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도레 ‘수수께끼’(L’Enigme)

입력 : 2018.01.29 15:25
  • 글자크기 설정

오르세 미술관 한 켠에 걸린 이 그림은 뭘 그린 건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만 그림의 크기가 작지 않고, 색감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두운 톤으로 청색 빛이 감도는 검은색과 회색으로만 그려져있죠. 화사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돋보이는 인상파 그림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에 이런 색감의 그림은 언뜻 잘못된 자리에 온 것처럼 보입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들판에 쓰러져 있는, 이미 생명의 불이 꺼져 버린 사람들이 가득한 한가운데에 두 형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스핑크스이고, 그 스핑크스의 머리를 붙들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듯 보이는 대상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천사를 그린 것일까요? 표현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불안하고 절망적입니다. 이 그림은 ‘수수께끼’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작품은 19 세기 후반, 정통 유화 화가보다는 삽화에 더 재능을 보였던 19세기 화가 구스타브 도레라는 작가의 그림입니다.

구스타브 도레作 ‘수수께끼’(1871년) 130 x 195.5㎝

구스타브 도레作 ‘수수께끼’(1871년) 130 x 195.5㎝

무겁고 어두운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871년. 오르세는 어떻게 작품을 설명할까요?

‘1871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어졌던 1870년 전쟁과 이듬해 일어난 파리코뮌을 겪은 작가의 참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 그림은 도레의 사망 이후 열린 1884년 유작 전시회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유작 전시회에서 이 그림은 도레 본인이 직접 고른 빅토르 위고의 1837년 시집 <내면의 목소리>(A l’Arc de triomphe에서 인용된 두 줄의 시구가 옆에 붙어 있는 채로 전시되었다.

‘이 모습이라니! 인간들이 이뤄 놓은 것들은 이렇게 죽었노라!/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진 이 같은 과거라니!’(O spectacle ! ainsi meurt ce que les peuples font!/Qu’un tel passe pour l’ame est un gouffre profond!)

1870년에서 시작돼 1871년까지의 2년은 프랑스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새겨집니다. 독일의 전신인 프러시아가 비스마르크의 지휘 아래 강력한 군대로 프랑스를 침략합니다. 이제까지 국가간의 전쟁에서 한번도 독일에게 패한적이 없었던 프랑스는 준비를 워낙 철저하게 했던 철혈재상의 새로운 전술 앞에서 얼마 저항해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죠. 이 사건을 보불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때까지 은근히 독일을 2등 국가 취급을 했던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패한 것은 굴욕적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항복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고 할 수 있죠. 군의 지도부는 제대로 방어를 하지도 못하고 무능하게 무너지고, 이름 없는 일반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군대는 흩어져 버립니다. 적어도 유럽 대륙 내에서는 최고라는 그들의 자존심은 짓밟혔고, 유럽 최고의 문명 중심지를 일구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던 프랑스 국민에게 잔인한 경험이고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되죠.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유배된 뒤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했으며, 알사스와 로렌 두 지방을 독일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

그리고 뒤이어 이 전쟁의 수습 단계에서 벌어진 파리코뮌은 전쟁의 책임 여부와 함께 최고조에 달했던 계급 간 대립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얽혀 터진 사건이었습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다 빠져나간 가운데, 전쟁 배상금과 세금인상 등은 전쟁 내내 지원도 받지 못하고 파리를 사수했던 시민들에게 떨어집니다. 이런 정치권의 무책임이 이어지자 수도였던 파리가 독립을 선언하고 중앙 정부에 대항했던 사건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기고 실패로 끝이 납니다. 전쟁의 피해는 물론이고 파리코뮌 역시 인명 손실과 유럽의 문화 수도 파리를 심각하게 파괴하게 되죠.

알사스의 대표 도시 스트라스부르크 태생의 구스타브 도레는 자신의 고향은 적국에 빼앗기고, 자기가 생활하던 파리는 고립되고 탄압받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그가 겪은 전쟁은 그렇게 작품과 닮아 있는 셈입니다. 그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3 개 연작을 그립니다. 각각 ‘수수께끼’, ‘프러시아의 검은 날개’, ‘파리의 저항’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3 개 모두 회색톤의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되었죠. 그 중에서도 이 수수께끼가 가장 비극적이고 무거운 그림입니다.

시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가운데 우뚝 솟은 언덕 위로 인간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전설의 존재 스핑크스가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풍경은 적군의 대포에 공격당한 후 폐허만 남은 파리 시입니다. 어두운 하늘 하래, 아마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날개가 달린 여성은 스핑크스에 기대어 뭔가를 묻고 있습니다.

수수께끼와 스핑크스. 그리스 신화 <오이디프스 왕>의 비극에서 보듯이 스핑크스는 자신의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는 인간들을 죽이는 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그리스 인들이 이집트 신화의 신성함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분위기 때문에 스핑크스의 성격이 변화한 거죠. 원래 피라미드의 옆에 앉아 있듯이 이집트에서 스핑크스는 지하 세계를 지키는 신이었습니다. 도레의 그림에서 스핑크스는 그리스 보다는 이집트에서처럼 전쟁의 참상 위에서 죽음으로 인도할 영혼들을 위해 온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무엇보다 죽은 이들에게 향한 공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이 수많은 죽음과 잔인한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아마도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이 질문을 했을 것 같습니다. 수수께끼 같이 문명은 발달한다고 하는데도 전쟁은 더 잔인하게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순간을 도레는 체험합니다. 그 참상을 이렇게 절절히 전하는 마음은 섣부르게 입에 담는 위로 보다 오히려 더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아름다움 뿐 아니라 고통이 담긴 인간사를 기록하고 함께하는 것, 예술 작품이 공예품과 다른 또다른 측면은 바로 이 공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