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그리고 감동…17일간의 평창 추억

입력 : 2018.02.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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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17일간의 열전이 모두 끝났다. 개회식부터 폐회식까지 수많은 선수들의 환희와 눈물이 눈과 얼음 위를 뜨겁게 달구고 적셨다. 대회가 치러진 하루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모두의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었다. 대회 기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되새겨본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1일차(9일)-평화와 미래

평창 올림픽 플라자에서 개회식이 열렸다.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을 하는 가운데 VIP 관계자석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함께 박수를 쳤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성화 점화 장면과 함께 2000여대의 드론이 수놓은 올림픽 마크는 미래의 상징이었다. 평화와 미래가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2일차(10일)-오뚝이 데이

임효준이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7번이나 수술을 받았던 임효준은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대표팀은 예선 도중 한 번 넘어지고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통과했다. 마리트 비에르겐(노르웨이)는 여자 15㎞ 스키애슬론에서 은메달을 땄다. 올림픽 11번째 메달이었다.

■3일차(11일)-황제의 희비

네덜란드의 빙속황제 스벤 크라머르는 건재했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흔들림 없는 질주를 이어가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신기록과 함때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독일의 루지 황제 펠릭스 로흐는 3연패 눈앞에서 미끄러졌다. 3차시기까지 1위였던 로흐는 ‘마의 9번 커브’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5위로 내려앉았다. 고개숙인 로흐는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4일차(12일)-바람

평창에 강풍이 계속됐다. 전날 알파인스키 남자 활강 연습이 연기된 데 이어 이날 여자 대회전 종목도 연기됐다. 피겨 단체전 결승에서 캐나다가 우승을 했지만 가장 큰 바람을 불러일으킨 건 미국 남자 싱글 대표로 나선 애덤 리펀이었다. 미국의 첫 올림픽 커밍아웃 선수인 리펀은 절제되면서도 아름다운 연기로 감동을 선물했다. USA투데이는 “진정한 자유(free) 스케이팅이었다”고 전했다.

■5일차(13일)-행그리(hangry)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트 결선 3차시기를 앞두고 SNS에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배가 고파서 화가 난다(hangry)”고 적었다. 3차시기에서 완벽한 연기로 98.25점을 따냈다. 천재소녀의 화려한 대관식이었다. 최민정은 쇼트트랙 여자 500m 실격 판정을 받았다. 화를 내는 대신, 다음 경기 메달이 더 고팠다. 최민정 스타일의 행그리였다.

■6일차(14일)-턴&골

단일팀 랜디 희수 그리핀이 박윤정의 패스를 받았다. 돌아나오는 퍽을 잡아 왼쪽으로 한 번 튼 뒤 다시 돌아 슛을 때렸다. 일본 골리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골라인을 넘었다. 단일팀의 역사적인 첫 골. 1-4로 졌지만 올림픽 첫 골은 가슴에 남았다. 스노보드의 전설 숀 화이트는 3차시기에서 1440도 턴 기술을 연거푸 구사해 역전 우승을 따냈다. 목표(Goal)가 이뤄졌다.

■7일차(15일)-영미의 탄생

‘영미’가 날아와 가슴에 꽂히기 시작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세계 최강 캐나다를 8-6으로 꺾고 파란을 예고했다. 밤에 열린 일본전 5-7 패배는 오히려 분전의 계기가 됐다. 설 전날 밤, ‘국민영미’가 알려지기 시작한 밤이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탈락해 캐나다로 귀화한 태트 얀 블루먼은 크라머르를 꺾고 남자 1만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승훈은 4위였다.

■8일차(16일)-아이언맨의 金세배

한 치의 실수도, 오차도 없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전날 1·2차시기에 이어 3·4차시기에서도 완벽한 주행을 선보였다. 아이언맨 마스크를 쓰고 거침없이 질주해 넉넉하게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썰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설날 아침, 윤성빈은 레이스를 마친 뒤 팬들을 향해 금 세배를 올렸다. 윤성빈 옆에 얼굴을 들이밀었던 몇몇은 큰 비난을 받았다.

■9일차(17일)-노 메이크업

USA투데이는 ‘올림픽 사상 가장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날’이라고 했다. 체코의 에스터 레데츠카는 알파인 스키 여자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원래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이 주종목인 선수다. 기자회견 때 고글을 벗지 않은 레데츠카는 “우승할 줄 모르고 화장을 안 했다”고 말했다. 최민정은 500m 실격을 딛고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강한 멘탈에 메이크업은 필요없다.

■10일차(18일)-나오, 상화, 우정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에서 이번 대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나왔다. 고다이라 나오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환호하는 일본 팬들을 향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다음에 뛰는 친구 이상화를 위한 배려였다. 레이스가 끝난 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어깨동무를 하고 링크를 돌았다. 9년 동안 쌓은 우정은 메달 색깔 차이를 지우기에 충분했다.

■11일차(19일)-0.01초

차민규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땄다. 1위 노르웨이의 호바르 로렌첸과는 0.01초 차이였다. 차민규는 “다리가 짧아서”라며 웃었다.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한 레이스였다. 봅슬레이 남자 2인승에서는 0.01초 차이가 지워졌다. 캐나다와 독일이 4차시기 합계 3분16초86으로 똑같았다. 시상대 맨 윗자리에 모두 함께 올라 자리가 좁았다.

■12일차(20일)-원 팀

한수진-박종아, 다시 한수진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골이 나왔다. 스웨덴에 1-6으로 지는 바람에 전패로 끝났지만 단일팀의 여정은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았다. USA투데이도 이날의 최고 장면을 단일팀으로 꼽았다. 여자 계주 3000m는 ‘원 팀’의 힘을 보여줬다. 김아랑이 밀어주다 넘어지는 장면이 나왔지만 모두가 힘을 합했고,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3일차(21일)-역사

이승훈은 정재원, 김민석과 함께 남자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땄다. 이승훈은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로 동계올림픽 3대회 연속 메달을 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에르겐은 여자 팀 스프린트에서 동메달을 더해 동계올림픽 개인 최다 메달(14개) 기록을 세웠다.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팀은 비록 꼴찌를 했지만 동계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4일차(22일)-넘어지다

쇼트트랙 불운의 날이었다. 여자 1000m, 남자 500m, 남자 계주 5000m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황대헌과 임효준이 500m에서 은과 동을 딴 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했다. 누구나,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 20년간 최강이었던 캐나다 여자 아이스하키도 넘어졌다. 미국과의 결승에서 연장 끝 2-3으로 졌다.

■15일차(23일)-안경선배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 ‘안경선배’ 김은정의 마지막 샷이 일본의 스톤을 쳐내면서 중앙에 멈췄다. 11엔드 연장 끝 짜릿한 승리.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확보하는 순간,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의 대명사 안경선배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대회 전체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김태윤은 깜짝 동메달을 더했다.

■16일차(24일)-노력과 보답

이상호는 고랭지 배추밭 위에 쌓인 눈에서 스노보드를 탔다.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딴 은메달은 한국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 첫 메달이었다. 팀 추월 때 팀워크 논란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던 김보름은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극기를 깔고 절을 올렸다. 이승훈은 남자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함께 뛴 정재원과 손을 맞잡았다.

■17일차(25일)-기적

파일럿 원윤종이 이끄는 봅슬레이 오픈 4인승 대표팀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세계랭킹 50위인 ‘팀 원윤종’은 4차시기 끝 3분16초18로 독일의 니코 발터 팀과 함께 공동 은메달을 땄다. ‘영미 열풍’을 일으킨 컬링팀의 은메달 역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개회식 만큼이나 화려했던 폐회식은 미래를 향한 기적을 꿈꾸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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