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트레일 러닝 개척자’ 유지성 “대자연과 몸뚱이 하나로 맞짱…내가 가는 곳이 코스”

입력 : 2019.01.06 14:11 수정 : 2019.01.0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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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성 대표가 2014년 요르단 레이스에 참가해 사막을 달리고 있다. runxrun 제공

유지성 대표가 2014년 요르단 레이스에 참가해 사막을 달리고 있다. runxrun 제공

“뜨거운 사막이든, 눈 덮인 산이든, 내가 가는 곳이 코스요, 내가 가는 게 길이다.”

유지성 아웃코어스포츠코리아 대표(48)는 한국 첫 번째 오지 레이서, 한국 트레일 러닝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섭씨 58도 사하라 사막도 뛰었고 영하 40도 캐나다 설원도 내달렸다. 2002년부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오지를 내달린 게 30차례 안팎이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게 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 대표는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오지에서 살아남으려면 물을 효과적으로 마셔야한다”며 “우리가 사는 답답한 도시가 더 심한 오지인지 모른다. 이곳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트레일 러닝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2015년 ‘코리아 50K’를 시작으로 트레일 러닝 불모지 한국에 밀알을 뿌리고 있다. 지난해 유 대표는 다섯 차례 크고 작은 행사를 열었다. 유 대표는 “2018년 한국에서 트레일 러닝 대회가 50차례 정도 열렸다”며 “트레일 러닝은 앞으로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끄는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 대표는 지난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더욱 많은 대회들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며 용품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유지성 대표가 2018년 일본 나가노 대회에 참가해 설원을 달린 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runxrun 제공

유지성 대표가 2018년 일본 나가노 대회에 참가해 설원을 달린 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runxrun 제공

-트레일 러닝, 무엇인가.

“산이든 사막이든 포장된 길이든 아니든, 길이 정해지지 않은 곳에서 나만의 길을 내면서 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자연속에서 몸뚱이 하나로 ‘맞짱’을 뜬다고 할까. 등산은 너무 느리고 꼭 정상으로 가려 한다. 마라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트레일 러닝은 정상까지 안 가도, 경치가 좋지 않아도 된다. 길이 없는 곳이라면 자기가 길을 만들어 뛰면 된다. 스피드를 느끼면서 내 한계에 도전하는 것, 그걸 계절마다 다른 자연 속에서 하는 것, 그게 매력이다.”

-트레일 러닝을 시작한 계기는.

“건축 설계사로 리비아에서 근무할 때 TV를 통해 사하라 사막 레이스를 봤다. 그 때는 그냥 흘려 봤다. 나는 운동도 싫어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여행가는 거 정도를 그려왔다. 1999년 일이 싫어져서 사표를 내고 국내로 돌아왔는데 사하라를 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렵지 않았나.

“당시 체중은 90㎏이었다. 사람들에게 사하라를 뛴다고 하니까 ‘돼지가 무슨 오지 달리기냐, 가면 죽는다’고 놀려댔다. 국내 정보가 너무 없었다. 외국 단체에 연락해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대단하다. 시작이 성공한 것’이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장비는 이곳저곳 뒤지며 어렵게 구했다.”

-훈련은 어떻게 했나.

“대회는 2002년 4월이었다. 2001년 가을부터 준비했다. 평소 뛰는 걸 싫어했지만 내구력이 강하고 잘 다치지 않는 편이라 해볼 만 했다. 동네 운동장을 뛰면서 바퀴수를 늘려갔다. 10㎞를 주파한 뒤에는 10㎞ 단위로 늘렸다. 50㎞까지 뛰었다. 배낭도 2㎏정도로 시작해 5㎏까지 짊어졌다. 체중은 74㎏로 줄었다.”

-사하라 대회는 어떻게 진행됐나.

“일주일 동안 250㎞를 뛰어야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다들 놀랐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일본에 속한 작은 곳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출발선에 서니 막막했다. 다른 사람들이 달리는 스피드도 대단했다. 나는 초보니까 천천히 뛰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보다 느리게 뛰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았다.”

-위기도 있었을 것 같다.

“양말 신는 법도 잘 몰라 첫날부터 물집이 잡혔다. 중반에는 9개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생겨 터뜨리면서 달렸다. 발가락은 그나마 괜찮았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6일째 되니까 진통제도 듣지 않았다. 그 때 양말을 벗었는데 살점이 함께 떨어져나가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저녁노을이 들어왔다. 너무 아름다웠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데 입은 웃고 있었다. 그 때부터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마지막 7일째는 오히려 아프지 않았다.”

-골인했을 때 느낌은 어땠나.

“너무 기뻤다. 레이스 전에 나를 무시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나를 축하해줬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들도 친구가 됐다. 원초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오지에서 만나 정이 더 끈끈한 것 같다. 지금도 그들과 연락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가 2011년 호주에서 열린 아웃백 560㎞에 참가하고 있다. Canal Adventure 제공

유지성 대표가 2011년 호주에서 열린 아웃백 560㎞에 참가하고 있다. Canal Adventure 제공

-한국에서 트레일 러닝을 어떻게 시작했나.

“한국에 온 뒤 이렇게 좋은 걸 한국 사람들은 왜 모를까 생각했다. 내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아마추어 눈높이에서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다. 1등 말고 나머지 99명을 잡고 싶었다. 마라톤 여행사에 들어가서 1년 동안 근무했다. 아웃도어 용품회사에서도 일하면서 용품 시장과 해외 업무를 이해했다. 여러 마라톤 대회를 지켜보면서 트레일 러닝 시장이 열리리라 확신했다.”

-첫 대회는 언제 열었나.

“2004년 여름이다. 밤에 한강변 46㎞를 달리는 레이스였다. 당시 태풍이 왔지만 출발은 했다. 500명 정도가 참가해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됐다. 그 때 트레일 러닝 시장이 없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0년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을 시작했다. 토크쇼, 캠프 등을 통해 트레일 러닝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경기 동두천에서 시범대회를 열었고 이듬해 본 대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열리고 있는 ‘코리아 50K’가 그 대회다. 처음에 600명인 참가인원이 지금은 1500명이 넘었다. 그 중 장거리 코스는 30%가 외국인이었다. 코리아 50K는 아시아 톱 레벨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대회라고 자부한다.”

-지난해 대회를 얼마나 치렀나.

“코리아 50K가 가장 큰 행사다. 나머지 4개 행사는 강원도 인제에서 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 속을 달리는 행사였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개척하다보니 어려움도 많았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해에는 코리아 50K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인제와 서울에서 3~5개 대회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가 2017년 코리아 50K 대회장에서 코스 등 대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코리아 50K 제공,

유지성 대표가 2017년 코리아 50K 대회장에서 코스 등 대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코리아 50K 제공,

-뛰는 거리가 길어서 일반인이 도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코리아 50K를 예로 들자. 12,13시간 동안 50㎞를 주파하면 된다. 일반인도 6개월에서 1년 준비하면 가능하다. 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비교한다면 시속 4,5㎞로 30㎞는 갈 수 있어야 한다. 30㎞ 정도는 뛰어야 신체 한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2주에 한 번꼴로 산길 10, 20㎞를 걷자. 도로는 일주일에 30㎞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한 번에 10㎞씩, 주 3회는 달리자. 이렇게 3개월 동안 하면 몸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6개월이면 40㎞ 트레일 러닝 대회에 나갈 수 있다. 1등이 아니라 시간 안에 들어오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할만하다.”

-현재 국내 트레일 러닝 인구는 얼마나 되나.

“1만 명 정도다. 평균 연령이 30대다. 엘리트만 하는 게 아니라 대중적인 종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라톤, 철인 3종 대회는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앞으로 트레일 러닝이 대세가 될 것이다. 트레일 러닝은 극한의 자연에서 자기 한계에 도전하나보니 기능성이 뛰어난 장비를 갖춰야한다. 기능성 신발, 방수 발수가 잘 되는 옷, 발목과 무릎 보호 테이핑, 스틱, 은박지 담요, 배낭 등을 사면 최소 100만원은 든다. 국내 업체는 없고 거의 모두 외국 업체들 제품이다. 어쨌든 복장과 장비를 갖추면 소위 간지가 난다.”

-한국에서 꼭 대회를 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서울이다. 서울 둘레길은 160㎞에 이른다. 내가 40여개 국을 다녀봤지만 둘레에 이렇게 긴 길이 있는 대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서울은 국내외 접근성이 모두 좋고 숙박시설도 넉넉하기 때문에 운영이 편하다. 160㎞ 정도면 40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서울 둘레길 대회는 내외국인 몇 천 명이 일주일 동안 즐기는 축제가 될 수 있다.”

■ 트레일러닝은?

트레일러닝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기 때문에 국제기구들도 젊다. 미국트레일러닝협회는 1996년, 영국협회는 1991년 각각 설립됐다.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는 2013년 만들어졌고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2015년 승인받았다. 대회 거리는 5㎞~100마일(161㎞)까지 다양하다. 여러 날 진행되는 대회인 경우에는 200㎞ 이상 코스도 있다. 코스별로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대회별 기록 비교는 의미가 없다. 물과 의약품을 제공하는 보급소는 5㎞ 또는 10㎞마다 설치된다. 대부분 대회는 하루짜리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 대회에서는 장비, 숙소 등 체계적인 보급이 이뤄진다. 물과 의료치료 이외 다른 보급이 없는, 더 힘든 대회도 있다. 참가자 수는 좁은 길 등으로 인해 제한된다. 울트라 트레일 마운트 후지(일본·161㎞),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러닝(남아공·250㎞) 등이 세계적인 대회들이며 북미에서는 주로 100마일 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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