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서른일곱 번째 책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 지음/ 더숲)다.
“나날의 삶 속에서 표식을 발견하는 것이 영성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표식들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해답에 이른다. 그리고 그 표식들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재확인해 준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은 그 유명한 류시화, 그의 신작 산문집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 책에서도 저자는 어떤 포물선으로도 과녁의 한복판에 꽂히는 신궁과도 같은 문장을 펼쳐 보인다. “영혼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이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영혼임을 아는 것”이라는 문장도 그러하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내적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나에게 화살처럼 꽂힌다.
‘나날의 삶 속에서 표식을 발견하는 것이 영성이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떠오른 영화가 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레이디 인 더 워터’다. 악평이 난무했건 말건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류시화의 책을 읽을 때처럼 나는 그 영화에서도 ‘표식’에 주목했다.
어느 아파트 관리인이 아파트 수영장에 숨어 있는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 여자는 동화 속 요정이다. 그녀는 자신이 블루월드에 돌아가지 못하면 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정의 예견대로 곧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떤다. 아파트 주민들은 힘을 합쳐 그 요정을 안전하게 그녀의 세계로 보내기로 한다. 이를 위해 비밀의 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 그 비밀의 문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매우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비밀의 문을 찾기 위해 주민들은 표식을 쫓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평범한 아파트의 주민들은 각자 수호자, 치유자, 상징해독가, 길드 등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처 알지 못하던 ‘나라는 존재의 역할’을 찾는 것.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나에게 모종의 깨달음을 준 영화였다. 내 일상 속에도 분명히 표식이 있을 것이고, 그 표식을 따라가는 것이 내 영혼을 위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인생은 아무렇게나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방향을 잡고, 걸어야만 한다.
저자는 시인 ‘갈리브’에 대한 표식이 앞에 나타나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신호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표식을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라고 부르는데, 모두에게 공개돼 있으나 아직 그것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비밀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비밀을 보는 눈은 나 같은 화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화가들은 모두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숨겨진 공개된 비밀, 그것을 가시화하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몇 번이고 바꾸고 고쳐도 내 마음을 끌지 못하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아주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인데, 몇 번을 바꿔 그렸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가, 동물이 그려졌다가, 추상이 됐다가, 전부 한 가지 색으로 덮어지기도 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비밀번호 같은 캔버스. 결국 나는 붓 가는 대로 그린 다음, 표식을 넣었다.
얼핏 보면 몇 그루의 나무가 그려진 평범한 풍경이다. 공개된 것은 나무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만의 표식이 있다. 지독하게 어려운 숨은그림찾기처럼 아무나 찾을 수는 없는 그런 표식이다. 물론 의도한 숨김은 아니었다. 다만 내 영혼이 이끄는 대로 그리다 보니 나만의 표식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언젠가 이 표식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 영혼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럼 그에게 이 그림을 헌정하려고 한다. 제목도 그때 정할 것이다. 그의 이름을 넣어서 말이다.
“물방울의 기쁨은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 / 고통은 그 한계를 넘을 때 스스로 치료제가 되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들어 있는 갈리브의 시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세상의 비밀을 보려면, 시인 만큼의 고통이 있어야 하는 걸까? ‘고통은 치료제가 된다’는 기막힌 비밀을 깨닫게 해준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내 인생의 여정에 또 하나의 표식이 됐다. 이정표를 만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후의 방향을 결정해야만 한다. 결정의 순간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방향이 옳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