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오르세 미술관에서 안내 포스터나 팜플릿에 주요하게 등장했던 그림입니다. 19세기 프랑스 근대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 모델은 본인이 화가이기도 했었습니다. 마네에게 그림에 대한 조언을 받는 제자같은 관계이면서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느와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과 깊은 교류를 하는 동료 화가였었죠. (마네는 인상파 그룹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스승과 제자, 혹은 선배와 후배 같은 사이였을 뿐 아니라,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2년뒤 마네의 동생 외젠느 마네와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기도 합니다. 미래의 자신의 계수를 그림으로 그린 셈이죠.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로 각별합니다. 오늘은 작가의 개성이 많은 부분에 나타나는 모델에 대한 특이한 관찰의 근대적인 초상화를 소개해드립니다.
마네 ‘제비꽃 장식을 달고 있는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1872년. 55.5×40.5㎝)
이 그림을 그렇게 자주 봤던 것이 이제 보니 이 초상화를 오르세가 소장하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1998년 오르세의 소장 목록에 들어온 이후 이 그림은 마네의 그림 중에서 가장 사랑 받는 그림으로 자리 잡았고, 모델 까지도 더 알려지도록 만들었다. 시인 폴 발레리는 이 그림을 보고 나서 ‘마네의 초상화 중에서 이 그림보다 더 훌륭한 작품은 없다’라고 평가했다. 발레리가 모리조의 초상화에 대해 분석한 것은 지금도 오르세에서 그림 해설을 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발레리는 마네의 그림을 보면서 “검은색이 주는 순수하고 강한 힘, 검은색의 차가움은 그림의 기반이기도 하고, 주인공이기도 하다. 모리조 얼굴에 창백하고 선명한 흰색과 장밋빛이 어울려 있는 피부 표현, 그리고 최신 유행을 보여주는 모자의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모자 아래 머리 타래와 모자의 끈은 정돈이 되지 않아 보이고, 턱에 돌려진 끈과 리본 등은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 관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커다란 눈인데, 지금 그녀의 눈은 초점이 흐릿하게 고정되어 있고 뭔가 저 너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이 곳에 있으면서도 이 곳에 있지 않은 듯한. 이 모든 것이 초상화 앞에서 모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도록 해준다. 이 것은 하나의 시(詩) 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감상을 전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을 정하는 기준이 사진처럼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런 기준에서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죠. 정돈되지 않은 선들과 거친 마무리는 완성을 위한 단계가 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궁금하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 만이 가진 독특한 느낌과 전달 방법을 통해 그림 하나에 여러 가지 감정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 개인의 특징을 중요시 하는 근대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스타일이 아니라 색다르고 개성있는 작품들이 더 주목받도록 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는 발레리가 느낀 눈빛에서 뿐 아니라, 모리조의 가슴 부분에 달린 장식에서, 그리고 뒤에 무심한 듯 걸려 있는 커튼 색에서 또, 모델의 코를 경계로 변화하는 빛의 영역에서 베어나오는 오묘한 색감이 매력적입니다. 검정색이 짙어 평면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모자도 마찬가지이죠. 다시 말해 그림 하나를 놓고 반복해서 또다른 점을 찾아보게 만드는, 작가가 관찰한 이야기들을 그렇게 듣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델 베르트 모리조의 눈빛은 그렇게 처음 보는 아름다움을 전해줍니다.
“발레리가 시 라고 표현한 이 작품의 베르트 모리조는 31살의 성숙하면서도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여성으로 마네의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이자 미래의 제수인 모리조에게 마네는 이후에도 10 차례의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뒤에 그림 보다 이 그림이 모리조에게는 정말 소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네가 이 그림을 미술 평론가인 테로도르 뒤레에게 팔면서 모리조를 달래기 위해 ‘제비꽃 장식과 부채가 있는 정물화’를 따로 그려서 선물했었다. 정물화에 사용된 두 가지 소품은 베르트가 모델로 마네 앞에 섰을 때 사용했던 물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트는 끝까지 자신의 초상화를 다시 사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마침내 1894년-그녀가 사망하기 딱 1년전- 이 그림을 뒤레에게서 구입해 자신이 소유했다.”
1998년에서야 비로소 오르세가 이 작품을 구입하게 된 것은 베르트 가족이 그림을 내놓는데 애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네 앞에 앉아서 자신이 모델이 된 시간에 대해, 그리고 마네가 그려준 그림의 오묘한 매력에 대해 베르트 모리조가 느꼈던 애착과 그 역사는 그림의 생동감 만큼이나 우리에게 이 작품의 관련 인물들이 살아 있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