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눈 내린 겨울을 그린 풍경화 하나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인상파 작가인 알프레드 시슬레는 동기라고 할 수 있는 모네나 르느와르 보다 상대적으로 유명세를 타지 못했습니다. 초기에는 성격이 침착하고 내성적이어서 활발하게 본인의 어필을 하고 대중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소개했던 동기 화가들 보다 덜 조명 받았던 이유가 있었고, 50대 후반 유명해지기 시작했을 때,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잊혀졌던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명품 화장품에 사용되면서(영어식 표기로 시슬리로 바뀌었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되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시슬레 ‘루브시엔느의 눈내린 풍경’(1878년 61×50 ㎝)
알프레드 시슬레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이민온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이후 샤를 글레르라는 선생님의 화실에서 르느와르와 모네 등 평생 우정을 함게 했던 인상파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죠. 오늘 그림은 파리 근교 센느강 하류의 작은 마을 루브시엔느의 눈 내린 풍경이라는 작품입니다.
“겨울에 만나는 시골의 모습에 집중했던 인상파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에게 겨울이 주는 분위기는 지중해의 햇볕에 취해서 그림을 그리던 르느와르의 여름에 대한 애착만큼의 것이었다. 빛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두 사람이 같았으나, 시슬레에게 겨울의 햇빛은 낮은 온도 속에 차분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공기와 어울려 신비하기도 하고, 명상적이고 고독한 느낌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모네와 시슬레 두 사람은 그 선배 구스타프 쿠르베처럼 눈이 내린 설경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르느와르는 인상파로 시작할 때부터 나중에 독자적인 길을 걸을 때 내내 밝고 따뜻한 햇볕과 거기에 어울리는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에 비해서 시슬레는 차분하고 왠지 쓸쓸해 보이고 청색빛이 도는 색감을 표현하는데 능했었죠. 어쩐지 그의 청회색 물감은 눈을 그리는데 적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의 그림도 그런 경우에 들어가겠네요. 사실주의를 표방했던 쿠르베가 쥐라 지방, 본인의 고향의 숲과 풍경을 그릴 때, 묘사하려고 애썼던 눈의 효과는 인상파 화가 모네와 시슬레에 와서 그 결과를 이렇게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시슬레가 거의 본능적으로 끌리는 점도 있었지만, 사실은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풍경이 단순히 흰색을 채색하는 것이 아니라, 흰색 안에도 다양한 다른 색들이 섞여 있음을 그리고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가 팔레트의 물감을 섞을 때부터 존재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상주의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세분화된 붓터치 덕분에 흰색 사이에 캔버스 위의 눈 덮인 거리는 다양한 색깔을 표현해낸다. 이 길은 하얀색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중간에 파란 빛과 회색이 섞여 다채롭다. 루브시엔느와 마를리 르 후와, 혹은 나동(모두 파리 근처의 작은 마을들)처럼 잔잔한 풍경의 마을들을 지나가면서 시슬레는 눈이 쌓여있는 모습을 열심히 그림으로 옮겼다.”
파란 하늘이 하나의 색깔이 아님을, 강물이나, 숲, 그리고 구름과 눈 역시 한가지 색으로 표현될 수 없음을, 자연 속에서 직접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화가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정 관념이 만들어낸 정해진 색감이 아니라 인상주의자들에게 시각 마다 달라지는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그것 자체로 가치가 충분한 작업이었지요. 눈과 돌벽, 그리고 나무와 하늘 모두 하나하나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색깔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눈 내린 풍경은 하얀 색으로 덮인 단순한 색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눈이 내린 속에서 여전히 눈을 머금고 있는 회색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생동감을 가집니다.
“루브시엔느의 눈 내린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또한 새롭게 해석되는 시슬레 만의 원근법이 나타난다. 눈이 내린 거리의 길이 끝나는 부분에 서 있는 사람은 자연 속에서 왠지 혼자 단절된 것만 같다. 이 대비는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통일된 색깔의 모습에 더해서 세련된 변주를 보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으며, 언뜻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상파 식의 그림에 공간감을 더해준다.
시슬레는 영국 출신답게 영국 풍경화의 분위기와 수채화의 기법을 많은 부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선배 컨스터블과 터너 등을 연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곧 겨울이 끝이 나겠죠. 그러면서 회색 빛 속에 봄의 색깔도 서서히 들어오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 겨울도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들이 함께 했었다는 것도 기억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