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매일 아침 면도를 하는 남자들에게 면도 후 스킨은 공식과도 같다. 클렌징 뒤 스킨, 로션, 에센스로 이어지는 그런 공식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스킨을 바른 순간,
‘아!’.
예전 날 면도기를 쓰던 시절, 어느날 정말 면도가 잘 된 날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짜릿한 따가움을 전기면도기를 사용한 지 10여년 만에 다시 느꼈다.
2년 여를 쓰던 면도기가 이제는 힘이 떨어져 감을 느낄 즈음, 면도기를 사야겠다는 말을 하자 아내는 잔소리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좋은 걸 사던지, 왜 자꾸 또 산다는거야.”
누구는 비싸고 좋은 것을 사기 싫어했단 말인가. 면도기가 사실 다 거기서 거기고 10만원 대의 보급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던 나다. 하지만 이 날은 ‘욱’했다.
이미 통보는 했으니 곧 바로 검색을 시작했다. 마침 지난 한 달새 두 유명 브랜드가 최고급 모델을 경쟁적으로 내 놓은 터였다.
전자제품을 사기 전 대부분의 남자들이 하는 ‘광고 속 설명서 정독하기’를 시작했다. 그 중 브라운이 내놓은 최고급 모델 ‘New 시리즈 9’, 정확히는 9296CC 모델에 호감이 갔다.
여느 전기면도기의 흔한 날의 모양이 아닌, 첨단 전자제품과 같은 이종 날이 여러개 겹쳐 있는, 뭔가 엄청난 연구를 하고 만들어 낸 것 같은 그 날 모양에 눈길이 갔던 것. 심지어 ‘Wet+Dry’ 제품으로 건식, 습식 면도 둘다 가능하다. 샤워를 하면서도 면도가 가능하다는 것. 물에 빠뜨려도 상관이 없단다. 더 이상 면도기에 물이 들어갈까봐 조심조심 다룰 필요도 없다. 바로 결제.
그렇게 주문을 하고 이틀 뒤, 도착한 박스는 꽤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본체와 세척&충전 스테이션 뿐 아니라 별도의 충전기와 가죽 소재 여행 파우치, 세척액, 세척용 솔, 설명서 등 많이도 들어있다.
먼저 본체는 금색빛이 감도는 것이 ‘아 제대로 좋은 것을 샀구나’라는 만족감을 줬다. 설명서에는 골든 티타늄 코팅 트리머를 사용해 내구성과 견고함은 물론 고급스러운 이미지까지 동시에 갖췄다고 써있다.
자세한 설명은 주문할 때 이미 정독을 끝냈다. 바로 화장실 선반 한 켠에 세척용 스테이션을 놓고 면도기를 꽃아 넣었다. 멋스럽다. 늘 보는 화장실에 뭔가 고급 제품이 자리잡은 기분.
야심차게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아차!’ 충전이 안 돼있다.
사실 충전에는 고작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돼있지만 바쁜 아침, 오늘은 못 쓴다. 전원을 꼽아 놓은 뒤 일단 출근. 하루가 빠르게 갔다. 완충을 뜻하는 본체의 파란불이 가득하다. 한번 완충을 하면 50분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출장이 많은 나에게 1주일은 충전기가 없이 떠나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나에게는 고급스런 가죽 파우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오늘 아침, 전원을 켰다. 비교적 작동 소리가 크다. 원래 다른 면도기도 이런 소리가 났었는지, 이 모델이 조금 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강력한 힘의 결과리라.
사용감은 편했다. 헤드가 이리저리 부드럽게 잘도 움직인다. 만족스러운 면도를 마친 뒤 스킨, 그리고 ‘아!’.
또 하나 만족스러운 점은 자동 세척기능이다. 버튼 하나만 눌러주면 세척뒤 윤활, 건조까지 자동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통해 면도날의 세균 대부분을 제거해준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아침에 꽂아 놓고 나가면 내일 아침 깨끗한 면도기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다만 이 기능의 계속 사용은 신중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한 달 치라는 세척액 한통이 동봉돼 있는데 결국 다시 별도로 사야한다는 얘기다. 빠르게 일 주일에 한 번 정도만 세척을 하기로 스스로와 절충을 마친다.
10여년간 못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금 안겨 준 브라운 시리즈9. 아, 정말 몰랐다. 면도기의 신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