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사에 대한 현답 '시간의 강가에서'

입력 : 2018.05.15 11:28 수정 : 2018.05.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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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인간의 생사에 대한 현답, 맹난자 지음, 북인 펴냄

맹난자 수필집 <시간의 강가에서>

맹난자 수필집 <시간의 강가에서>

저 인도의 유마힐 거사는 번뇌를 떠나지 않고도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온갖 상념 속에 이 몸을 붙들고 있다. 아니 서서히 자살하고 있는 중이다. 늙는다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1980년 교통사고로 죽은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자주 인용하던 말이다. “늙는다는 것, 이는 서서히 자살하는 것”이라고.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다만 그것으로 가는 과정이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은 드디어 나를 쉬게 하는 것이려니, 나는 기쁘게 땅을 껴안을 수 있었다는 헨리 데이빗 소로처럼 포근한 땅의 감촉을 맨몸으로 느끼고 싶다. 진정한 휴식은 자연에의 복귀이다. -57쪽

나이를 더해서 깨달은 것은 인류의 문제는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왜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지 못했을까. 고백하자면 마음뿐 사랑하는 방법에 서툴렀던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작별 앞에 남겨진 후회가 많다. 내 한 몸 떠나면 한 물건도 소용없다. 그야말로 신외무물이다.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다. -152쪽

마음의 자유를 위해서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속도는 미친 짓이다....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설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인간이 기계보다 뛰어난 것은 우리가 연약한 갈대로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는 일이다. 죽을 줄도 모르는 기계는 꿈도 없고 눈물도 없고 체온도 자비심도 없다. 인간이 만든 냉혹한 괴물, IQ시대에 감성지능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이유다. -160쪽

부모의 덕으로 요직에 올라 성숙할 시기 없이 자리가 높아지니 교만해져 민심을 잃는다. 따라서 “귀해도 위가 없으며 높아도 백성이 없으며, 어진 사람이 아래에 있어도 돕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움직임에 뉘우침이 있다”고 주역은 충고한다...언젠가 물러날 때가 있다는 것을,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도 잃을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진퇴존망’의 도를 알고 행한다면 그 자리에 있어도 허물됨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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