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내놔라 이놈들아" 타락한 세상을 향한 큰스님의 죽비 '성철 평전'

입력 : 2018.03.06 16:32 수정 : 2018.05.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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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평전> 김택근 지음, 모과나무 펴냄

[스경의 한 줄 책] "밥값 내놔라 이놈들아" 타락한 세상을 향한 큰스님의 죽비 '성철 평전'

“가장 낮은 곳은 자연히 큰 바다가 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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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품에 넣고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자유를 찾아 헤매는 영주를 식구들은 비상하게 지켜봤다. 영주의 고뇌는 부모의 눈에 방황으로 비쳐졌다. 사서삼경 안에 살아가는 이치가 다 들어있건만 아들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유림의 소양을 쌓아 선비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믿음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타고난 큰 그릇에 아들은 다른 것을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 이상언은 아들 영주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을 하면 해와 달 대신 색시를 쳐다보고, 책 대신 제 자식을 볼 것이라 여겼다. -60쪽

영주는 온통 깨달음에 관심이 있었지, 중이 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대원사에서도, 해인사에서도 속인 차림으로 당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큰스님이 출가를 명령하고 있었다. 동산은 불명까지 지어서 내밀었다. ‘성철 性徹’ … 하지만 영주는 중이 되겠다는 대답을 안 하고 물러나왔다. 그러던 어느날 동산이 백련암에서 큰절로 내려왔다. 주장자를 비껴들고 동안거 법문을 했다.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영주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것은 영주에게 주는 법문이었다. 문자가 없는 경은 결국 문 없는 문이었다. 조주의 무자 화두가 문득 환해지는 듯했다. 영주는 출가를 결심했다. ‘성철’로 살아가기로 했다. -97~98쪽

성철과 향곡은 운부암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이후 향곡이 먼저 입적할 때까지 가장 편하게 대했던 도반이었다. … 하안거 해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가을, 수좌 몇이서 포행에 나섰다. 잣나무숲을 걷던 성철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대뜸 향곡에게 말했다. “향곡아, 저 잣을 따올 수 있겠는가?” “아무렴, 내가 저걸 못 따겠느냐” “아무래도 네 몸집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자 향곡이 자못 씩씩거리며 잣나무로 달려들었다. 이를 성철이 급하게 말렸다. “옷을 벗고 올라야지. 송진이 옷에 묻으면 어쩌려고.” 향곡이 옷을 훌러덩 벗고 잣나무에 올랐다. 체구가 커서 잣나무가 심히 흔들렸다. 잣을 막 따려할 때 성철이 나무 아래서 소리쳤다. “아이고 큰일이다! 저기 처녀 서넛이 올라오네. 향곡아 빨리 내려와라.” 성철은 소리를 지르고 냅다 도망쳐버렸다. 성철은 제자들에게 이 대목까지 말하고는 혼자 배꼽을 잡고 웃었다.” -132~133쪽

성철의 ‘고함’과 ‘몽둥이질’은 봉암사에서 비롯됐다. 성철은 선방 문을 조용히 연 적이 없었다. 와락 열어 제치고 들어와 방 안을 오가며 고함을 지르거나 주장자를 내리쳤다.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밥값 내놓거라. 이놈들아!” -299쪽

조계종 종정 성철은 백련암에서 취임 법어만을 내려보냈다. 그 법어는 단번에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구절은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알 듯 하면서도 모르겠고, 쉬운 듯 어려웠다. 어찌 들으면 하극상의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무리를 꾸짖는 사자후 같았다. -580쪽

성철은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난부터 배우라 일렀다. 가난이 참다운 자유임을 실증해보였다. 밥그릇 하나에 옷 한 벌로 살았다. 적게 먹었다. 그래서 지구에서의 삶의 자리가 가장 적게 패였다. 최소의 생활이 최대의 자유였다. 성철의 누더기 옷은 치열한 수행으로 대자유를 얻은 사람의 징표였다. -6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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