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 ‘돔시(Domesy) 성의 식당을 위한 데코레이션’

입력 : 2018.02.27 07:00 수정 : 2018.02.27 07:01
  • 글자크기 설정

벽을 장식하는 그림들이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오늘의 작품은 크기가 워낙에 커서 특별전이 아니라면 잘 볼 수 없는 그림들입니다. 사실은 오르세 공간이 좁아서 이 그림들이 전시될 장소를 찾는 게 쉽지는 않죠. 더구나 벽의 4개 방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 대형 연작들은 그 공간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으면 느낌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그림들이 모여서 내놓는 오묘한 색의 조화를 느껴볼 기회가 그래도 가끔은 있죠. 마침 일본 도쿄의 미츠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에서는 5월까지 오딜롱 르동의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돔시 성 데코레이션은 이 전시회에서 르동이 만들어낸 새로운 색채들의 느낌을 전하는 중입니다. 아니면 그곳까지 가기 힘든 여러분들과 함께 이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오딜롱 르동  ‘돔시(Domesy) 성의 식당을 위한 데코레이션’(1901년)

오딜롱 르동 ‘돔시(Domesy) 성의 식당을 위한 데코레이션’(1901년)

오딜롱 르동. 우리에겐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19세기 후반, 상징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프랑스의 화가이며, 파스텔과 수채화 등에서 강점을 나타내는 뛰어난 색채감각을 지닌 작가였고, 삽화가로서는 기괴하고 놀라운 상상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데, 오늘 그림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르동의 후원자가 열심히 졸라서 탄생하게 한 예외적인 작품입니다.

“노란 배경위의 나무는 오딜롱 르동이 직접 작업한 18 개의 시리즈 그림 중 하나이다. (18개 중 14개를 오르세가 소장하고 있음) 원래 이 그림은 1900년에 욘느 지방 돔시 가문의 성안에 있는 중앙 식당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로베르 돔시 백작이 작가 르동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은 이미 나이가 60이 넘었던 르동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다른 길을 택했던 외도였다. 주문자 로베르 돔시 백작은 1890년부터 작가 르동에게는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로베르 돔시는 본인의 아버지 대에 처음으로 완성된 성의 중앙 식당 벽에 10년 넘게 후원해오던 르동이 그림을 그려주길 바랬습니다. 르동은 처음에 이 제의가 어렵다 하면서 거절했다고 전해지죠. 어쩌면 르동이 작은 사이즈 그림을 선호하고, 대형 장식화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였던 것 같은데, 백작은 본인의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백작은 르동에게 그림에 들어갈 도상학적인 주문, 다시 말해서 소재와 내용에 관한 요구를 한 적은 없었으나, 자신이 좋아하던 색깔인 노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원했다. 1900년 6월부터 1901년 4월 까지 쉬지 않고 작업해서 이 연작을 완성시킨 르동은 파리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 안에 그가 목표로 하는 내용을 적어 놓았었다.

노란 배경위의 나무와 노란 꽃이 있는 나뭇가지

노란 배경위의 나무와 노란 꽃이 있는 나뭇가지

르동을 비롯한 상징파 화가들이 집중한 것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표현과 색깔이었습니다. 모순적인 듯 들리면서도 이상하게 설득되는 그들의 주장은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 눈에 보이는 색만 표현하고, 우리가 보는 풍경만 뻔한 방법으로 그리는 것만 예술일까. 상상 속의 이미지를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에 대한 질문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지켜오던 비례와 대칭, 정확한 마무리 등은 중요하지 않았었습니다. 르동과 함께 상징주의 화가들은 오로지 영감에 의존해서 표현하려는 욕구에 따라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색깔과 그림을 대중들에게 보여줍니다.

“이 시리즈 속에는 부처와 시인도 등장하는데, 이국적이고 정신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던 르동에게 이전부터 다뤄지던 소재이기도 했다. 이 연작에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들은 모두 우연히 화면에서 던져진 것 같은 자유로운, 혹은 모습이다. 그러면서 비대칭은 역설적으로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산 병풍의 그것과 닮아 있는 점도 보인다.

동양적인 요소, 정신 문명에 관한, 그리고 신비한 종교와 역사에 관한 관심은 르동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유럽 예술가들에게 공통적인 요소였죠. 르동의 그림에 가끔 불교 속의 등장인물이나 부처가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파스텔, 구아슈, 템페라 등 유화 물감이 표현하기 힘든 섬세한 색깔과 부드럽고 퍼지는 효과가 있으며, 자연스러운 점묘로 환상에 잠긴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그렇게 파스텔로 그린 것은 아니지만, 이 연작에서 르동은 본인의 개성을 한껏 살리고 있습니다.

“나비파 운동에 참가했던 그의 절친한 다른 화가들이 새로운 색채감을 만들기 위해 유화와 템페라를 적절하게 섞어서 하던 기법을 르동도 받아들였는데, 이 그림 역시 그런 기법을 통해 섬세한 묘사와 뭉개져 버린 경계선이 동시에 등장하고, 정교한 쪽은 마치 실로 섬유를 짜놓은 듯한 효과를 얻고 있다.”

그림의 목적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그리고 명확한 구도가 생명이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그림은 분명히 완성된 것도 아니고 아름답다고 생각을 못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 완성하고 와라. 싶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그림이 전하고 싶은 내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 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은 새롭고 세련된 세상을 만들었으며, 신비하고 시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정확하게 마무리 되지 않은 선과 공간들은 색의 번짐과 묘한 분위기 덕분에 우리들을 추상적인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박수, 공유 영역
댓글 레이어 열기 버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