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위아더나잇(We are the night)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가 지나갔다. 운전을 하고 있는 한 밤의 도로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각종 네온사인에 덧칠된 상태로 하염없이 미지의 공간으로 흘러나가는 밤하늘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다. 밴드 음악이라고 하면 반드시 리듬과 리듬을 쪼개는 강한 비트가 있고, 경쾌하거나 귀를 찢을 듯한 기타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이들은 가볍게 딛고 올라 듣는 이들의 귓가에 부유한다.
밴드 로켓다이어리로 활동하다 군 복무 과정을 겪은 이들은 전역을 한 후 ‘위아더나잇’으로 다시 모였다. 지금은 국내 인디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스팝(전자음악의 한 종류)의 태동을 예감하고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입지를 다졌다. 2013년 데뷔 앨범 <위 아 더 나잇>을 내고, 그 이후로 전자음악에 기반하면서 나른하거나 몽롱하거나 경쾌하거나 우울한 다양한 색채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이 2017년 11월에 나온 싱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후 1년 반 만에 다섯 번째 정규앨범 <아, 이 어지러움>을 냈다.
“저희가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저희가 느꼈던 ‘불안’이었어요. 저희가 지금 정말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죠. ‘잘 모르겠다’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직업을 어떻게 택하거나 유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식으로요. 이런 감정들을 그저 힘을 내라는 등의 위로의 말로 돌려주는 것보다는 그 감정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함병선)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으로 명명된 ‘카메라를 챙겨’와 ‘벙커(Bunker)’ 그리고 ‘스노클링’ ‘에스에프(SF)’ ‘악몽이라도’ ‘거짓말’ ‘멀미’ 등의 곡이 수록됐다. 음악적으로도 전자음악 특유의 기법으로 음을 당기거나 누르면서 퍼지게 만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냈다. 거기에 보컬을 맡은 함병선 특유의 비음이 섞인 창법 그리고 나른한 분위기를 내는 발성 등도 앨범의 분위기를 둘러싸고 있다.
“이전에 냈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의 연장선상으로 보시면 좋아요. 그 앨범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음악이 많이 담겨있어요. 저희 음악을 들으셨던 분들 중에서는 그전보다 더 어두워졌다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의 곡들도 가감없이 넣어보자고 생각했고, 연주곡도 넣으면서 앨범으로서 할 수 있는 곡들을 다 하고 싶었어요.”(함병선)
결국 이들은 앨범을 통해 과연 대중적인 것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 것이나 진배없다. 특히 요즘 인디씬에서도 대세로 불리는 ‘신스팝’의 장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면서 분명히 대중의 귀에 낯설게 들리는 새로운 느낌으로 재창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카메라를 챙겨’는 꿈속에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간 상황을 설정하면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벙커’는 사랑하는 사람 둘 만의 밀폐된 공간을 상정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노래를 표현하고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나 <이프 온리>를 보다가 떠올랐다.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잘 하고, 잘 아는 이야기의 감정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실제로 저희가 솔직하게 다가갈 때 대중의 반응이 좋았던 적이 많았거든요. 솔직하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런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많은 20대가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저희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보다 그 불안감이 삶에 에너지를 주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한다고 생각해요.”(함병선)
보컬에 함병선, 기타 정원중, 베이스 황성수, 신디사이저 함필립, 드럼 김보람으로 구성된 위아더나잇은 ‘잔나비’ 등 최근 인기 밴드들이 그렇듯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김보람을 제외한 네 명은 일산동고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쿨 밴드로 활동하다 3학년 때 ‘로켓다이어리’라는 펑크밴드로 활동했고 이후 드럼의 위치에 김보람이 합류했다.
이들은 각자 모두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터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어서 곡의 녹음과 믹싱을 황성수가 담당하고, 뮤직 비디오는 정원중이 만든다. 그리고 멤버 전원이 발표곡들을 리믹스해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2017년 발표한 싱글 <깊은 우리 젊은 날>이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소개되면서 점점 ‘나만 아는 밴드’의 입지를 벗어나고 있다. 음악적 완성도를 대중적 인기보다는 앞서 생각하고 있는 그들은 오는 23일 서울 서교동 카페 살롱문보우, 29일과 30일 서교동 더 스텀프에서 공연을 하는 등 공연에도 매진할 생각이다.
“처음 1집을 만들 때 제가 생각했던 ‘위아더나잇’의 ‘밤’은 음주, 클럽 등으로 대표되는 좀 화려한 밤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밤’은 제게 ‘혼자만의 밤’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점점 감정이 그렇게 변하는 것 같고, 다음 날에 아침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연속적인 시간 위에서의 밤이 된 것 같아요.”(정원중)
“확실히 1집에는 화려하고 밝은 면을 좋아해서 사운드도 신나게, 구성도 크게크게 채우는 걸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감정선들이 다들 낮아지는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저희의 ‘밤’은 혼자 있는 새벽의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함필립)
혼자 있는 고요한 밤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만들었기에 듣는 이에게도 고요한 밤 어딘가의 이미지를 주는 듯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청각은 물론이거니와 머릿속에서 퍼져나가는 무한한 공간감의 새로운 공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피로한 시대, 휴식이 필요한 시대. 듣는 사람을 결국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의 필요성이 ‘위아더나잇’ 존재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