 내부에는 조명이나 철제 구조물도 극히 제한적이다. 동굴 보호는 물론 국내 최초로 ‘생태학습형 체험동굴’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200m 지점에는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일명 ‘개구멍’이라 부른다. 어른 몸통만한 구멍을 힘겹게 빠져나오자 동굴은 진면목을 드러낸다. 천장의 물에 의해 만들어진 종유관과 종유석, 땅에서 솟아오른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난 석주. 억겁의 세월 동안 온갖 모양으로 기교를 부려, 보는 이를 현혹시킨다. 물과 시간이 빚은 ‘자연 예술품’이다. 안으로 파고들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지하 세계는 절정을 이룬다.
동굴 끄트머리에 이르면 드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종합 전시관이다. 동굴 내에서 유일하게 조명이 설치된 이곳에선 노란 때깔의 에그 프라이형 석순을 볼 수 있다. 국내 동굴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광장 조명과 헤드랜턴을 모두 끄자 ‘절대 암흑’의 세상이다. ‘신비로운 동굴’의 정수를 보여주는 백룡동굴은 ‘관광’이 아닌 ‘탐사’라는 점이 신선하다.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표지판을 따라 15분 정도 가면 월정사 입구가 나온다.

■주변 볼거리:흥정계곡, 장전계곡, 무이예술관, 팔석정, 효석문화마을, 허브나라, 이승복기념관, 한국자생식물원, 대관령양떼목장, 대관령 하늘목장, 삼양대관령목장, 오대산국립공원 등
■맛집:봉평은 메밀의 고장이다. 메밀막국수는 현대막국수(033-335-0314), 진미식당(033-335-0242)이 유명하다. 읍내에 자리한 미가연(033-335-8805)은 메밀싹 비빔밥, 옛골(033-336-3360)은 메밀국수전골이 맛있다. 월정사 입구 오대산 가마솥식당(033-333-5355)은 산채정식이 유명하고, 평창한우마을(033-334-9777)은 한우 셀프식당이다.

■숙박:용평리조트(1588-0009)는 10월17일까지 용평 슬로프를 MTB 코스로 운영한다. 자전거 코스는 초·중·고 3가지다. MTB를 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자전거와 헬멧, 신발, 고글,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 등이 필요하다. 용평리조트는 각종 장비와 산악자전거를 렌털해 주고, 개인 장비를 이용할 경우 헬멧과 보호대, 앞포크, 리어샥을 갖춰야 한다. 용평리조트는 객실 1박과 MTB 종일권(1장) 패키지를 주중 11만원·주말 13만원에 판매한다. 이외 휘닉스파크(033-330-6000), 알펜시아리조트(033-339-9000), 아트 인 아일랜드(033-336-1771), 백운산방(033-334-9891), 동강산장(033-333-9509), 청호산장(033-334-3000), 두룬산방(033-334-0920), 뜨라래펜션(033-333-6600) 등
■문의: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