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예술혁명, 그리고 들뢰즈

입력 : 2018.05.25 18:51

<BTS 예술혁명-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 지음, 파레시아 펴냄

[스경의 한 줄 책] 방탄소년단, 예술혁명, 그리고 들뢰즈

“살아가는 법을 몰라

날아가는 법을 몰라

결정하는 법을 몰라

이젠 꿈꾸는 법도 몰라

눈을 눈을 눈을 떠라 다 이제

춤을 춤을 춤을 춰봐 자 다시

꿈을 꿈을 꿈을 꿈을 꿔봐 다”

-‘No Mor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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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은 이른바 ‘헬조선’을 만든 언론과 어른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경쾌하게 비웃음으로써 기존의 권위를 무력화시킨다. 기득권의 논리와 비난을 ‘적’ enemy으로 규정하고 이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가려졌던 눈을 떠 희망을 가지자고 말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니 서로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춤을 추고 새로운 꿈을 꾸자고 한다. -41쪽

방탄과 함께 경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친살해’를 실행하고 있는 팬덤 아미의 혁명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수직적 위계질서의 부품으로 포획당하지 않는, 진정으로 수평적이고 상호작용적인 구조, 즉 수평성과 관련이 있다. -84쪽

‘방탄현상’은 비중심화된 리좀적 체계를 보여준다. 이 체계에는 거대 자본이나 이와 연계되어 있는 미디어 권력 같은 단일한 권력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미와 방탄은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라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 아미 역시 방탄 팬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아무런 이해관계나 유사성도 없는 무수히 다른 뿌리줄기들의 연결접속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만일 SNS라는 탈중심적 네트워크를 단지 팬덤을 확장하여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만 활용한다면, 그것은 자본과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수목적 체계가 리좀을 자신의 하부구조로 다시 포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91쪽

풀뿌리 팬덤의 자발적인 연대와 실천,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낸 변화는 들뢰즈적인 의미에서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105쪽

연대를 통해 이 세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지를 경험했고, 그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방탄-아미 다양체의 혁명적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탄-아미 다양체가 펼쳐 보이고 있는 혁명적인 잠재력은 세계가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람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다. -110쪽

방탄과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은 기존의 매체적 경계 및 전통적인 예술가와 수용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영상 예술의 새로운 영토territory를 형성한다…새로운 예술형식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예술형식인 ‘네트워크-이미지’는 온라인 네트워크의 수평적이고 지배적 중심이 없는 리좀적인 잠재성이 예술형식의 영역에 촉발하여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술형식이 목적으로 삼는 것은 기존의 ‘진리’, ‘관조’, ‘지고의 아름다움’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가치들이 아니다. 네트워크-이미지라는 예술형식에 요청되는 사회적 역할은 네트워크를 통한 전염, 확장과 관객의 공유를 통한 의미의 생성이라는 ‘공유가치’이다. -141쪽

박수, 공유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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