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한 별과 고향의 흔적을 찾아주는 시집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입력 : 2018.02.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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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지영환 시집, 민음사

‘명왕성 대변인’을 자처하는 고흥 시인 지영환의 시집

[스경의 한 줄 책]망각한 별과 고향의 흔적을 찾아주는 시집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누가 알까.

저녁의 별들이 안아준다.

그렇게 저녁은

아무도 모르게 안아 주는 것들의 온기로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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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고 흩어진다. 빛은 산란한다. 저것이 별에서 온 것이라면 아마도 모든 별은 산란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모이고 흩어진다. 우리가 배워 온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그걸 사랑이라고 한다지. 그래서 좀 깜빡깜빡하지. (중략) 어느 날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배치는 비기도 해. 명왕성은 134340 번호를 부여받고 태양계에서 퇴출되었어. 태양계 마지막 행성의 위치는 사실상 비게 된 거야.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중력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 아마도 그게 사랑이 아닐까. (중략) 고대 그리스 시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도는 천동설이 있었어. 1400년간 우리를 지배했지. 모이고 흩어지며 그랬어. 별들은 그때에도 그랬지. 우리의 사랑스러운 산란. 다음에 지동설이 천동설을 몰아냈지. 그리고 별들이 다시 배치되었지. 그랬던 날들이 있어. 모이고 흩어지던 날들. 사랑의 법칙이 그런 거지. 모이고 흩어지는. 공을 던지듯 나는 커쇼의 트윗을 리트윗해. 트윗의 공간도 산란의 우주. 그곳의 기억도 우주의 기억과 마찬가지. 산란의 기억. 그곳에도 퇴출되는 열 번째가 있을 테지만. 거기에도 사랑이 있어 우리를 부르는 말들로 불러 줄 날이 있지. 별들처럼. 사랑을 배치하는 저 별들처럼. 아름다운 배치는 누가 이름을 바꾸어 붙여도 그대로 있기도 하니까. 그래. 열 번은 더 얘기할 수 있겠어.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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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까.

저녁의 별들이 안아준다.

그렇게 저녁은

아무도 모르게 안아 주는 것들의 온기로 따듯하다.

무르익은 입술을 가진 여인을 안아 주는 나무들

싸늘해진 노을을 안아 주는 단풍들

가지와 가지를 안고 핀 꽃들

꽃이 피는 동안 바람을 안아 주는 새들

흐느끼면서 살랑거리는 바람들

흘러가는 법만 익힌 냇물을 안아 주는 조약돌들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연어를 안아 주는 물들

산다는 것은 포옹이다.

퇴근하고 지친 나와 따뜻한 너의 포옹.

-‘저녁의 포옹’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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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고흥에서 올라온 늙은 호박

어머니 보약재로 봐 두었는데

한 해를 넘기고 말았다.

내 마음처럼 썩은 늙은 호박

봄 화단에 몰래 묻었다.

언제부터인지 화단에서 싹이 트더니

떡잎이 부풀어 올라와

청계산에서 얻어 온 닭똥을 뿌렸다.

세상 사는 일에 허덕이며

화단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가뭄 장마 견디며 호박이 자라고 있었다.

아득해지는 향기처럼 향나무 타고

세상에 난출하던 호박 덩굴손이 붙잡은 것은

결국 호박이었다. 아마도

자란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호박 한 덩이는 외숙모에게 보내고

어머니 생각이 썩지 않도록

한 덩이는 눈에 잘 띄는

장독에 올려놓았다.

내 눈에서 별들이 자란다. ”

-‘별들이 자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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