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https://images.khan.co.kr/article/2016/04/17/l_2016041802000816000206952.jpg)
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여주인공 홍선애. 그녀는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진행능력을 보유한 아나운서다. 현재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함께 TBS방송국의 서평 프로그램인 <TV책방 북소리>의 진행을 맡고 있다.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그녀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은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책읽기와 사유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홍선애. 이제 그녀가 책의 바다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꽃중년을 자처하는 어이없는 책동네아저씨 김성신은 그녀의 독서 나침반이다.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쉰다섯 번째 이야기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 / 창비)이다.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https://images.khan.co.kr/article/2016/04/17/l_2016041802000816000206953.jpg)
성신:선애는 시를 좋아해?
선애:노래는 음악과 합쳐진 시라죠? 노래를 좋아하니까 저는 시를 좋아하는 것이겠죠?^^
성신:음… 그래! 그럼 좋아하는 것으로 치지 뭐!^^
선애:‘시’하면 왠지 어렵고 심정적으로 좀 멀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시집을 선뜻 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성신: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아니라,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이니까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알고 익숙해지면, 시처럼 매력적인 것도 없지.
선애:어릴 땐 저도 시를 많이 읽고 매력도 느꼈는데, 크고 나서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성신: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의 시적 사유를 허용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 시라는 것은 아주 짧은 문장, 때로는 단 하나의 단어로도 우리를 한도 끝도 없는 상상과 사유의 세계로 몰고 가잖아?
선애:아! 그렇죠. 그래서 얇은 시집 한 권 읽는데, 몇날 며칠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빨리 일이나 해라!’ 이렇게 강요한다는 거죠?
성신:바로 그렇지! 순식간에 내 말을 파악하네! 똘똘해라~^^ 그럼 내가 ‘시’라는 것을 좀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 볼까?
선애:오! 좋아요~ 시가 좀 더 쉬워지면 좋을 것 같아요.
성신: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그래서 서로 소통을 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데, 이것은 본능과 같은 거지. 생각해 봐. 사람이 죄지으면 가둬서 소통을 못하게 만들잖아? 그러면 굉장한 고통을 느끼게 되지. 그래서 그게 형벌이 되는 거고.
선애:아! 그렇죠.
성신:그런데 인간은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 소통에 쓰고 있잖아?
선애:그렇죠.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언어로 하죠.
성신: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 봐. 만약 선애가 오늘 밤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봄날,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는 거야.
선애:눈 감고 상상하는 타이밍인가요?^^
성신:계속 감고 있으면 내가 쓰는 톡을 볼 수 없으니, 실눈이라도 뜨던지.^^ 아무튼 그렇게 창가에 앉아 있는데, 그날이 4월16일인 거야. 세월호 때문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날….
선애:아…! 416… 숫자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성신:그래… 왜 안 그렇겠어. 자, 계속 떠올려 보자고. 그럼 그 시간이 선애에게도 아주 특별한 순간이겠지?
선애:그렇죠. 아주 복잡한 심경이네요.
성신:그 순간 선애가 느낀 바로 그 복잡한 생각과 특별한 감정을 누군가에게는 말해주고 싶어지지 않아?
선애:이 먹먹한 감정을 누군가한테 전달한다? 그렇죠! 함께 슬퍼하면서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신:그래 맞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최소한 인간이라면 말이야. 자 그런데 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비 내리는 어느 봄날의 밤, 선애는 창가에 앉아서 벚꽃 잎이 빗방울에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문득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렸어. 그러면서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지. 자 이제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 한번 말해봐.
선애:아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눈을 감고 떠올려 보니, 벚꽃 잎이 빗물에 젖어 길을 덮고 있고, 그 꽃잎은 빗물에 쓸려 흘러가고 있는 영상이 떠올라요. 떨어진 꽃잎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얼굴 같아요. 그런데 표현이 참 어렵네요.
성신:너무나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서 그럴 거야. 자 그럼 이제, 그 모든 감정을 모아서 ‘그날 밤’이 대체 선애에게 ‘어떤 밤’이었는지를, 가장 짧으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봐.
선애:아름다운 벚꽃 잎이 비에 떨어진다. 거리를 흐르던 꽃잎들은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몸부림치며 들어간다. 처연한 봄날의 흰 꽃잎들….
성신:잘했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지?
선애:아! 그러네요. 너무나 크고 복잡한 마음을 가장 짧게 표현하려니까 절로 시처럼 되네요. 어설프지만… ^^;;
성신:전혀 어설프지 않아. 나는 선애가 쓴 그 문장으로 아주 섬세하게 선애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었어. 그날 밤 선애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며, 가장 슬픈 생각을 했던 거야. 비에 떨어져 흐르다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벚꽃 잎을 보며 아이들의 죽음을 생각한 거야. 놀랍지 않아? 그 짧은 문장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한 것 말이야.
선애:정말… 놀랍네요!
성신:순간의 복잡한 심경까지 담기에 우리의 일상 언어들은 너무나 건조하거나 부족하지.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로는 길을 물을 수는 있어도, 사람을 웃게 만들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
선애:시라는 것이 괜히 이상하거나 어려운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섬세하고 정확한 소통을 위해 그리하는 것이란 말씀이군요.
성신:이것이 시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시에 대한 중요한 오해 하나는 풀 수 있지.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다.’
선애:‘어려운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것이다.’ 정말 이해가 쏙쏙이네요.^^
성신:이 대목은 어떤지 한번 읽어 봐!
어디선가 지금도 문을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허우적이는 소리
오, 거대한 악마의 입이 사람들을 삼키는 소리
지금도 어느 창가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얼굴들
살려줘요. 엄마, 아빠
이 죽음의 선실에서 나가게 해줘요
1년이 지나도 올라오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들, 진실의 소리들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선애:시네요? 누가 쓴 무슨 시죠?
성신:이것은 이번 4·16 2주기 추모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송경동 시인이 써서 낭독한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시의 한 대목이야.
선애:‘거리의 시인’ 또는 ‘노동자 시인’이라고 불리는 송경동 시인 말씀이군요.
성신:읽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
선애:읽자마자 가라앉던 세월호가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성신:그렇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너무나 슬픈 나머지 가슴에서 분노가 일지? 그럼 이 부분을 한번 다시 보자고.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선애:왜요?
성신:세월호가 어느 지점에 가라앉아 있는지를 송경동 시인이 지금 몰라서 묻는 게 아니지?
선애:그렇지요.
성신:그런데 그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세월호가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문제로 환기되지 않아? 우리들이 지금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성신: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있는가…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보니 정말 그래요.
성신:단 하나의 짧은 문장이지만,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분량의 말을 건네고 있는 셈이지.
선애:순식간에 너무 많은 말을 걸어서 일일이 담을 수도 없을 정도예요.
성신:이게 바로 시의 힘이야! 그냥 쉽게 말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시라는 이상한 형식을 통해 그렇게 이상한 언어로 어렵게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에 대한 답이지.
성신:즉 시는 일상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면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적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선애:와! 이렇게 시의 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느낌이 ‘훅’하고 오네요.
성신:쑥스럽게 왜 그래! 아무튼 난 이번 세월호 2주기 문화제에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일순간에 사무치게 만든 송경동 시인 정말 좋아해!
선애:‘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시, 저도 읽어 봤어요. 처절한 이 시대를 처절함 그 자체로서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성신:맞아! 자본과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온 시인이 바로 송경동이지!
선애:혼자 읽었을 때는 거친 언어들과 격앙된 목소리가 느껴져서 선뜻 마음이 가는 시는 아니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혀 달라 보이네요.
성신:그는 늘 거칠게 항의하고 소리 높여 시대의 불의를 야단치지만, 송경동 시인의 목소리는 본질적으로 따뜻하지! 한마디로 그의 시편들은 늘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니까!
선애:노동시인으로도 불리지요?
성신:나는 그런 규정된 말들이 싫어! 동의하지도 못하겠고! ‘노동시인’이 대체 뭐야? 그것은 마치 ‘님의 침묵’의 한용운을 ‘연애시인’으로 규정해 놓는 것과 같지 않아?
선애:아, 역시 비유의 달인~! 그렇게 설명하시니 정말 끔찍한 규정이네요.
성신:또 박노해 시인을 ‘섹스시인’이라고 하는 것과도 같아!
선애:으잉? 그건 무슨 소리예요?
성신:박노해 시인의 대표작이 뭐야?
선애:‘노동의 새벽’이죠.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https://images.khan.co.kr/article/2016/04/17/l_2016041802000816000206951.jpg)
성신: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여기서 ‘밤일’을 섹스로 규정하면, 이 시가 어떻게 되겠어?
선애:하하하하.
성신:누가 선애에게 ‘예쁘기만 한 애’라고만 말하면, 기분 더럽지 않겠어? 예쁜 건 사실이지만,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 총명하고 정의롭기까지 하지! ^^
선애:ㅋㅋㅋ 확실히 사람을 함부로 규정짓는 건 위험하다는 걸 알았어요~!
성신:나는 송경동 시인을 ‘뜨거운 휴머니스트 시인’이라고 생각해.
선애:저도 동의! 그럼 우리끼리라도 송 시인을 ‘뜨거운 휴머니스트 시인’이라고 부르죠 뭐!^^
성신: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 선애가 나를 무엇이라 불러줄지 그것도 궁금하네. ㅋㅋ
선애:그것은 일단 비밀! 저한테 잘해줘 보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