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공부를 강요하는 아버지 덕에 언제 한 번 마음 편하게 미술 공부를 해볼 시간이 없었던 폴 세잔의 초기는 항상 예술가라는 직업이 가족 관계에서, 그리고 또 개인의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레 알려 줍니다. 그것도 가장 절실한 문제인 경제 문제를 통해서 말이죠. 세잔이 고향을 떠난 것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서는 도저히 자신이 편하게 공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파리로 올라온 세잔이지만,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서 그 경쟁이 치열한 파리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잔은 아카데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는 것에 실패했고, 뒤이어 직업 화가가 될 수 있는 길이었던 살롱 전에도 여러 번 낙선하게 되죠.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목 매달아 죽은 이의 집’(1873. 55.5×66.3㎝. 캔버스에 유화)
모든 것에 용기를 잃은 그에게 동료들은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마을에 정착해서, 혁신적인 도전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인상파 화가들이 그렇듯 풍경화를 연구하고 새롭게 적응해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오베르 마을의 의사인 가셰 박사는 자신이 그림 애호가이자 후원자라고 공언했던 것처럼 세잔에게 지원을 해주고, 판화 등의 장르를 설명해주기까지 합니다. 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에 시간을 함께 하던 그 가셰 박사가 맞습니다. 오랫동안 이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고, 가셰의 이름 역시 자주 등장을 합니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인상파 작가인 카미유 피사로에게 중요한 것을 많이 배운 세잔은 점차 자기의 스타일을 찾아 나갑니다. 그 중에 제1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을 했던, 말하자면 그의 친구들이 해준 충고와 기대에 맞게 그려졌던 그림이 오늘의 첫 번째 그림인 <목 매달아 죽은 이의 집>이라는 그림입니다. 제목을 보고 잠깐 놀라셨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세잔이 선택한 이 제목은 그림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림 속의 풍경은 평온하고 따뜻하기만 하거든요.
“미래의 인상주의자들이 1874년 기획한 첫 번째 전시회에 출품된, 피사로와 함께 작업하던 시기에 그려진 이 <목 매달아 죽은이의 집>은 세잔이 초기에 어둡고 무거운 화풍을 버리고 직접 눈앞에서 관찰한 풍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것은 붓과 물감, 그리고 빛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곁에서 많은 대화를 했던 피사로의 충고이기도 했다.”

‘맹시 다리’(1879. 58.5×72.5㎝. 캔버스에 유화)
이 시기 피사로가 그린 그림과 세잔의 그림은 주제나 색감 면에서 상당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피사로는 동료이자 세잔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인상파의 가볍고 밝은 붓터치 뿐 아니라 좀 더 다른 것을 찾고 싶어하는 세잔에게 피사로는 스스로 더 연구할 수 있도록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았죠. 피사로의 이런 성격은 세잔은 물론이고, 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세잔의 이 그림에서도 지붕과 돌, 그리고 길을 그리는 부분에서 좀 더 두껍게 칠해지고 견고하게 풍경을 보여주려는 세잔의 목표는 전해집니다.
“문학적 주제들이나, 인물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려는 세잔의 초기작품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이 그림을 통해서 문학과 그림의 연결에 집착하던 세잔의 변화가 느껴진다. 이 그림은 앞으로 끊임없이 진화할 세잔 스타일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목 매달아 죽은 이의 집의 뒤를 이어 6 년 쯤 지나 발표된 “맹시의 다리”는 파리 근교의 작은 숲을 그린 풍경화입니다. 세잔의 붓 터치는 확연히 더 두껍고 무거워졌습니다.
“세잔이 이 작품을 그린 것은 이 근처에서 지내던 1879년의 일로, 그는 당시 떠오르던 인상주의자들과 비교해 매우 다른 화풍의 작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색채의 표현은 1870년부터 1880년까지 발전시키고 말년까지 완성을 위해 애쓰던 그의 그림 세계를 대표하는 기법이다. 세잔은 인상주의자이 작업하는 목표였던 빛의 효과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분절되고 덩어리처럼 묘사된 붓터치의 단위들은 색의 면들을 중첩시켜 화면을 구성하는데 더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풍경을 주인공으로 삼고, 붓의 텃치가 점묘를 하듯 나눠져 있으며, 새로운 물감 덕분에 그 색감이 비슷해서 세잔의 그림과 인상파의 그림이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만, 이 맹시 다리의 가운데 그려진 나뭇잎들은. 뭔가 세밀한 부분을 생략해서 그냥 발라 놓은 물감의 질감만 보이다가 시간을 두고 찬찬히 관찰하게 되면 그것이 잔잔한 바람을 맞으면서, 혹은 햇볕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변화무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다리와 돌의 단단한 존재감이 동시에 공존하게 되면 이 그림은 세잔의 정물화도 그랬듯이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것들을 종합하고 시간과 광선의 변화까지 조합해 놓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세잔은 니콜라 푸생이 만들어 놓은 본질의 탐구라는 목적을 현대의 작가들이 새롭게 발견한 것과 조합하려고 애썼고, 그런 그의 작업들은 후세 화가들에게 강한 울림을 줬습니다.
끊임없이,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시험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늘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것, 세잔의 예술은 평생 그래왔었습니다. 세잔이 파리 생활에 이후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을 본 그의 친구들이 세잔에게 실망을 표시했었으나,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후반부에는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나, 이 성실한 실험은 멈춘 적이 없었죠. 그가 해놓은 성과 만큼 그와 같은 시대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던 세잔의 본질은 진정한 예술가 자체였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