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입력 : 2021.01.01 07:37 수정 : 2021.01.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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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2020년은 단연 임영웅이란 이름이 오롯한 한 해다. 지난해 1월2일 첫 방을 시작한 TV조선 ‘미스터트롯’이 3월12일 경연을 마치기(전산 문제로 최종 발표는 14일로 연기)까지 임영웅이란 이름은 ‘황소 눈알’만 한 보석으로 다듬어졌다.

이제 임영웅은 자체 발광으로 보석을 넘어 한국 가요계의 붙박이 별이 됐다. 그것도 가장 빛나는 북극성 같은. 임영웅은 한국에서만큼은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스타라 주장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임영웅의 오늘과 내일은 탄탄대로로 보인다. 스포트라이트도 여전하다.

이때 임영웅의 어제가 궁금해지는 것은 기자뿐일까. ‘영웅’ 임영웅의 소싯적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초 경기도 연천군에 살고 있는 큰아버지 임비호씨를 찾았다. 쉽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소’영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연천까지 즐거운 드라이브를 했다.

그를 통해 받은 어린 임영웅의 사진엔 입이 귀에 걸렸지만, 영웅이 거쳐온 가정사엔 가슴이 먹먹해 졌다.

축구 선수를 꿈꿔 국가대표 축구 국대 김병지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한 임영웅.

축구 선수를 꿈꿔 국가대표 축구 국대 김병지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한 임영웅.

■‘미스터트롯’ 결선 후 눈물의 통화

임영웅의 큰아버지 임비호씨는 먼저 ‘미스트트롯’ 최종 결선날을 추억했다. 그는 “난 그 때 영웅이가 무슨 노래를 부를지 말을 안 해도 알고 있었어요. 3월 12일이 1995년 돌아간 영웅이 아버지의 제삿날이었거든요. 그런 날이니 아버지의 18번인 ‘배신자’를 부를 거라 생각했어요. 정말로 그 노래를 부르더만…”이라며 “그날 결과 발표에 문제가 있어 등수는 알 수 없었지만, 방송이 끝난 지 5분 정도 지나니 영웅이가 제게 전화했더라고요. 받았더니 그 놈이 울데, 그냥 울기만 하데… 내 참. 잘했다는 말 외에 아무 말도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언젠가 임비호씨가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 가니, 임영웅의 아버지(임용호)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단다. 임비호씨는 “용호가 무대에 올라 ‘배신자’를 부르는 데, 가수 뺨치더라고요. 영웅이가 방송에서 노래를 부를 때, 자꾸 그 모습이 떠올라서…”라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임비호씨의 눈은 어느새 재인폭포 인근의 꽁꽁 언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영웅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영웅이 5살 때일 거예요. 1994~1995년 내 마음이 저 얼음 같았어요. 그 11개월간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까지 다 제 손으로 보내야 했으니까요”라며 “영웅이 아버지 교통사고도 하늘을 탓할 수밖에… 영웅이 엄마·아빠가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살았거든요. 애도 커가고 해서 늦었지만 결혼식을 올리려고 청첩장 받아오다가 그렇게 됐어요. 나중에 죽은 영웅이 아버지와 엄마가 절에서 영혼 결혼식을 하는 것으로 끝내 식을 올리긴 했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단독]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단독]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영웅이라고, 무협지 쓰냐?”

겨울 철새가 한 무리 날아간다. 추수 끝낸 텅빈 논에는 볏단마저 소먹이로 쓰려는 듯, 하얀 비밀포대에 말아버려 씨나락 하나 찾을 수 없다. 철새들이 내렸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무한 반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걔네들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들의 군무가 트로트를 닮았다. 선두가 방향을 꺾으니 뒤따르던 무리도 리듬감을 타고 가는 길을 튼다.

트로트는 먹고살기 힘들 때, 뒤틀린 우리네 인생사처럼 삶 역시 이리 꺾고 저리 틀면서 살 길을 찾는 것이니…. 침울한 대화 분위기도 조금은 틀어야 했다. 기자는 임비호씨에게 “가족들 이름이 다 특이하세요. 영웅이도 그렇고, 영웅이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용호에 큰아버지는 비호라는 함자를 가지고 계시니 말이죠”라 물으니, 갑자기 임비호씨가 껄껄 웃는다.

그는 “영웅이가 백일쯤 됐을 때일까요? 동생이 아기 이름을 지어왔어요. ‘영웅’이라데요. 내가 뭐라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군인 출신 아버지가 우리 이름을 비호며 용호로 지어놔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는 데, 이제 아기 이름까지 ‘영웅’이라 지어서 무슨 ‘무협지’ 쓸 거냐 하면서요”라는 말에 기자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 임비호씨는 “그랬더니 용호가 형이 알아서 지어보라더군요. 근데 영웅이란 말에 나도 끌렸던지 아기를 향해 ‘영웅아’ 하고 불렀더니 배시시 웃어요, 그 조그만 것이. 그래 이게 니 이름인가 보다 하고 ‘영웅’이로 하자고 했죠”라며 ‘영웅탄생신화’를 알려줬다.

[단독]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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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눈물과 웃음, 롤러코스터 같았던 임영웅의 어린 시절(사진&스토리)

■“얼굴 상처, 아직도 가슴 아파”

당시 임영웅의 가족은 연천군 전곡읍에 살았다. 한탄강 줄기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집에서 임영웅의 아버지도, 임영웅도 태어났단다. 지금은 번듯한 빌딩이 들어섰지만, 그 강줄기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뛰놀던 임영웅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릴 적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임영웅의 홀어머니는 물론 임비호씨며 영웅이 고모까지 노심초사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단다. 그러다가 담벼락 이물질에 임영웅의 얼굴에 생채기가 났으니 그 속이 오죽했을까.

임비호씨는 “영웅이 아버지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영웅이 엄마도 전곡초등학교 1년 후배예요. 영웅이를 봐서 알겠지만 키도 크고 잘 생겼거든요. 그런데 얼굴에 상처가 생겼으니…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담벼락에 붙어있던 깡통에 다쳐서 그렇게 됐어요. 방송에 나올 때 분장을 해도 언듯언듯 보이는 그 상처를 보면 가슴이 미어지죠”라며 안타까워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임영웅의 스케줄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임비호씨는 “영웅이 덕에 오히려 제가 동네 유명인이 됐어요. 어디를 가도 ‘영웅이 큰아버지’라고 부르거든요. 술값도 대신 내줘야 해서 ‘꽁돈’이 나가고 사인 부탁도 이곳저곳에서 받는데, 영웅이가 그럴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잘들 모르세요”라며 “영웅이 아버지가 저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지만, 부질없는 이야기죠”라며 웃어보인다.

임영웅의 큰아버지 임비호씨는 작은 소망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그는 “곧 돌아올 영웅이 아버지 기일에 영웅이가 술 한잔 올리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근데 스케줄이 될지 모르겠네요”라며 “그날, 영웅이 아버지 유골 뿌린 한탄강에 나가서 영웅이가 ‘아빠’ 한번 목놓아 부르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네요”라며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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