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여주인공 홍선애. 그녀는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진행능력을 보유한 아나운서다. 현재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함께 TBS방송국의 서평 프로그램인 <TV책방 북소리>의 진행을 맡고 있다.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그녀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은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책읽기와 사유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홍선애. 이제 그녀가 책의 바다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꽃중년을 자처하는 어이없는 책동네아저씨 김성신은 그녀의 독서 나침반이다.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예순 번째 이야기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다케히사 유메지 지음 /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이다.
성신: 이것은 굉장히 쉬운 질문일 수도 있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선애: 그런 질문 좋아요!
성신: 선애는 낭만적인가?
선애: 정말이네요. 굉장히 쉬우면서 동시에 굉장히 어려운 질문
성신: 진지한 질문이니까.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하는 식으로 반문하기 없기.ㅋ
선애: 우선 질문이 웃겨요. <천사들의 합창>이란 멕시코 드라마에 나왔던 그 옛날의 라우라가 떠올라서요. ‘너무 낭만적이야’라고 말하던 그 통통한 아이. ㅋㅋㅋ
성신: 귀여웠지. 그 라우라가 아마 선애보다 언니일거야.^^
선애: 그런데 ‘너는 낭만적이냐’는 질문이요.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성신: 그래? 그렇다면 나는 이미 답을 얻었군. 선애는 낭만적이야! ㅋㅋ
선애: 아직 제가 대답도 안했는데요?
성신: 낭만적인 사람들의 특징이지. 어떤 질문에도 쉬운 대답을 하지 않는 것 말이야. 왜냐면 낭만적인 사람은 생각이 많거든.
선애: ^^ 그러네요. 만약 저에게 ‘감성적인 사람’이냐고 물어보셨다면 단박에 ‘네!!’라고 했을 거예요. 근데 ‘낭만’이란 단어는 움찔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있죠! ‘낭만’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단어네요.
성신: 선애도 배워둬! 복잡한 함의를 가진 단어를 느닷없이 들이밀어 질문을 던지는 거야. 그럼 상대의 감춰졌던 내면의 일각을 들춰볼 수 있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요긴하게 써먹어봐.ㅋㅋ
선애: 헤헤 정말 요긴하겠네요. 그런데 대체 ‘낭만’이 뭘까요?
성신: 현실적인 관심보다는 정서적이고 이상적으로 세계를 보려는 마음이나 태도를 우린 보통 ‘낭만’이라고 하지!
선애: 흠… 말씀처럼 저는 본질적으로는 낭만적인 사람이지만, 점점 현실에 낭만지분을 뺏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생각해보니 슬프네요.
성신: 낭만은 대체로 슬프지.
선애: 그래서 그런지 예술가의 낭만적 이미지를 떠올리면 행복한 이보다는 외롭고 슬픈 존재가 떠오르나 봐요.
성신: 게다가 지금 우리는 예술사조상으로 봤을 때 낭만주의 시대의 바로 그 뒤를 이어서 살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바로 앞 세대를 살다간 낭만주의자들의 모습을 지식인이나 예술가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거야. 가령 폐병으로 요절한 이상, 행려병자로 죽은 이중섭….
선애: 오호!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성신: 그런데 이런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려줄까?
선애: 오, 정말 궁금해요~
성신: 그럼 먼저 질문! 선애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떤 사랑을 받고 싶어?
선애: 음…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을까… 오늘은 어려운 질문만 던지시네요.ㅋㅋ
성신: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 어떤 이유로 사랑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인데, 그러다 결국 사랑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뭐 그런….
선애: ㅎㅎ 어린 소녀시절엔 꿈꾸었죠. 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그런 남자에 대한 로망이랄까? 그런데 다 큰 지금도 제가 계속 그런 기대를 하고 살면, 너무 실망한 나머지 사랑을 아예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성신: 사랑도 현실과 적절하게 타협한 거군. ㅋㅋ
선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 마음 아주아주아주 깊숙한 곳에는 그런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꿈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를 볼 때도,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들에게 저 자신을 투영하니까요. 저의 현실감각과 달리 내면에선 그런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고 있나 봐요.
성신: 맞아! 전설이나 신화, 고전문학, 현대문학, 오늘날의 TV드라마까지도, 무수하게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랑의 양상이 바로 낭만주의지. 그만큼 낭만주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닿아 있다는 거야.
선애: 오호! 그렇군요. 낭만은 본능이다!
성신: 그런데 말이야. 그런 낭만적 사랑의 완전한 반대 양상이 있다면 뭘까?
선애: 완전한 반대???
성신: 모르겠지? ㅋㅋㅋ
선애: 글쎄요 누구의 희생도 없이 완벽히 행복하게 이뤄지는 걸까요? 어려워요 ㅠㅠ
성신: “돈보고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만 살다가 죽었다” 정도 되지 않을까?ㅋㅋㅋㅋ
선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이 시대 어머니들이 자신의 딸들에게 바라는 삶일 수도 있겠네요.
성신: 선애 오늘 좀 시니컬한데?ㅋㅋ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번 생각해봐,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은 실제로 어떤 양상이 더 많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실제로 그렇게 목숨 걸고 사랑하다가 죽은 친구나 아는 사람이 있었냐고?
선애: 없어요! 다들 평범하게 만나 사랑하고 복닥복닥 살아가죠.
성신: 나 역시 이 나이 먹도록 단 한 번도 본적 없다네! 그런데 말이야. 자신은 물론이고, 살면서 단 한번 본적도 없는 그런 사랑을 우리는 왜 그토록 바랄까?
선애: 인간의 욕망은 참 신기해요. 가지지 못한 것이라서 욕망하는 것이겠죠?
성신: 그렇지.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낭만주의는 그저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원하다보니, 어쩌다가 갑자기 생긴 조류가 아니야.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차가웠던, 그 이전 세상에 대한 인간적 반발심이라고도 볼 수 있지. 낭만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문화적 반동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거야.
선애: 합법칙적이네요. 맞아요. 인간에겐 이성과 감성, 그 둘 다 꼭 필요하니까요.
성신: 그런데 그 둘은 적대적이라기 보단 상호 보완하는 관계지. 현실의 비정함을 비현실이 지탱하게 해주고, 비현실의 위험성을 현실이 경고하는 식으로.
선애: 아하! 바로 그래서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낭만적인가보네요. 현실이 지나치게 가혹하니까, 그걸 보완한다는 의미로 말이죠.
성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사람들이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런 책들을 찾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선애: 참! 곧 출간될 책이라면서,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출판사 교정본 파일로 보내주신 원고 있잖아요? 그 책도 읽어보니 그야말로 낭만이 철철 넘치는 그런 저자와 내용이던데요?
성신: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것은, 우리 같은 서평칼럼리스트들의 특권이지.ㅋㅋㅋ 그 책 제목이 이렇게 정해졌다고 하더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번 주 화요일 쯤 제본소에서 책이 나온다고 하던데. 책 디자인도 아름답고, 내용도 재미있고, 아주 기대만빵이야!ㅋ
선애: 다케히사 유메지라는 일본 화가의 그림과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인데, 저자의 삶이 흥미롭던데요. 이중섭이 떠오르기도 하고, 비운의 예술가던데요.
성신: 1884년 태어나 1934년 불과 51세로 요절했지. 이 책을 번역한 정수윤씨는 역자 후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다케히사 유메지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더라고.
선애: 아! 어느 구절인지 알겠어요. “아름다운 것을 보면 하염없이 빠지고 그른 일 앞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일을 하려 했던 남자. 신은 그에게 뛰어난 감수성과 재능을 선물했지만, 그가 긴 방랑에 종지부를 찍고 생애 마지막 과업을 이뤄보고자 했을 때 숨을 거두어갔다.” 이거죠?^^ 어떤 사람이면 죽어서 저런 평가를 얻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성신: 맞아! 유메지라는 사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 그는 일본의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와 서양 미술을 접목한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미인도를 그렸다고 하는데, ‘우키요에’란 일본의 무로마치시대부터 에도시대 말기(14~19세기)에 서민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을 뜻하는 단어지. ‘우키요’는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인데 미인, 기녀, 광대 등을 주로 그린 일종의 풍속화라고 보면 돼.
선애: 그림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순수한 감정들을 활자로 옮긴 시, 소설, 수필, 동요로도 유명하다고요.
성신: 응! 그렇게 해서 유메지는 일본에 근대문화가 화려하게 꽃 핀 다이쇼 시대(1912~1926)의 낭만을 뜻하는 ‘다이쇼 로망’의 상징적 예술가가 되었다고 하더군.
선애: 그러니까 한 시대의 상징적 예술가가 격정적인 삶을 살다가 요절까지 했으니….
성신: 그의 인생 자체가 시대의 상징이었다가, 결국 신화가 된 거지! 멋있어?
선애: 멋있어요!
성신: 불우해서 멋있지. 불행을 기꺼이 감당해낸 그 용기가 멋있고….
선애: 아무튼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삶이더라고요. 어떻게 한 평생을 모조리 그런 격정으로 채워서 살 수 있었을까요?
성신: 그러니까 낭만주의자지!^^ 그런데 재미있는 지점은 바로 이거야.
선애: 뭔데요?
성신: 그의 책이 ‘지금’ 우리 앞에 던져졌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왜 지금 그를 소환하는가 하는 것 말이야. 재미있지 않아?
선애: 분명 특별히 해석할 의미가 있는 거죠?
성신: 대공황과 전쟁, 그리고 군국주의. 유메지가 살았던 당시의 일본은 더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세계였어. 희망이 사라진 세계였지!
선애: 끝없는 탐욕으로 황폐해진 지금의 우리처럼….
성신: 그렇지! 시공과 형태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세상이라는 의미야.
선애: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과 유메지 이야기를 하면서 제 가슴에 낭만이 충만해졌어요. 건조한 현실 앞에서 지분을 잃고 있던 낭만이 빼꼼~ ㅎㅎ
성신: 본래 현세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끔찍해지면, 인간은 몸과 영혼을 던져 내세를 쳐다보게 되어 있지.
선애: 도피처가 필요하니까요.
성신: 우리 인간의 마음은 역사의 시약과고 같은 거란 생각이 들어. 우리가 어느 쪽을 쳐다보고 있는지를 알면, 실은 그 반대편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거야!
선애: 역시 탁월한 해석!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면 시대를 읽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겠어요.
성신: 시대를 읽으면 시대를 만들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