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를 한 줄로 꿴 '옆으로 보는 동아시아 삼국지'

입력 : 2018.07.01 17:47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이희진 지음, 동아시아 펴냄

[스경의 한 줄 책] 한중일 역사를 한 줄로 꿴 '옆으로 보는 동아시아 삼국지'

“반만년에 해당하는 역사를 정리하면서 느낀 점인데, 재정(財政)을 중심으로 한 내부 운영이 국가 존립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중원을 장악했던 대제국의 경우, 단순히 외부의 침략만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대부분 내부에서부터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외부의 충격을 받고 붕괴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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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회의 내부는 폐쇄적으로 운영되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문화적으로 동경하던 송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은 물론, 정치적으로경계하던 거란 등 북방 민족과의 무역도 폐쇄된 것은 아니다. 활발한 대외교류의 결과, 개경의 외항인 벽란도에는 중국, 일본,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지의 상인들이 와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53쪽

원과 화의를 맺은 고려는 원의 일본 정벌에 동원되었다. 화친을 모색할 때부터 고려를 일본 정벌에 이용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원 세조 쿠빌라이는, 1266년 사절을 파견해 고려가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 쿠빌라이는 이후에도 일본 원정에 미련을 보였다. 여러 번 원정 준비가 반복되었고 고려는 그때마다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렇게 반복해서 추진되었던 일본 원정은 1294년에 쿠빌라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고려는 원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26쪽

조선 전기의 여론은 재상이나 대신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조선 후기의 여론은 낭관(郎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이것이 사림정치의 틀이다. 이러한 틀을 통하여 재상이 주도하던 고려와 조선 초기의 정국을, 사림이 주도하는 정국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틀은 1741년, 탕평정치를 시작하면서 전랑권(銓郞權)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381쪽

14세기 이후 약 200년 동안 안정을 유지하던 동아시아는 16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선의 주변 국가인 중국과 여진, 일본 모두 자체적인 혼란에 휩싸여 대전란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다. 보통 동아시아의 정세는 대륙의 변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파급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일본에서 생긴 분란이 한반도를 거쳐 명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만주의 여진족이 급속하게 성장함으로써 동아시아 정세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런 와중에 명의 국력이 쇠퇴하며 북방 이민족과 왜구의 침략이 잦아졌다.16세기 후반의 전란은 기본적으로 명의 쇠퇴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381쪽

조선이 1592년부터 수년 동안 일본과 전쟁을 치르고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노비들이 큰 공을 세움으로써 양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국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보충한다는 목적으로 나라에 곡식을 바치면 양인이 되는 기회를 주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그동안 법으로 엄격하게 금했던 양인과 천인의 통혼이 흔해졌다. 그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어떤 신분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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