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하와이’라니….
중국 최남단 섬 하이난(海南)에는 왜 그런 화려한 수식이 붙었을까. 하와이와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하고, 본토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역할을 해서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편리한 해석은 아닐까.
실제 하이난의 첫인상은 화려한 원색보다 수수한 무채색에 가깝다. 중국과 동남아가 혼재된 느낌의 풍광. 거리는 평온하고 사람들 인상은 소박하다. 낯섦의 긴장감보다 익숙한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그 수수하고 편안함이 여행지로써의 매력을 퇴색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짧은 첫인상 뒤에는 하나둘 속살을 내보이기 마련한다. 사계절 해수욕이 가능한 바다와 울창한 아열대 산림.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맑다는 공기와 유서 깊은 유적. 만족도 높은 리조트와 다양한 먹거리. 거기에다 안정적인 치안까지.
다들 이런 경험 한 번씩 해봤으리라. 가족 혹은 단체여행 일행 중 누군가가 ‘왜 이런 곳에 데려왔니?’라며 삐쳐서 난감했던 경우. 그것이 숙박 문제이든 음식 문제이든 간에. 그래서 나머지 일행이 여행 내내 긴장해야만 했던. 하이난은 최소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다. 강렬한 ‘쨍’함은 없을지라도, 두루두루 장점을 갖춘 곳. 그래서 어느 누가 와도 ‘실패하지 않는 여행지’. 하와이가 아닌 하이난의 매력이다.

하이난 싼야의 다둥하이 해변. 연중 해수욕을 즐길 수 있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 꾸준하게 사랑받는 관광지는?
하이난의 기본적으로 휴양지다. 잘 먹고 잘 쉬는 곳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리조트에서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가, 오후에 바람 쐬듯 슬슬 관광지를 돌아야한다. 이곳의 여행법이란다.
관광은 대부분 남부의 중심 도시 싼야(三亞)에서 시작된다. 우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댜샤오둥톈(大小洞天·대소동천)부터 가보자. 중국 최고 등급 ‘5A’ 관광지이자 800년 전 남송시대부터 개발된 도교 명승지다. 해안을 따라 고목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 작은 동굴 위에 큰 바위가 앉은 모양새의 ‘소동천‘이 인증샷 명소. 동굴 안에는 작은 제단이 있은데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정작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딴 데 있었는데, 바로 웨딩 사진 촬영을 위해 몰려든 신혼부부들. 경치 좋은 곳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하트 뿅뿅’ 날리는 커플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정부에서 아예 ‘웨딩 사진 촬영기지’로 지정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도교 명승지 댜샤오둥톈의 ‘소동천’

도교 명승지 댜샤오둥톈은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웨딩 사진 촬영기지’이기도 하다.
시 중심가 로맨스파크에 가면 ‘송성가무쇼’를 볼 수 있다. 중국이 자랑하는 장예모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 명성이 자자한 그 쇼. 하이난 설화를 소재로 노래와 춤, 서커스, 특수효과가 결합된 형태다. 전체 5막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중국어 공연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또 내용을 모르고 봐도 그냥 신난다. 관객석까지 공연장으로 활용해서 벽을 타고 배우들이 날고, 천장에서 빗줄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로맨스파크에 좀 여유 있게 입장하면 송나라 거리를 재현해 놓은 예쁜 상점가도 둘러볼 수 있다.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송성가무쇼’

‘원숭이 섬’에는 2000여 마리의 야생 원숭이가 뛰어 논다.
싼야 외곽에 위치한 ‘원숭이 섬’은 2000여 마리의 야생 원숭이가 뛰노는 곳이다. 섬 전체가 보호구역이다. 어린 원숭이와 눈빛이라도 마주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먹이주기 체험과 콩트쇼가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하다. 단, 원숭이 앞에서 가방을 열면 안 된다. 먹이를 주는 걸로 착각해 달려들 수 있으니 주의하자. 섬에 들어가려면 2㎞ 길이의 케이블카를 타야하는데 창문이 없고 속도감이 상당해 놀이기구를 탄 기분이 들 정도다. 발아래로 500년 전부터 자리 잡았다는 수상가옥촌을 조망할 수 있는데,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색감을 자아낸다.

‘원숭이 섬’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수상가옥촌.
사위가 어둠에 깔리면 싼야 시내를 걸어보자. ‘보행거리’는 한국 명동처럼 북적대는 번화가다. 먹거리가 다양하고 특산품인 진주를 파는 상점도 여럿 있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간판도 보이지만 오늘만큼은 낯선 카페, 낯선 식당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지. 하이난 요리는 중국 본토보다 향이 옅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또 한곳, 막상 가면 별것 없지만 안가면 서운한 곳이 바로 여행지의 야시장. ‘제일시장’에는 밤마다 장신구, 의류 등을 파는 노점이 늘어선다. 계산기를 사이에 놓고 흥정하는 모습도, 무질서하게 내달리는 스쿠터 소음도 이곳에서는 그냥 정겹다.

싼야 시내 야시장 풍경.
■리조트에 ‘콕’하고 싶다면?
리조트 선택이 여행을 좌우한다고? 하이난에서는 정확히 맞는 말이다. 세상만사 잊고 나만의 완벽한 ‘호캉스’를 꿈꾼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선 하이난을 그냥 섬이려니 하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크기가 제주도의 19배에 달하고 인구가 900만 명이다. 웬만한 작은 나라다. 해변만 살짝 벗어나면 섬인지 내륙인지 구분이 안 된다. 여행 목적과 일정을 고려치 않고 숙소를 선택했다가는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다행인 건, 하이난이 리조트 천국답게 웬만한 곳은 기본 이상을 한다. 대륙 스타일을 닮아서 우선 객실 숫자에 놀라고, 큼직큼직한 시설에 다시 놀란다. 6600개가 넘는 객실을 보유한 곳도 있다니 그 스케일을 짐작할만하다. 전용 해변은 물론이고 수영장도 대여섯 개 씩 딸렸다. 가족관광객을 겨냥해 키즈 클럽이 훌륭한 것도 특징. 이름난 리조트도 성수기만 피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묵을 수 있다. 하이난 여행의 최고 장점이자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여행자 입장에서야 리조트 ‘천국’이지만 업계에서 보면 ‘전장’이 따로 없다. 서쪽 싼야(三亞)만으부터 다둥하이(大東海), 야룽(亞龍)만, 하이탕(海堂)만으로 이어지는 긴 해변은 이미 특급 리조트들이 꽉꽉 들어찼다. 하얏트, 힐튼 등 다국적 호텔 체인에 중국 업체까지 가세해 경쟁을 펼치고 있다. 5성급 이상 호텔, 리조트만 이미 100여개에 수년 내 70여개가 더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인기몰이 중인 곳은 동쪽 하이탕만이다. 최근에 개발을 해 시설이 깨끗하고 두바이에나 있을 법한 7성급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난은 리조트의 천국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틀란티스 리조트’ ‘풀만 오션뷰 싼야베이 리조트’ ‘뷰티크라운 호텔’‘소피텔 리만 리조트’

싼야 해변 곳곳이 리조트 건설로 한창이다.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올 4월에 개장한 ‘아틀란티스’. 두바이의 아틀란티스를 거의 옮겨오다시피 해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흡사하다. 초대형 워터파크와 아쿠아리움, 쇼핑몰, 극장까지 갖춰 작은 도시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배 모양의 외관으로 유명한 인근 ‘맹그로브’ 역시 7성급에 매머드 규모를 자랑한다. 다만 이런 곳들은 어린 자녀를 동반한 투숙객들이 다수라 어느 정도 분잡함은 감수해야한다.
조금 한적한 곳을 찾는다면 ‘소피텔 리만 리조트’가 무난하다. 세련된 외관과 편안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 객실 가구 모서리를 모두 둥글게 만들어 아이들 안전에도 신경을 썼다. 해변 산책로와 방콕 출신 셰프가 만드는 타이 음식 뷔페가 근사하다.
하이탕만은 파도가 높아서 해변에서 수영을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해수욕이 가능하면서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곳은 싼야만이다. ‘풀만 오션뷰 싼야베이 리조트’는 공항과 15분 거리에 있다. 3박한 고객에겐 밤12시까지 체크아웃을 연장해준다. 밤 비행기를 기다리며 야시장이나 마사지숍을 떠돈 경험이 있다면 솔깃하다. 모든 객실이 오션뷰이고 라이브 음악과 함께 즐기는 야외 바비큐도 추천할 만하다. 이외에도 하이난에는 저마다의 장점을 내세운 리조트가 넘쳐난다. 또 끊임없이 짓고 있고, 새롭게 문을 연다. 엄청난 중국 내수시장이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하이난은 고대로부터 악명 높은 섬 유배지였다.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란 뜻의 ‘귀문관(鬼門關)’으로까지 불렸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이곳을 ‘하늘의 끝 바다의 끝(天涯海角·천애해각)’이라고 읊으며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한탄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절망의 땅은 세계 최고 리조트 천국으로 탈바꿈 했다. 만약 소동파가 환생해 오늘의 하이난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요트투어를 하면 두바이 인공섬을 본 따 만들었다는 ‘봉황도’를 볼 수 있다.
■스트레스 훌훌 날리는 럭셔리 요트투어
하이난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 중 으뜸은 럭셔리 요트투어다. 닻을 높이 올린 하얀 요트에 몸을 싣고 앞바다를 한 시간 정도 돌아볼 수 있다. 맨발로 난간에 걸터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면 잡념이 절로 날아간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의 스카이라인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두바이의 인공섬을 본 따 만들었다는 봉황도(鳳凰島)를 스쳐가는데 그 위에 지은 최고급 주상복합 빌딩들은 하이난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트 안에는 휴식공간과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가격은 1인당 6~7만원선.
■여행 Tip
티웨이항공과 제주항공(이상 인천 출발), 에어부산(김해, 대구 출발)이 직항을 운행한다. 10월부터는 증편이 예정돼 있다. 비행시간은 싼야까지 4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다. 현지에서 도착비자를 받아도 되지만, 2명 이상이 국내 여행사를 통하면 면비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모두투어는 휴양과 관광이 결합된 다양한 가격대의 패키지, 에어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어가 잘 안 통해 간단한 중국어 회화를 배워 가면 도움이 된다. 택시 바가지요금이 있으므로 승차 후 미터기를 켰는지 꼭 확인하자. 시내에서 신용카드를 받는 가게가 많지 않다. 위안화로 환전해가는 것이 편리하다. 치안은 안정적인 편. 물가가 다른 동남아 관광지에 비해선 비싸다. 특히 11월~3월 성수기에는 중국 내국인들이 몰려와 많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