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은 유럽 예술의 상황만 보더라도 정말 흥미 있는 시대입니다. 이전까지 정해진 틀에 의해 비슷한 테마와 비슷한 인상을 가지던 그림들이 갑자기 다양해지고, 만들어지는 숫자도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던 유명한 화가들은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인상파의 모네와 르느와르, 드가 들이 그렇고, 고갱이나 고흐, 그리고 로댕과 클림트까지, 작가들의 개성과 창조력이 넘치는 시대라고 한다면 바로 이때를 떠올릴 만큼 19 세기 후반의 유럽은 미술의 시대였습니다.
오늘도 그 시대에 나타난 또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작가 한 사람을 소개해드립니다. 모리스 드니의 ‘뮤즈들’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르세는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인공 여성들을 동일한 시대의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화가 모리스 드니는 전통 신화의 주제였던 뮤즈라는 존재를 현대화 시키고 있다. 뮤즈란 예술과 과학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고, 말 그대로 여신같은 모습으로 자주 그려지던 흔한 소재였는데, 모리스 드니는 근본부터 그것을 바꿔놓았다. 여기에 나오는 뮤즈들은 원래 지녔던 능력이나 임무를 상징하는 어떤 장치도 없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미술관이 소장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준비한 글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경우도 조금은 과장된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모리스 드니가 자신이 살던 시대 옷을 입은 여성들을 그리면서 뮤즈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에 너무 호들갑스럽게 전통을 파괴하고 근본적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이야기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거든요.

모리스 드니 ‘뮤즈들’ (1893년. 171.5×137.5 m)
다만 그림의 색감, 그리고 분위기가 좀 독특합니다. 약간 희미한 듯 보이는 처리와 전체적으로 갈색 톤으로 묘사되어 나무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자연의 색깔은 바랜 듯이 보이는 것, 그리고 세 명의 여성들 얼굴의 묘한 표정까지. 그가 이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 모리스 드니라는 화가 본인을 살펴봅니다.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폴 세뤼지에와 에두아르 비야르를 만나서 친구가 되고, 나중에 고갱에게 영향을 받았던 소장파 유파인 나비파의 멤버까지 그들과 함께 하게 됩니다. 이들이 나비파가 되어 세상에 없던 색깔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도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은 신비주의와 상징주의자들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주관적인 감성에 집중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 모리스 드니는 루브르를 다니면서 거장들의 그림을 연구하고 모사하는 중에 특히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들에 끌리게 됩니다.
아직까지 견고하게 고정되지 않는 원근법과 벽화 같은 느낌, 그리고 뭔가 인물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모리스 드니는 자신의 작품에도 이 점을 열심히 반영합니다. 뒤이어 그가 잠시 배웠던 퓌비 드 샤반에게서도 벽화 같은 느낌의 그리고 고풍스럽고 독특한 표현을 배운 모리스 드니의 작품들에서 장식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소위 ‘뮤즈들’ 뒤에 보이는 나무들은 원근법이 적용되어 배치된 것이 아니라 마치 끌어당겨서 같은 선에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평면적인 면이 강조된 셈이지요.
원래 벽화는 공공미술의 성격이 강한데,(퓌비 드 샤반도 그랬습니다) 이 그림은 평면적이고 단순한 표현을 통해서 벽화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개인적입니다.
“사람들은 그림 제일앞에 모델이 모리스 드니의 아내였던 마르뜨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녀는 1893년 모리스 드니와 결혼한 이후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줄곧 화가의 뮤즈였었다. 심지어 이 그림에서 마르뜨는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과 옆모습으로 두 차례 그려진 것이라고 나중에 화가가 남긴 글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 배경은 그가 평생을 살았던 고향 생 제르망 앙레의 숲을 그린 것이다. 수백 살 된 마로니에 나무들은 자연의 모습이라기 보다, 그것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장식 미술처럼 그려졌다.”
오히려 모리스 드니는 원근법이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은 튀는 색깔이 없이 모든 부분이 일정하고 명상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자체가 조용하고 몽환적인 느낌이죠. 땅에 있는 떨어진 낙엽들도 나무의 줄기와 사람들이 그렇듯 곡선을 띠면서 전체의 조화를 맞추고 있고, 어쩌면 태피스트리에 인쇄된 것 같이 나오는 인물들은 19 세기 후반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도 오래된 듯 보입니다.
그림이 참 묘하다, 이런 걸 왜 그렸지? 라는 생각이 들 때, 모리스 드니의 본심은 지금까지 없었던 표현으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는 것을 문득 같이 떠올리면 모리스 드니가 이 그림을 통해서 그의 의도를 실현시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듯 싶네요.
“모리스 드니에게 영감을 주는 그의 뮤즈들은 그래픽 디자인 같은 세계 안에서 가을 색깔이지만, 이 세상 느낌이 아닌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원근감을 사라진 이 신비한 느낌 속에 이 숲이 성스러운 생명의 나무가 있는 곳은 아닐까? 뒤쪽으로 사라지는 뮤즈들을 포함한 10 명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무심한 신비로움이 이 그림의 모든 것이다.”
생명의 나무는 초현실주의자나 상징주의자, 혹은 아르누보 예술가들에게 자주 등장하는, 신비함과 상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였었지요. 그러고 보면 전통적인 뮤즈는 9 명으로 되어 있는데, 모리스 드니는 그것마저 자신의 부인을 두 번 그림으로써 벗어나 있습니다.
지난 여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가을이네요. 가을 숲 속의 느낌을 그림으로나마 잠깐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