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제가 요즘 대세라고요? 에이, 시대를 잘 타고 났죠. 조연으로 옆에서 주인공을 응원해주니까 보는 사람들도 같이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주인공이 대세인 게 아니라 옆에서 서포트를 하는 롤 자체도 힘을 가질 수 있는 역과 나이가 맞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 ‘대세’란 타이틀은 제 실력보다는 환경이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역시 ‘대세’는 대답도 여유로웠다. 배우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이후 활짝 만개한 자신의 ‘봄날’을 마음껏 즐기는 표정이었다.
“어머, 그런데 제가 ‘대세’라고 쓱 인정해버렸네요. 하하. 어쨌든 저와 같은 배경을 지닌 배우들이 더 많이 나와서 자율경쟁체제가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돼요. 그럼 다들 미친 듯이 연기할 것 아녜요? 식상한 맛을 깨는 배우들이 엄청 나올 거고, 그들을 기용한 진취적인 작품들도 많이 제작되겠죠?”
이정은은 최근 ‘스포츠경향’에 <마더> <옥자> 이후 <기생충>으로 다신 만난 봉준호 감독과 끈끈한 의리부터 여러 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 뒤늦게 주목받는 소감 등을 유머러스하게 털어놨다.
![[인터뷰] 이정은 “요즘 대세요? 시대를 잘 타고 났죠”](https://images.khan.co.kr/article/2019/06/24/l_2019062402001004800208412.jpg)
■“봉준호 감독과 동갑내기, 묘한 공감대 있어”
봉준호 감독과는 이번이 세번째 작품이다. 몇 년에 한 편 내놓을까 말까한 봉 감독의 제작 시기를 비춰볼 때 인연을 자주 맺은 셈이다.
“맨 처음엔 봉 감독이 저랑 동갑내기라 출연 제안을 자주 하나 싶었어요. 하하. 사실 50살이 넘어가면 감독과 제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하나 있거든요. 함께 작품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몇 개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나이라는 거죠. 그래서 감독들이 ‘저랑 재밌는 것 한번 해볼래요?’라는 말을 하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봉 감독도 제게 그랬어요. 신나고 재밌게 이상한 작품을 해봅시다!”
봉 감독은 이번에도 배우들에게 열린 환경을 제공했단다. 그걸 다른 말로 ‘늘 모호하게 임무를 주는 감독’이라 표현했다.
“‘문광’이 얼굴에 상처를 가득 안고 다시 돌아올 때,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됐을까 궁금했어요. 봉 감독에게 물어보니 ‘사채업자에게 맞았을 수도 있고, 술 마시다가 시비에 걸려 맞았을 수도 있겠죠?’라며 여지를 열어두더라고요. 그저 디렉션을 준 건 ‘얼굴이 부어있다’ 정도였어요. 배우가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거죠. 그는 <마더>를 찍을 때도 늘 이랬어요.”
공들여 찍은 작품이지만 혹시나 스포일러가 될까봐 배우들의 무대인사 행사에선 남편 역의 박명훈과 함께 빠졌다. 서운했을 법도 했다.
“언론에 노출되지 못할 땐 박명훈과 모여서 술도 한잔씩 했어요. 영화 속 운명이 현실에서도 진행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눴죠. 하하. 박명훈과는 뮤지컬을 함께해 친분이 있었는데, 무대인사도 같이 못하니 더 애틋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문광’ 역이 그 어느 작품보다도 존재감 강한 캐릭터 아니냐고 하니 그는 그게 더 부담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제가 해야할 작품들이 걱정되더라고요. 매번 이렇게 눈에 띄는 역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좋은 작품과 감독을 만나고 싶다는 부담이 커지더라고요.”
![[인터뷰] 이정은 “요즘 대세요? 시대를 잘 타고 났죠”](https://images.khan.co.kr/article/2019/06/24/l_2019062402001004800208413.jpg)
■“연출부 출신 배우, 자랑스러워요”
그는 작품 전체를 영리하게 읽는 눈을 지녔다. 연출부 출신 배우만의 강점이었다.
“전 연출부를 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연출부 경험이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감독의 아이디어를 응원해주고, 디렉션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드는 타입이라 다른 감독들도 저와 작업하기 편할 거예요.”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한 지 28년 째, 느즈막히 주목받았지만 결코 서글프진 않다고 입꼬리를 올리는 그다.
“제 앞의 다른 배우들도 모두 거쳐간 과정이라 생각해요. 후배들하고도 가끔 그런 얘길 하거든요. 연기를 재밌게 하는 것 만큼이나, 좋은 작품과 감독을 만나는 운도 중요하다고요. 고 김영애 선배가 제게 ‘작품을 많이 해야 경험이 많아지고, 그 속에서 네가 어떤 위치를 찾아가야 하는지 가이드가 될 거다’고 조언해준 적이 있는데, 지금이 그 과정인 것 같아요.”
후배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도 비슷한 결의 말을 건넨다고.
“언제 빛을 볼 수 있느냐고 묻는 후배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도 지나고 보니 그저 연기가 좋아서 했던 게 지금까지 온 원동력이었던 것 같어요. 연기할 때 가장 살아있는 기분이 드니까요.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욕심을 내면 힘들고 괴로워질 뿐이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말을 많이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