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아침드라마였다면? ‘있다없다’ 장면들

입력 : 2020.04.16 07:00 수정 : 2020.04.16 07:01
‘절대선’이 아닌 입체적인 주인공, 지선우을 내세워 풍부한 감정선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는 금토극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절대선’이 아닌 입체적인 주인공, 지선우을 내세워 풍부한 감정선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는 금토극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부부의 세계’가 스릴러 못지 않은 전개로 시청자를 흔들고 있다.

남편 외도로 인한 가정의 붕괴, 그리고 복수 등 JTBC 금토극 ‘부부의 세계’는 아침 통속극 못지 않은 막장 전개를 펼치고 있으나 긴장감 넘치는 연출, 고급스런 색감, 공감을 주는 배우의 연기, 쫄깃한 극적 구성이 더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는 흔하디 흔한 소재의 드라마가 ‘변주의 미학’을 통해 어떻게 웰메이드작으로 거듭나는 지를 착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약 ‘부부의 세계’가 아침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아침드라마 보조작가로 경력을 가진 ㄱ작가가 드라마 속 몇 장면을 들여다봤다.

등장인물 설정상 화려한 파티로 생일, 집들이를 연출한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등장인물 설정상 화려한 파티로 생일, 집들이를 연출한 ‘부부의 세계’ 사진 JTBC

#파티신, 그런 거 없다

‘부부의 세계’는 화려하게 꾸며진 이태오(박해준)의 정원 생일 파티 신으로 극 초반을 시작했다. 저예산 가성비 촬영을 고수하는 아침드라마에서 야외 촬영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아침드라마 속 장면이 대부분 룸에서 룸, 세트에서 세트로 이어지는 이유다. 야외신 마저도 PPL을 받은 커피숍으로 한정한다.

아침드라마의 평균 예산은 한 회(35분 분량)당 3500만 원이다. ‘부부의 세계’ 같은 미니시리즈는 한 회(65분)당 최소 4억에서 5억 원이 책정된다. 결국 회당 8배가 넘는 제작비를 쓰는 만큼 세련되고 고급스런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부부의 세계’ 속 인물들은 상류층이나 전문직 직군들이 많은 만큼 유독 파티신이 등장한다. 6회에서는 ‘고산’으로 다시 돌아온 이태오와 여다경(한소희)는 초대장을 만들고 집들이 파티를 연다. 아침드라마 버전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들의 이사 소식은 주변 인물들의 수다로 밝혀지고 지선우(김희애)가 그것을 엿들으며 충격을 받는 장면으로 갈음될 것이다.

“뭐라고? 이태오가 성공해서 다시 이 동네로 이사를 온다고? 부셔버릴꺼야!”

시청자들에게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한 ‘부부의 세계’ 지선우의 여다경 진료신. 사진 JTBC

시청자들에게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한 ‘부부의 세계’ 지선우의 여다경 진료신. 사진 JTBC

#진료신, 긴장감 생략된 난투극

혼외 임신한 여다경은 지선우를 찾아가 진료를 청한다.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두 사람은 ‘언중유골’ 대사를 주고 받으며 긴장감을 높인다. 아침드라마라면 어땠을까?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표정 연기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채혈 장면 또한 생략한다.

여다경은 곧장 지선우에게 “껍데기만 붙잡고 사는 남편을 이제 놔줘라. 나 임신했다”라며 선방을 날릴 것이고, 지선우는 감정이 폭발해 뺨을 때린다. 이 장면에서 ‘김치 싸대기’ 같은 독특한 도구를 이용한 기발하고 자극적인 ‘싸대기’ 방식이 등장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은 두 여배우의 머리채 잡기 열연일 것이며 이는 아침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단히 고정시켰을 것이다.

#불륜 커플, 우아할리 없다

아침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명징한 권선징악 스토리. ‘불륜 커플’ 이태오와 여다경의 스토리에서는 우아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가정을 버린 두 사람은 단칸방 세트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 남은 돈마저 떨어지면서 커플 사이에는 갈등이 시작될 것이고 이태오는 영화 제작을 접고 막노동이라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처절한 내용이 전개된다. 만약 지역 유지인 여다경의 집안에서 그를 도와줬더라도 그가 영화로 성공할 일은 없다. 제작하는 족족 흥행참패하며 끝까지 ‘미운 놈’ 신세를 벗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침드라마 버전의 ‘사이다’다.

‘부부의 세계’가 아침드라마였다면 지선우와 김윤기의 해피엔딩으로 극은 마무리됐을 것이다. 실제 ‘부부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사진 JTBC

‘부부의 세계’가 아침드라마였다면 지선우와 김윤기의 해피엔딩으로 극은 마무리됐을 것이다. 실제 ‘부부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사진 JTBC

#지선우, 연하의 훈남 의사와 해피엔딩

가정을 지키려다 실패한 지선우, ‘부부의 세계’ 속 현실적인 아들과 달리 착하기만한 아이와 함께 꿋꿋하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여기서 아침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전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병원 동료이자 훈남 의사 김윤기(이무생)다. 그는 지선우의 완벽한 해피엔딩을 이끌 캐릭터다. 끝없는 인류애를 지닌 김윤기는 홀로 남은 지선우를 향한 애정과 지지로 비로소 마음을 얻어낼 것이다. 특유의 포용력으로 사춘기 지선우의 아들에게까지 호감을 얻는다. 아침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지선우와 김윤기가 새출발하며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ㄱ작가는 아침드라마의 기본 조건으로 ‘청각적 드라마’라고 언급했다. 그는 “아침드라마는 시청자가 식사와 청소 등 집안 소일거리를 하면서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인물들의 말로 짐작할 수 있게 써야 한다. 감정신보다는 명료한 대사가 요구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부부의 세계’는 자녀들이 잠든 고요한 밤 극에 몰입하고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재미를 느끼는 미니시리즈다. 절대선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선우의 풍부한 감정신과 눈빛 연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입체적 캐릭터는 아침드라마와 같은 듯 사뭇 다른 ‘부부의 세계’만의 흥행포인트가 된다. 사이다량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어도 대중들이 이 드라마의 결말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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