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 변경 국민투표를 앞둔 마케도니아에서 정치권은 물론 여론 전반에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마케도니아는 지난 6월 국호를 ‘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에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North Macedonia)으로 변경하기로 그리스와 합의했다.
1991년 유고에서 독립한 마케도니아는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 내에 위치했다는 근거로 국호를 정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중심지는 현 마케도니아와 전혀 상관 없는 그리스 북부”라며 “헬레니즘 문명을 계승하지도 않은 신생 국가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을 국호에 어떤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8일 마케도니아를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조란 자에프 마케도니아 총리의 환영을 받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8일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마케도니아 국호 변경에 대한 그리스-마케도니아간 합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압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의 알렉산더 대왕 동상. 니콜라 그루에프스키 전 총리와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닌 전 집권당 VMRO는 이 동상을 설치하여 그리스와 국호 및 정체성에 대한 국제적 논란을 악화시켰다. | 게티이미지
양국은 국명 문제로 오랜 시간 갈등을 겪어왔고, 특히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 및 나토 가입에 대해 그리스는 “국명 문제를 선결하라”며 지속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국호 변경 합의에 따라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 및 양국 관계 개선은 물론 유럽의 정치적·지역적 정세에도 큰 변화의 물길이 일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내부 상황은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국호변경안을 포함한 개헌을 낙관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정치 세력과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닌 국민들의 반대 여론 또한 크다.
영 가디언은 “북(North)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전 마케도니아인들은 끝없이 대화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알바니아계의 전폭 찬성 등 여론 조사 결과는 국호 변경 지지가 우세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해석이다.
국호 변경에 반대하는 마케도니아의 여론조사·분석가 사쇼 클레코프스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국호변경은 단순히 한 단어(North)를 추가하는게 아니라 정체성 문제”라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차이를 보라”고 지적했다.
국호 변경 찬성 측에서조차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견해도 발견된다. 수도 스코페의 ‘스코페 극장’ 배우 사냐 아르소프스카(31·여)는 “작고 가난하며 고립된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며 “국호가 바뀌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극적 지지층은 국민투표 전 국호 변경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보수진영과의 합의도 걸림돌이다. 국민투표가 통과되더라도 VMRO-DPMNE(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이하 VMRO)의 동의 없이는 헌법을 개정할 수 없다. 국호 변경을 위해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이 개헌안에 찬성해야 하는데, 연립여당이 만장일치 찬성표를 던진다 해도 최소 VMRO 측 10석의 동의가 필요하다.
VMRO 측은 “대외적으로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각종 민관 기구명, 여권, 기타 여러 명칭 변경이 뒤따라야 하는 등 비용과 불편 문제가 심각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예산과 편익 등을 앞세웠지만, 국호변경을 반대하는 VMRO의 속내에는 보수적 정치관점 및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삼는 점이 도사리고 있다. 2016년 도청 스캔들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VMRO 전 총재 니콜라 그루에프스키는 수도 스코페 한복판에 초대형 알렉산더 동상을 세워 그리스와 국호 갈등 문제를 악화시켰다.
마케도니아만 분열과 격랑에 휩싸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 내부의 반대 의견도 크다. 그리스 정부는 “옛 마케도니아 왕국의 북부에 세워진 나라인만큼 ‘북마케도니아’라는 명칭에는 문제가 없다”는 마케도니아 측 입장에 합의했다. 하지만 그리스 민족주의자들은 “북(North)이라는 단어가 추가된다 해도, 마케도니아란 이름이 쓰이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8일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는 민족주의자 등을 중심으로 양국의 국호 합의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진압 경찰과 무력 충돌도 일어났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를 방문한 독일 메르켈 총리와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은 물론,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국호 변경에 대한 지지 의사를 속속 표명했다. 반면 러시아는 국호 변경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마케도니아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마케도니아 내 친러시아파들은 ‘투표 거부’를 주문하고 있다.
국호 변경 문제에 유럽 정세마저 맞물려 요동치는 가운데, 마케도니아의 운명은 이번달 국민투표에서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 국민들은 30일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맹하고, 국호를 변경하기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간 이뤄진 합의에 찬성합니까’란 내용을 담은 투표용지에 찬반을 답해야 한다.
마케도니아 정부의 국호 변경 의지는 확고하다. 니콜라 디미트로프 외무장관은 “독립 후 27년 세월을 국호 문제로 허송세월했다”며 “새 국호는 200만 국민에게 새로운 역사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디미트로프 장관은 몇 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그리스 정부와 국호 변경 합의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그는 “과거에 우리는 옛 신화에 얽매여 우리 자신을 희생했지만, 이제 현실을 위해 옛 신화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장관 세케린스카도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은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