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준,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
배우 하준에게 ‘가족’은 원동력이다. 배우의 길을 지치지 않고 계속 걸어가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최근에 조깅을 시작했는데요. 뛰다보면 너무 힘들어서 안 뛰고 싶어질 때가 와요. 그럴 때 다시 뛰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에요. 서울예대 졸업 이후 ‘아르바이트 인생’이 다시 시작됐는데, 생계와 연기 사이에서 수많은 고통을 느끼곤 했죠. 힘들다고 집에 전화할 순 없는 노릇이고, 당장 다음 달 집세는 해결도 못하겠고요. 지금이야 그래도 가족에게 한끼 맛있는 음식 사줄 수 있을 정도는 됐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이 노심초사하게 하는 것에 제가 죄인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그러면서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준은 최근 첫 주연작 ‘잔칫날’(감독 김록경) 개봉의 기쁨을 맛봤다. 비록 코로나19 속 어렵게 관객과 만나고는 있지만, 저예산영화임에도 누적관객수 1만명을 돌파하며 완성도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서 영화 작업기와 배우로서 소신 등을 들어봤다.
영화 ‘잔칫날’ 속 소주연(왼쪽)과 하준.
■“BIFAN 남우주연상 수상, 상복 없는 터라 얼떨떨”
그는 극 중 아버지 부고에도 장례 비용이 없어 팔순잔치 행사 MC에 자원하는 경만 역을 맡았다. 실컷 울어야 하는 날 웃음을 선사해야하는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 역시 ‘경만’의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연기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극장이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도 일했고, 게임 시연, 대학로 극장 무대 셋업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죠. 그러면서 느낀 게 정당한 일당을 받고자 말을 꺼낼 때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된다는 거예요. 죄송한 게 아닌데 말이죠. 그런 억눌린 감정을 경만에게 투영하려고 했어요.”
이 작품으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 부문 남우주연상을 탔다.
“살면서 상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어요. 훈련소에서 딱 한 번 받아본 게 전부라서 상이라는 게 얼떨떨하더라고요. 집에 잘 모셔둔 상패를 볼때마다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감사하고 좋은데, 약간 부담스럽고 멋쩍기도 하네요. 하지만 표식 있는 상패보다 더 상 받았다는 느낌이 들 땐 제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감동이었다’는 반응을 보일 때예요. 그게 제겐 가장 큰 상이죠.”
또 하나 얻은 건 친동생처럼 친해진 상대역 ‘소주연’이다. 극에서 남매로 나온 덕분에 실제로도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정말 호흡이 좋았어요. 지금도 살가운 남매처럼 지내고 있고요. 준비 기간이 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친한 남매가 된 게 신기할 정도예요. 제가 오빠처럼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소주연도 절 편하게 생각해줬죠. 또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그 친구는 정말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범죄도시’ 이후 3년, 시야가 좀 넓어졌어요”
그가 이름을 제대로 알린 건 지난 2017년 히트를 친 ‘범죄도시’(감독 강윤성)에서다. 막내 형사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 3년간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을 펼쳤다.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옛날엔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이젠 보이는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고 이해하는 것도 3년 전보다는 깊이 있게 하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여유도 생겼어요. 주연을 맡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주위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성장했다고 믿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냐는 물음엔 재밌는 대답을 내놨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농담으로 주변에 ‘난 듣보잡이야’라고도 하는데, 정말 아직 상황이 그렇거든요. 작품은 인연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발버둥 친다고 안 될 게 되거나 될 게 안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하고 싶은 장르를 묻는다면 로맨틱 코미디나 청춘물을 해보고 싶어요.”
첫 주연이니 만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뛰겠다는 그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냐고 하자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빠졌다.
“책임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잔칫날’을 찍으면서 그런 다짐을 수십번 했거든요? 타이틀롤로서 작품을 끌고 가야 하니 같이 하는 사람들을 힘내게 하는 책임감을 갖고 싶었어요. 관객에게도 ‘하준이 출연해? 그러면 뭔가 재밌게 볼 수 있겠는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책임감 가진 배우가 되고 싶고요. 연기가 진실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앞으로 더 저를 많이 괴롭혀야 하겠지만, 그건 배우로서 숙명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잘 해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