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혜진의 얼굴들. 위부터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영화 ‘비스트’ ‘뺑반’ 한 장면. 사진제공| tvN, NEW, 쇼박스
배우 전혜진의 ‘얼굴’은 배우로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디에나 있을 법하고, 가끔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바탕이 되니 말이다.
최근 전혜진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케이블채널 tvN 수목극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차갑고 이성적인 송가경 역을 소화하더니,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에선 하이에나 같은 마약브로커 춘배로 분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캐릭터라 자칫 연기력이 삐끗거리면 괴리감이 느껴질 법한데, 두 인물 모두 진짜 얼굴인 것마냥 그에게 찰싹 달라 붙어있다.
<검블유> 속 전혜진은 그 누구보다도 속을 알 수 없는 ‘송가경’을 아주 담백하게 요리한다. 송가경은 포털사이트 유니콘의 대표이사지만 기업의 오너인 시어머니의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여야 하는 인물로, 시댁의 개처럼 행동해야하는 운명과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이 종종 내면에서 충돌한다. 이런 내면적 비틀림은 연기하기에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 그러나 전혜진은 목소리에 크게 힘을 주거나 과장된 몸짓이 아닌, 오로지 눈빛과 미세한 표정 연기로 ‘송가경’의 고뇌를 TV 앞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반면 <비스트> ‘춘배’는 그가 감춰둔 폭발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캐릭터다. ‘마약에 취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여성 마약 브로커’란 인물 설명을 형상화하기 까다로울 것 같지만, 그는 영화 등장 3초 만에 관객에게 제대로 인지시킨다. 온몸을 가득채운 문신과 파격적인 스모키 화장 등 외형적인 변신은 물론 기본적으로 갖춰진 탁월한 연기력이 ‘춘배’를 살아 숨쉬게 한다. 주연인 이성민, 유재명까지 압도하는 강렬한 존재감이다.
이뿐만 아니다. 올초 개봉한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을 살펴보면 그의 연기적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진다. 그는 뺑소니 전담반 우계장 역을 맡아 만삭의 몸으로 팀을 아우르는 위트와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에 설득력을 더한다. 좌천된 내사과 에이스 ‘은시연’(공효진)을 휘어잡으면서도 정작 일어설 땐 무거운 배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어디엔가 진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처럼 전혜진은 어떤 가상의 인물이라도 실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팔색조’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할 정도다. 지금 그를 만든 건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1998년 영화 <죽이는 이야기>로 데뷔한 뒤 한눈 팔지 않고 22년간 한길만 쭉 걸어온 우직함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결혼과 육아로 활동이 주춤해 ‘이선균의 아내’로만 불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도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을 순 없었다. 크고 작은 역을 가리지 않으며 경험치를 높인 그는 영화 <사도>로 2015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타면서부터 상승세를 탔다. 이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시인의 사랑> 드라마 <미스티> 등에 출연하며 ‘전혜진’이란 이름 석자에 대한 대중의 신뢰감을 높였다. 지금 눈부신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 ‘믿고 보는 배우’는 당분간 쉼없이 활동할 예정이다. <비스트>와 <검블유> 이후 행보도 이미 정해졌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임박해 사건 해결에 나서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영화 <백두산>에서 폭발을 막기 위해 나서는 남측 정부 관계자로 분해 이전과는 또 다른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전망이다. 그의 안에 얼마나 더 많은 얼굴들이 숨어있을지, 기대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